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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강력한 여성 파라오였고 수천 년간 종적을 찾지 못하던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의 미라가 발견됐다. 파루크 호스니(Hosni) 이집트 문화부 장관은 (6월) 27일 기자회견에서 "1903년 발굴했지만 그 동안 신원을 알 수 없었던 미라가 컴퓨터 단층촬영(CT)과 DNA 검사를 통해 하트셉수트 여왕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집트로 떠나기 한 달 전, 하트셉수트 여왕의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집트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고대 이집트에 여왕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난 지금 그녀가 3400년 전에 만들어 놓은 곳으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고 있다.

투트모세 1세의 딸인 하트셉수트는 이복동생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게 된다. 후궁에게서 태어난 투트모세 2세가 왕이 되기 위해선 왕가의 순수 혈통인 하트셉수트와의 결혼이 필요했다. 투트모세 2세는 후처에게서 투트모세 3세를 남겨놓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때부터 투트모세 3세와 하트셉수트의 공동집정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린 왕의 뒤에 서서 하는 통치보다 그녀가 직접 맨 앞에 서서 통치하고 싶어하던 그녀는 몇 년 후에 파라오로 즉위하게 된다.

왕들의 즉위식에 카르낙 신전에서 행해지듯 그녀의 즉위식도 그곳에서 이뤄졌다. 그녀의 머리 위에 파라오의 머리 위에 그려지는 우라에수스 라고 불리는 신성한 뱀이 그려진다. 이 뱀은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나는 이 이마 위에 일어서고, 이 이마 위에서 자라노라.
나는 이 여인의 아비를 치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과 결합하노라.
나는 이 여인이 불어놓는 공포심을 만천하에 퍼뜨리노라.
나는 이 여인의 권능을 세우고, 이 여인을 위해 천체가 에워싼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나는 이 여인을, 인류를 붙들어 매는 말뚝으로 세우노라.
나는 이 여인을 위해 저 불멸의 별들을 하나하나 짚어갈 것이로다.
이 여인을 위해 저 불굴의 별들을 하나하나 세어갈 것이로다.
나는 이 여인의 즉위명 속에 거할 것이로다.’


- 크리스티안 데로슈 노블쿠르의 하트셉수트 중

저 멀리 깎아진 높은 절벽 아래 현대식 건물처럼 서 있는 신전이 보인다. 하트셉수트 대장전, 옛날 이름은 찬란함 중의 찬란함, 경이로움 중의 경이로움이라는 뜻의 ‘제세루-제세루’이다.

경사진 면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곧고 딱딱해 보이는 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 생김새 때문일까? 친근감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분명 멋진 건축물임이 틀림없다. 그 모습이 도저히 3400년 전에 지었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지금 관광객을 위해 지은 호텔들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을 했다지만 몇 년 전에 지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트셉수트 대장전의 멋진 위용
 하트셉수트 대장전의 멋진 위용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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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신전이 풍기는 세월의 냄새도 묻어나오지 않고 그 어떤 부드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도도하게 서 있는 차가운 모습이다. 너무 반듯하고 완벽하게 생겼는데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차가운 여자를 보는 것 같다.

건축물은 그 지은 사람을 닮지 않을까. 하트셉수트도 그랬을까? 위로 올라가면 나일강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오시리스 상이 일렬로 서 있다. 이 건축물을 지키고 있는 강인한 모습이다. 5m가 넘는 크기의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로 인해 장례전은 더욱더 위엄 있게 보였다.

한쪽 옆 주랑에는 하트셉수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여기는 푼트 원정대 이야기가 자세하게 부조로 새겨져 있다. 나일강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나온다는 푼트라는 곳에 가기 위한 준비, 출발, 도착, 푼트 왕국의 왕과 왕비와의 대면, 그곳에서 유향나무, 향료, 원숭이에 표범까지 원정대가 가지고 온 것들을 자세하게 그려놓고 있다. 이곳에서 가져온 유향나무는 바로 이곳 하트셉수트 대장전 앞 정원에도 심겨졌었다고 한다.

사실 책에서 보고 가서 이 장면을 보고 싶어 찾아갔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희미해진 부조들을 휙 하고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이런 부조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 박물관으로 옮기면 자기가 있을 곳에 없어서 슬프고 그냥 그 자리에 두자니 바람에 먼지에 조금씩 그 형태를 잃어버릴 테니 말이다.

 히토르식 기둥
 히토르식 기둥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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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쪽으로는 히토르의 성소가 자리 잡고 있다. 기둥도 암소 귀가 달린 여성의 얼굴 모양이다. 이 기둥에 있는 히토르는 너무 괴상망측하게 보이는데 원래 이 신은 사랑과 기쁨의 신이라고 한다. 히토르는 신은 암소의 모습으로 나타나 신성한 태아에 우유를 공급해준다. 이곳에서도 하트셉수트의 손바닥을 핥아주고, 하트셉수트는 히토르의 젖을 먹고 있다. 곧 신의 젖을 먹고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시키려 노력했다.

 히토르를 상징하는 소의 젓을 먹고있는 왕비
 히토르를 상징하는 소의 젓을 먹고있는 왕비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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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카르낙 신전과 이곳에 많은 부조를 남겼지만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얼굴은 모두 철저하게 망치질을 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녀의 장례전에 망치질 당하지 않은 하나가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아직 보존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는지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그녀가 죽은 뒤 투트모세 3세가 그랬다고 하는데 참 안타깝다.

그녀가 그를 없애려고 했던 것도 아닌 것 같고 왕위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지도 않은데 꼭 이렇게 모두 망가트려야 했을까? 그냥 자신이 어릴 때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려준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는 없었을까?

 아직까지 살아 움직일듯이 서있는 매 형상
 아직까지 살아 움직일듯이 서있는 매 형상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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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책을 낸 작가도 왜 그녀를 이복아들의 왕권을 빼앗아 자신의 권력을 위해 나아간 사람으로 치부해버리고 빤한 스토리로 만들어버리는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람들은 여자가 어린 왕 대신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면 오직 권력욕밖에 없는 천하에 나쁜 사람으로 단정짓고 만다.

많은 역사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은 오직 그런 면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진정 파라오로서 자질이 넘치고 이집트를 다스릴만한 사람이 없었다면, 그래서 왕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녀가 나쁜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왕을 돌보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만 옳은 길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인 것 아닐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의 일인자로 서서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렸다면 그녀를 왕권을 빼앗은 사람이 아니라 훌륭했던 왕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다는 그녀의 흉상은 너무 온화한 표정을 보여준다. 많은 부조물에서 남성의 모습으로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냈던 것과 다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진짜 그녀의 모습은 무엇일까. 머나먼 시간의 벽을 지나 그녀가 받고 있는 평가에 대해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녀의 몸은 3400년을 이기고 세상에 나타났는데 그녀의 영혼은 언제쯤 세상에 제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 입니다.



#이집트#룩소르#하트셉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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