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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은 샤프하우젠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스크로스 라우펜 암 레인폴(Schloss Laufen am Rheinfall)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친절한 역 표지판이 없다면, 이곳이 역인지도 모를 정도로 레인폴 역은 조그맣다. 역 같지 않은 강변의 작은 역이 이국적이었다. 마치 강원도의 강촌역 같은 강변의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다.

자갈 깔린 길이 상당한 경사의 돌계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짐이 있었으면 상당히 걷기 힘들었을 계단길이다. 나에게는 가이드북도 지도도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으로 따라 움직였다. 이 여행자들이 가는 곳은 분명히 레인폴 방향일 것이다. 해가 구름 사이로 가끔 얼굴을 숨기지만, 날씨는 아주 좋다. 강변의 민가들도 편안하고 아늑하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폭포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폭포의 우렁찬 물줄기 소리가 점점 더 시원하게 귀를 울리고 있었다. 시야가 갑자기 트이자, 얼굴 앞으로 맑은 강물이 흘러간다. 강물은 바라만 봐도 시원한 물줄기였다.

라인강 줄기의 유일한 폭포인 레인폴은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폭이 150m, 높이 23m인 레인폴은 유럽에서 폭이 가장 넓은 폭포이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폭이 워낙 넓어 강한 힘이 느껴지는 폭포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흔하지 않는 폭포의 절경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라인강은 알프스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물줄기가 형성되었다.
▲ 라인강 상류 라인강은 알프스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물줄기가 형성되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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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은 약 50만 년 전에 알프스 인근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금의 강줄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라인강 줄기의 이 레인폴은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인 1만 7000년 전, 거대한 물줄기가 석회석을 침식하면서 대체적인 모습이 형성되었고, 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금씩 형태가 변하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절경을 완성하였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폭포의 울림은 라인강의 깊이를 13m까지 파 놓았다.

알프스의 눈과 빙하가 녹은 물 중에서 약 70%가 라인 강으로 흘러들어온다고 하니, 레인폴에 쏟아지는 물줄기는 알프스에서 온 물이 많을 것이고, 레인폴 인근의 스위스 샤프하우젠을 흘러서 왔을 것이다. 이 강물은 서쪽으로 계속 흘러갈 것이다. 라인 강물은 클레트가우(Klettgau)에서 스위스를 떠날 것이고, 또 흐르고 흘러서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의 바다 속으로 녹아들어 갈 것이다.

열심히 걸었다. 레인폴의 건너편 언덕으로 내려가니, 폭포 주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왔다. 산책로에는 가족여행을 온 여행자들이 있고,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조용히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럽에서 폭이 가장 넓은 폭포로서 스위스와 독일 국경 인근에 있다.
▲ 레인폴 유럽에서 폭이 가장 넓은 폭포로서 스위스와 독일 국경 인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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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갔다. 거대한 폭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들은 이 지점에서 장엄한 유럽 최대 폭포의 진수를 눈으로 즐기고 있었다. 눈앞에서는 물보라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센 물줄기였다. 처음 접하는 형태의 폭포를 눈앞에서 보니 마음에 짜릿한 흥분이 생겼다.

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와서 폭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폭포가 쏟아지는 속으로 자그마한 유람선, 펠센파흐트(Felsenfahrt)가 돌진하고 있었다. 계속 쳐다보니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이 유람선에서 내린 사람들이 폭포 속의 전망대를 향하고 있었다. 폭포수가 부딪쳐 부서지는 강물 속의 큰 바위 위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폭포수를 맞는 스릴이 대단하다.
▲ 레인폴의 절벽 전망대 폭포수를 맞는 스릴이 대단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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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유람선을 탔던 사람들은 바위 밑에서 모두 하선하여 바위 끝까지 이어지는 계단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폭포 가운데의 이 절벽같은 바위에서 떨어지면 바로 사망일텐데, 많은 사람이 아슬아슬한 바위 위 전망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주 위험하지만, 위험한 만큼 폭포수를 맞는 스릴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유람선을 이용하는 비용이 6 스위스 프랑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물이 불어서 이 유람선을 타고 폭포 속 전망대로 향할 수 없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교적 날씨가 좋은 편이니, 꼭 한번 유람선을 타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후 여행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유람선에 오르기로 했다. 여행에서는 아쉬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여행에서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리면 머릿속에 자꾸 후회만 쌓이기 때문이다.

레인폴의 절벽 전망대를 향하는 유람선이다.
▲ 레인폴 유람선 레인폴의 절벽 전망대를 향하는 유람선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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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물살에 배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멀리서 보던 폭포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직접 올려다보는 폭포가 거대한 생명체 같아 보였다. 유람선이 앞으로 나갈수록 폭포의 굉음에 귀가 울려왔다. 거대한 강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라인강의 강물이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 폭포 속 바위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아름다움의 높이를 더 높이는 것 같았다. 얼굴을 때리는 강물을 맞으며 가슴이 확 트였다. 고독한 섬과 같은 폭포 속의 바위 위에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나는 장엄한 이 물줄기와 굉음, 그리고 피부에 닿는 촉감까지도 잊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절벽 위에서 폭포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폭포 뒤쪽에는 우리나라의 근대 서양건축물같이 생긴 매력적인 고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 앞에는 붉은 바탕에 흰 십자가가 그려진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성 아래 절벽에는 푸르른 신록이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 신록 속에 만들어진 산책로와 전망대에는 폭포의 절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나무계단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절벽을 올랐다. 절벽 위 고성은 1962년부터 개조되어 유스호스텔로 이용되고 있었다. 절벽 위의 성벽에서 폭포를 내려다본 풍경은 폭포 안에서 폭포를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잊지 못할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스호스텔 건물 자체의 외관도 분위기가 있지만, 성 밖으로 라인 강의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건물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폭포수의 힘에서 나오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 성 밖에 있었다.

유스호스텔 내부의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고성을 개조한 숙박시설이지만 고성의 기본구조는 거의 손대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다. 운치 있는 목재로 지어진 바닥과 나선형 계단에서 나무의 향과 삐걱거리는 울림이 전해져 왔다.

유스호스텔을 나와 절벽 아래의 산책로를 걸었다. 마치 폭포수가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유명 관광지이지만 유럽의 여행자들만 조금 보일 뿐 번잡하지 않았다.

멀리서 물보라가 올라오고 있었고, 절벽 위 고성은 신비롭게 폭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포를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이곳을 이다지도 잠시만 감상을 하고 다시 떠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은 아쉬움의 연속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위스, #라인강, #레인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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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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