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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건청궁 복원행사에 참석한 이태원(뮤지컬 <명성황후> 배우)씨와 시해 후손 가와노 다쓰미씨.
 7일 건청궁 복원행사에 참석한 이태원(뮤지컬 <명성황후> 배우)씨와 시해 후손 가와노 다쓰미씨.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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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하고 힘겨워라 이 땅의 왕비여. 한 목숨 보존조차 힘들었던 30년. 이 나라 왕비 됨도 하늘의 뜻인 것을, 기꺼이 그 짐을 지기는 지리오만 누가 나에게 빛을 다오." (뮤지컬 <명성황후>의 아리아 '어둔 밤을 비춰다오' 중)

1895년 일본 낭인의 칼에 명성황후의 피가 흩뿌려진 경복궁 내 건청궁. 지난 7일 이곳에서는 '명성황후'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불렀음직한 구슬픈 노래가락이 울려퍼졌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사 ㈜에이콤이 문화재청·한국관광공사와 함께 건청궁 안 장안당 대청마루에서 아리아를 공연하는 행사를 마련한 것. 100여년 만에 복원된 역사의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했던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 1861~1909)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86) 등 일본의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하 명성황후 모임)' 회원 6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용서와 화해의 자리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가와노씨는 살아돌아온 듯한 명성황후(이태원 역)의 음성을 들은 뒤 울먹이며 소감을 밝혔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나의 외할아버지를 포함한 수십 명의 낭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한국과 일본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잘못한 일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잘못한 일이었다…."

명성황후 시해 후손 가와노씨 "명성황후를 시해한 건 나의 외조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란
일본 구마모토현 아소(郡) 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를 은퇴한 가이 도시오(甲斐利雄.78)씨가 지난 200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110주년을 기리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앞서 가이씨는 10여년 동안 명성황후 시해자들의 뒤를 쫓는 등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이씨의 활동은 지난 2004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심을 가진 계기에 대해 "사건에 가담한 낭인 중 대부분이 구마모토(態本) 사람인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37명의 낭인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이씨에 따르면, 당시 한성신보사 사장 아다치가 구마모토 사람이었는데 그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일본을 대표하는 조선국 주차공사) 공사의 의뢰에 따라 구마모토 낭인을 대거 동원했다.

이 모임은 지난 2005년 제1차 명성황후 사적방문단 12명을 조직해 한국을 방문, 금곡 홍릉에 있는 고종 내외의 묘소를 참배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도 13명의 회원이 한국을 찾았다.
이날 가와노씨는 명성황후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사죄하려는 듯 수차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주름진 볼에는 연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와노씨는 아리아가 끝난 뒤 행사 참석자들 앞에 나와 "수년 전 용서를 빌기위해 한국에 왔었다"며 운을 뗀 뒤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나의 외조부를 포함해 수십명의 낭인이었다. 잘못한 일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또 "한국 여성들은 참 곱다.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든을 훌쩍 넘은 가와노씨는 휠체어에 의지해 할 만큼 몸이 불편하다. 그는 외손자(나리타진)의 부축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명성황후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가이 도시오(甲斐利雄.78)씨는 미리 써 온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건청궁의 복원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또 이런 역사의 현장에 초대해 줘 영광이다"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카자키 와조(岡崎和三.80)씨도 "일본 사람으로서 사죄의 말을 전한다.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길 바란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명성황후 모임의 회원이자 통역을 맡고 있는 재일교포 주영덕씨는 "경복궁에 온 적은 있지만 시해의 현장인 건청궁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건청궁에 다시 선 '명성황후' "시해 후손 눈물에 가슴 아파"

가와노씨가 뮤지컬 <명성황후>에 나오는 아리아를 관람하고 있다.
 가와노씨가 뮤지컬 <명성황후>에 나오는 아리아를 관람하고 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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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모임의 방한은 문화재청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회원들은 이날 100여명의 한국인 참석자들과 함께 건청궁 내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또 고종과 명성황후의 묘가 있는 금곡 홍릉으로 이동해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가와노씨 등은 오는 12월 또 한차례 방한해 국립극장에서 <명성황후>를 관람할 예정이다.

12년 동안 명성황후 역을 맡아온 배우 이태원씨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의 후손을 건청궁에서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다"면서도 "(가이씨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번 행사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영혼을 위로하고, 고궁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건청군은 고종 내외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1873년 경복궁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한 곳이다. 건청군은 침전인 곤녕합, 옥호루와 왕의 사랑채인 장안당 등으로 구성됐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은 곤녕합으로 알려져 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회원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회원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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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명성황후, #건청궁복원, #경복궁, #시해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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