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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가장 넓은 땅과 가장 많은 사람 수를 가지고 있지만 세계사 주류가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중국사와 일본사는 유럽사와 미국사에 작은 끼워넣기에 불과했다. 서구 중심 역사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미국 일극체제와 유럽 다극체제가 세계의 모든 정치, 경제, 외교, 문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과 선진자본주의에 편입된(G7) 일본이 세계사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베트남 전쟁 종전과 냉전체제 붕괴 이후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이 아시아를 뒤덮고 있다. 아시아가 세계 본류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본류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지만 양극화가 아시아를 암울하게 한다.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지역과 지역 사이의 불균형이 심화해 아시아에서는 몇몇 나라만 서구 자본주의에 편입될 뿐 다른 나라는 주류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서구'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일본 진보학자들이 '아시아'란 무엇인가를 두고 질문과 고민, 답을 제시한 책이 이번에 나왔다. '아시아 신세기'로 8권이다.1권은 '공간' 2권은 '역사' 3권은 '정체성' 4권은 '행복' 5권은 '시장' 6권은'미디어' 7권은 '파워' 8권은 '구상'이다.

 

도서출판 한울이 엮고 펴낸 8권을 통하여 아시아 전체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구사회보다 더 몰랐던 아시아를 아는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간>은 "아시아는 '타오르고'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쿠알라룸푸르, 방콕, 뉴델리, 이스탄불은 분명 타오르고 있다. 열정과 역동성은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 로마에 뒤쳐지지 않는다. 아시아는 과거 서구제국 식민지의 질곡을 벗어나고 있다. 자신들을 지배했던 지배국가에 도전하고, 식민지 때를 벗어나고 있다.  이를 '아시아 신세기'라 명명한다.

 

하지만 아시아는 또 다른 불길에 휩싸여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에서 오늘도 불길이 끊임없이 타오른다. 한반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공장이다. '타오르는'것은 맞지만 너무 극단적이다. 극단적 타오름이 아시아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만 <공간>은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극단적인 아시아' 속에서, 파릇한 새싹이 옴터 오른다는 의미에서 '싹이 터오르는' 아시아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침묵을 강요당한 독재 속에서도, 그리고 번영의 허탈감 속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신세기 아시아'가 짊어지고 가야 할 젊은 세대의 '타오를' 것 같은 숨결을 접해보면 아시아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본문14쪽)

 

서구 주류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는 세계체제는 이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시아 신세기는 일본, 중국, 대한민국 중심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상호 이해와 사랑, 함께하는 공동체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 양극화가 아시아 신세기를 지배한다면 아시아의 미래는 암흑이다.

 

'공간'은 '지역'보다는 매우 다양한 개념이다. 지역이 평면적 이해에 머문다면 공간은 평면보다 훨씬 다층적 이해를 가지게 한다. <공간>은 이를 염두해두고 있다.

 

"공간으로서 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경이라고 하는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과 함께 등장한 구획선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 공간적 연결성의 층위를 조사하고 발굴된 사실에 기인하여 지역 설정 그 자체를 재고해갈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환경이나, 생태계에 바탕을 둔 지역 구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본문 59쪽)

 

공간으로 볼 때는 지역보다 매우 다양하게 아시아를 볼 수 있다. 눈을 감고 일본부터 대한민국,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를 머리에 그려보면 어떤 세상이 펼치지는가? 그리 생경한 세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인도로 돌아오는 아시아는 왠지 생경하다. 아시아가 가진 공간이 주는 다양한 느낌이다.

 

<공간>은 이를 생태학적인 시점에서 본 아시아 지도라고 한다. 생태학적으로 전자와 후자는 전혀 다르다. 생태학적 다양성이 습관, 음식, 생활방식까지 '아시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아시아는 하나가 아닌 것이다.

 

<공간>은 이런 생태학적 아시아만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한 하나된 아시아를 말하고 있다. 서울, 도쿄, 홍콩, 시드니는 국제 비즈니스 중심이며, 베이징, 상하이는 글로벌 경제에 새롭게 편입되어 국경을 초월한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역은 떨어져 있지만 공간 개념으로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지역을 넘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도로, 철도, 항공이다. 경의선을 통하여 유럽까지 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과 상하이, 베이징, 서울과 도쿄를 잇는 항공은 이제 하루 길밖에 안 된다. 글로벌 경제는 이미 아시아를 하나로 묶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는 아직 아니다. 현실세계의 특수한 것을 보편적이거나 세계적으로 허구화하는 주체도시 평양,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의 중국,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마닐라는 아직 아시아가 다양한 체제임을 다시 각인시키고 있다.

 

<공간>은 시간 공간 인식의 다원적 공간에서 파편화되고 있는 아시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로 연결시켜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 아시아의 다면적, 다층적 역사와 문화, 변화를 읽고 아시아가 가야할 목적이 각국은 다를지라도 아시아라는 공동체가 한번은 일치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지 질문은 제시한다.

 

<공간>은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어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간>을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찾고자 하는 학자들을 만날 수 있고, 독자 역시 그 고민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아시아 신세기 1 <공간>  강상중 외 엮음 ㅣ 이강민 옮김  ㅣ 한울 ㅣ25,000원


공간 - 아시아를 묻는다, 아시아 신세기 1

강상중 외 엮음, 이강민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2007)


태그:#아시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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