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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배다리에서 태어나 자란 뒤, 헌책방거리에서 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얻어 꾸려나가며 어느덧 서른 해 훌쩍 넘도록 헌책방 일꾼으로 온몸을 바치고 있는, <아벨서점> 곽현숙 아주머니(58)가 가슴을 찢고 또 찢으면서 겨우 적어내려간 글입니다. 곽현숙 아주머니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르기에, 제가 대신하여 이 글을 기사로 걸쳐서 띄웁니다. - 글쓴이 말

 

 

 - 2007년 7월 20일 -

 

오전 7시 25분 (전시관) 통로 층계를 만들려고 홈을 파다가, 종합건설본부 앞에 1인시위에 참여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대책위원회 컨테이너로 간다. 어떤 표제가 좋을까 손팻말을 골라 보면서, “주민의사 무시하는 행정독주 중단하라.”와 두 가지를 자전거 뒤에 싣고, 도화동 종합건설본부로 향하는 페달을 밟는다.

 

주민대책위 최기수 사무국장이 시청시위 때 알려준 “산업도로 반대한다, 울라울라”를 흥얼거리며, 도화오거리 언덕을 넘는다. 오늘 따라 내 자전거가 바퀴의 위대성을 유감없이 선물하고 있다. 도착해 보니 7시 55분.

 

정문 오른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팻말 두 개를 자전거 위에 올려놓고 “주민의사 무시하는 행정독주 중단하라”는 손팻말를 들고 자전거와 나란히 섰다.

 

도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학교로 가고 있다. 모두 다 깔끔하게 머리를 단장하고 가방을 메고 걸어간다. 가슴에 풋풋함이 일어난다.

 

학교 가는 길은 매일 새로웠고, 싱그러움으로 그득한 걸음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수도국산 언덕에서 학교를 향한 내리막길을 단련된 발걸음으로 내리달리던 생각이 머리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오늘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을 지키려고 종합건설본부 앞에 나와 있다. 불편(몸으로 살던 때를 기억하는 마음)의 재미는 무한의 미래임을 알기에.

 

 

 - 2007년 10월 17일 -

 

오전 7시 20분. 제법 쌀쌀하다. 가게 문을 열고 자전거를 꺼내 타고, 컨테이너 주민대책위 사무실로 향한다. 종합건설본부에 1인시위를 가려고 손팻말을 싣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처음 말이 다시 새롭게 힘이 주어져서 힘있게 마음으로 외쳐 보며, 자전거에 다른 두 손팻말과 깃발을 싣는다. “동구를 둘로 쪼개며 문화ㆍ역사를 파괴하는 산업도로는 문효화하라!”

 

가슴에 또 한 번 깊게 묻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앞에는 2번 버스가 가고 있다.

 

차가 덜 다니는 골목길로 가면서 페달을 밟는 다리의 힘이 반대 힘으로 받쳐지고 고리가 되어서 생동감이 온몸에 번진다. 큰길로 다시 나오니 동산중고등학교 앞이다. 바로 앞에 2번 버스가 있다. 박문고교 앞을 지나 제물포 뒷역길로 접어든다.

 

머리속엔 계속 사람의 자유를 꿈꾼다. 약간씩은 구부러지고 높낮이가 모나지 않은, 자전거를 타기에, 운동에 알맞는 괜찮은 길. 제물포역을 지나 도화동 초입에 “우리는 여기서 부모님 모시고 살고 싶다!”는 말이 적힌 걸개천이 걸려 있다. 조금 내려가니 또 하나, “우리는 죽기로 각오하고 우리 재산 지켜낸다!” 조금 가니까, “재산을 강탈하는…!”

 

가슴이 컥컥 막혀 온다. 서러움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몰린다.

 

일주일이면 두 번을 같은 길을 가며 똑같이 보는 걸개천이지만, 볼 때마다 걸개천마다 적힌 구호가 이마에, 등에, 가슴에, 각인되듯 쩌릿한 전율을 동반하며 새겨진다.

 

도화오거리 고가를 넘는 내 발은 한 발 한 발 구호로 페달을 밟는다. “곡선을 파괴하는 산업도로”, “서민의 심장을 크게 가르는 길”, “동구의 정체성을 절절하게 느끼지 못하는 행정”, “민의를 회생시키지 못하는 행정”, “사람의 자연을 파괴하는 행정”, “돈 많고 땅 넓은 미국의 본을 좇아 한민족의 땅에 펼치려는 미개한 정치” 맹꽁이가 이만큼 이만큼 하면서 제 가죽의 한계도 모르고 배를 불리다가 터져죽었다던가.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데. 인천이 얼마나 서러운 역사의 그늘에서 서울을 받쳐주었는데. 이제 지방자치제가 되어서도 서울의 그늘을 어리석게 자처하는 것일까. 배다리(금곡동, 창영동, 송림동, 송현동), 인천의 모래 같은 곳, 이리저리 모진 풍랑을 헤치고, 행주치마에 땀 씻고 눈물 씻고 핏물 씻고 고픔을 여여히 참으며 생명의 빛을 크게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되어진 이 터를 어떻게 하면 행정에 알릴 수 있을까. 이 서민의 뜨거운 가슴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경제논리에 인천의 심장부를 잃어버리면, 급변하는 속에 수없는 상처와 정신이 멍드는 것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인천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은 많아지는데.

 

 

 - 2007년 10월 25일 -

 

지금 사회는 노령화 시대로 되어 가고, 점점 노년의 복지가 고민되는 시대에, 노년복지금이라든지 실버타운이라든지 양로원이라든지, 많은 돈을 들여서 일한다 하지만, 정작 중심의 근본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인천의 노인복지는 배다리를 복원해 내는 일이다.

 

일제시대에 중구는 왜색의 문화라면, 동구는 서민 문화의 발판이었다. 50대 이후라면 나라의 어려움 속에 잔뼈가 굵은 시대를 겪어 온 삶이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향수고, 그것이 고향인 것이다. 배다리는 서민의 고향이고 인천의 고향이고 어려움을 함께 한 곳이다. 이 나라 바닥에 끊임없이 꿈틀대던 진홍빛 핏빛을, 나라가 잘되는 것을 깊은 숨으로 염원해 피워낸 땅의 상징으로 예우한다면, 틀린 말일까. 이것을 살려내는 것은 어느 실버타운을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들어내는 것보다 빈부귀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이 향수보다 깊은 숨을 쉬게 하는 숲이 또 있을까.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 그것을 향한 복지만이 다가 아니다. 경제를 부여하지만 돈은 많아도 가슴이 가난한 이들에게도 복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균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골고루 볼 수 있는 우리를 만들어 내는 행정을 바라며, 종건본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는 내 가슴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소리치고 또 소리쳐 본다. 이 나라는 이제 그만 ‘참’ 복지로 돌아가자. ‘참’ 문화로 돌아가자. 사람이 가장 멋있는 나라로 돌아가자.

 

배다리에 놓으려는 산업도로는 거두어 내자. 인천의 보고를 예우하자.


태그:#산업도로, #안상수,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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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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