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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가야지, 지금도 덤으로 사는 거야, 자식한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지금 가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야 말이지….'

 

어르신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어르신들이 건배를 하거나 구호를 외칠 때 가장 많이 입에 올리시는 말씀(숫자)은, "9988!" "234!"다.

 

9988과 234는 "구십 구(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딱 이틀(2)만 아프고 사흘(3)째 되는 날 죽는 게(死, 4) 복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몇 살까지 살고 싶은지를 물으면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젊은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젊은 사람들 보기에 이미 인생 다 산 것 같은 어르신들은 어떨까.

 

'아프지만 않다면야 120살까지도 살고 싶지'라는 분이 계신가 하면, '너무 오래 살면 자식 앞세우는 일도 생기고, 난 싫어. 앞으로 5년 정도만 더 살면 좋겠어'라는 분도 계셨다. 후자의 경우 올해 연세가 85세셨다.

 

만일 우리가 모두 백 살까지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내 나이부터 집어 넣어 계산해 본다. 지금까지 산 것은 인생의 절반도 못 산 것이 되고, 열 여섯, 열 다섯 두 딸아이가 칠십 고개를 앞두고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겠지. 그나저나 건강 상태는 어떨까? 일은 진작에 접었을텐데 뭘 먹고 살지?

 

책 <백년의 나이테를 읽다>는 방송인인 저자가 백 살 넘게 산 노인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들의 이야기와 느낌, 생각 등등을 별다른 꾸밈없이 기록한 것이다.

 

몇몇 백세인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 머무르고 있어 도통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아 저자의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분들은 100세를 넘기고서도 여전히 멀리 앞만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거나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고 있어 또다른 거리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이든 100년, 한 세기를 온전히 살아낸 분들이 들려주는 삶의 여정은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들며, 어느 새 그 삶 속으로 들어가 역사 속 개인의 운명과 그들이 '살아내고야 만' 생의 엄숙함에 숙연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백년을 넘게 산 '백세인'들을 미화하거나 위대한 인간으로 추켜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도 다 우리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 백년에 이른 것이며, 너나 할 것 없이 삶의 여러 고비를 어렵게 넘겨왔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다 보여준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들과의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좌절하고 절망하며, 또 그들과 완벽한 소통의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힘을 얻어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다. 인터뷰의 대상자인 '백세인'이나 인터뷰를 하는 저자나 모두 다 땅에 발 딛고 있는 보통 사람이기에 친근감마저 든다.

 

책 속 '백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백년도 결국은 오늘 하루가 쌓여 이루어지는 것, 그러니 하루를 잘 살고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만이 몇 살까지 살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들이 할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 만족해. 어쨌든 난 내 소임을 다한 거야.

...날 돌봐주는 이 하나 없으니 건강해야 하고, 병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저 살아낸 것뿐이지.

...앉아 있지 말아야겠지. 앞으로 나가고 움직여야지. 계속 살아가는 게야.

...백 살이라는 것도 그냥 매일 살아가는 하루일 뿐이야.

...사람은 현재를 사는 게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미래를 내다봐야지,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면 생각하지 말아야지.

...나는 그냥 날마다 오는 대로 내 삶을 맞이하며 살 뿐이네.

 

그나저나 백살은 고사하고 과연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그게 언제가 되든 그 마지막 나이에 이르러서 나는 뒤에 따라오는 인생 후배들에게 내 삶을 어떻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러니 정말 사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그 무게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간다. 나도 늙어간다는 거겠지?

덧붙이는 글 | <백년의 나이테를 읽다 If I Live To Be 100> (니나 엘리스 지음, 박주영 옮김 / 지식의 날개, 2007)  


백 년의 나이테를 읽다 - 20세기 100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니나 엘리스 지음, 박주영 옮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2007)


태그:#노인, #노년, #백세인 ,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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