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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가명·46)씨의 회사에 쌓여있는 재고 상품들. 김씨는 "중소기업 유통센터에서 말을 바꿔 재고 부담을 떠 넘기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수(가명·46)씨의 회사에 쌓여있는 재고 상품들. 김씨는 "중소기업 유통센터에서 말을 바꿔 재고 부담을 떠 넘기고 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공기업에 '사기' 당해 도산 위기 처했다."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단단히 화가 난 중소기업 '사장'들이 있다. 이들은 "공기업과의 거래에서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화살이 향한 곳은 중소기업 유통센터.

이곳은 중소기업 진흥공단의 자회사로서 행복한 세상 백화점, 홈쇼핑 판로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판매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공기업이다.

이들의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 선뜻 믿기지 않았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세워진 공기업이 중소기업에 큰 피해를 끼쳤다니? 이에 대해 중소기업 유통센터는 "거래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 김정수(가명·46)씨를 찾았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유통센터에 문제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만이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말 바꿔 재고 부담 떠넘기는 유통센터... "도산 직전"

"이건 사기다. 도산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주장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고, 얼굴까지 붉어졌다. 유통센터만 생각하면 혈압이 오른단다. 그는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유통센터가 모든 책임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김씨는 17년간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등지에서 물류업을 해왔다. 그러던 지난 3월, 유통센터의 이명일 홈쇼핑사업본부 홈쇼핑2팀장이 그에게 찾아왔다.

홈쇼핑사업본부는 중소기업의 제품을 홈쇼핑에 연결해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얻는 '벤더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김씨는 "이 팀장이 아이템을 들고 와 '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투자를 해라, 재고 부담이 없다, 돈 빌려주고 이자를 얻는 것과 비슷하다'며 선동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를 믿고 3월~7월 사이 5건의 투자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유통센터에서 신발, 비비크림, 와이셔츠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을 지정했고, 김씨는 이들 업체에 1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특히 A비비크림 경우, 7월부터 4억4천만원 상당의 1만5천 세트를 도급 줘 생산한 후, 유통센터를 통해 B홈쇼핑에 공급했다. 하지만 9월 17일 오전 6시 단 1회 방송으로 500여세트만 팔렸다. 유통센터에서는 미판매된 1만4500세트에 해당하는 공급계약금을 김씨에게 주지 않고 있다. 또한 재고까지 가져가라고 요청하고 있다.

김씨는 "유통센터에서 1만5천 세트를 만들라고 지시해놓고는, 이제 와서 판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계약금과 관리비 4억8천만원을 받지 못하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4건의 계약 역시 비슷한 사정이었다. 김씨는 "5건의 총 계약금 10억여원 중 7억6천만원 가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관리비가 계속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 도산 직전"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백화점과 중소업체의 계약보다 더한 불공정 계약"

 중소물류업체 사장인 김정수(가명)씨와 이현석(가명) 영업부 과장은  "계약서에 따르면 모든 판권은 중소기업 유통센터에 있다, 재고를 우리가 인수한다고 해도 어디에도 팔 수 없다"며 "도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물류업체 사장인 김정수(가명)씨와 이현석(가명) 영업부 과장은 "계약서에 따르면 모든 판권은 중소기업 유통센터에 있다, 재고를 우리가 인수한다고 해도 어디에도 팔 수 없다"며 "도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선대식

김씨는 "계약서가 불공정하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김씨와 동석했던 이현석(가명) 영업부 과장은 "백화점과 중소업체의 계약보다 더한 불공정 계약"이라고 운을 뗐다.

"계약서에 따르면 모든 판권은 중소기업 유통센터에 있다. 재고를 우리가 인수한다고 해도 어디에도 팔 수 없다. 못 팔게 해놓고 제품을 안 팔아주면 어떡하란 말이냐. 도산하라는 거다. 대한상사중재원에서는 '계약 문서 등의 증거만 있으면 중소기업 유통센터에서 재고를 인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유통센터는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상사중재원은 모든 상거래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내 유일의 상설중재기관이다.

그는 또한 "유통센터는 우리 몰래 업체 코드를 바꾸면서 다른 업체와 계약하기도 했다, 그때 이 팀장이 찾아와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며 "유통센터가 매우 부도덕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문제를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며 "중소기업 유통센터에서 하루 빨리 재고를 인수하고 계약금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가 법정으로 가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일 계속 발생하면 중소업체는 다 도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통센터 "계약서 문제없고 손해 배상할 이유 없다"

 중소기업 유통센터 본사.
중소기업 유통센터 본사. ⓒ 오마이뉴스 선대식
한편, 유통센터 쪽은 피해를 보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7일 만난 진재천 백화점사업본부 패션잡화팀 팀장(5일 이전, 홈쇼핑전략팀 과장으로 근무)은 "계약서에는 우리 쪽이 재고 부담을 진다는 내용이 없다"며 "손해배상 요구는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 업체와 홈쇼핑을 연결만 해줬을 뿐"이라며 발을 뺐다.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진 팀장은 "우리의 자문 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명일 팀장이 김씨에게 재고 부담이 없다고 약속했다"는 주장에 대해 진 팀장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홈쇼핑에서 우리 상품의 방송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그런 약속을 감히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명일 팀장은 "이미 회사 쪽에 보고를 끝낸 상황이다"며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

진 팀장은 또한 계약 업체 변경에 대해서는 "업체의 동의가 없으면 코드가 바뀌지 않는다"며 "그런 사실은 아직 확인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많은 업체들과 계약을 했는데, 유독 김씨만 문제를 제기한다"고 강조했다.

"유통센터, 고리대금업보다 더 심한 15부 이자놀이 한다"

하지만 진 팀장의 말과 달리 많은 업체들은 유통센터의 벤더 사업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소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최형기(가명)씨 역시 유통센터와의 거래에서 많은 피해를 봤다. 최씨는 "유통센터에서 자금회수는 걱정 없다는 언질을 줬다"고 밝혔다. 이를 너무 믿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그는 "유통센터가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못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벤더) 사업 과정에서 수수료가 생기니까 유통센터는 돈을 벌기 위해서 검증되지 않는 제품까지도 다 건드린다"며 "유통센터를 믿고 제품 생산에 투자한 기업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업체 사장인 오승현(가명)씨는 "유통센터가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통센터는 매출액의 3~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며 "보통 순수마진이 매출의 7~8%인데, 이익금을 거의 다 가져가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계산해보니 고리대금업보다 더 심한 15부 이자"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유통센터#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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