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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커피프린스에서 열린 '진짜가 온다! 커밍아웃 2035' 회원들과 감담회를 갖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커피프린스에서 열린 '진짜가 온다! 커밍아웃 2035' 회원들과 감담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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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을 괴롭히는 '땅'과 '창'에 관련된 질문 4일 오후 홍대앞에서 열린 '포스트386'과의 대화는 가야금 가락에 맞춰 '아리랑'을 들으며 부드럽게 시작했지만, '땅'과 '창'에 관한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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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을 붙잡자니 '꼴통'이미지 고착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내치자니 보수층 표심이 흔들리고..."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후보는 서울 홍익대 인근의 카페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열린 '20~35' 세대 유권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전 총재와 만나) 점심식사를 할 때 (이 전 총재가)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한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며 "본인이 공천을 받아서 두 번이나 당원 전체의 힘을 모아서 (대선을) 했는데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발언과는 달리 후보 주변에서는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타깝다"(이재오 최고위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결행할 경우 그 동안의 선거 전략도 '현상유지'냐 '전면수정'이냐의 내부 논쟁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이라는 '보수성향 제2후보'가 대선 정국에 등장하기 전까지 이 후보의 앞길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경제가 불안하다"는 대중심리의 확산은 '경제전문가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이어져 50%를 넘나드는 고공 지지율을 낳았다. 이 후보 자신도 정치보다는 경제 얘기를 하는 데 주력하면서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넘어 비(非)한나라당 성향의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BBK와 상암동 DMC 등 대통합민주신당이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 전개한 네거티브 공세도 과거와 달리 대중들에게 '단순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탓에 이 후보의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 호재가 악재로?

하지만 이회창의 등장은 이 모든 호재들이 악재로 돌아설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하면 그는 이번 주 중 발표될 '대국민 성명'에서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모호한 대북 정책과 안보관을 신랄하게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지난달 24일 보수단체 집회에서 "정치권에서는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소위 '수구꼴통'으로 몰릴까봐 몸조심 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호세력이 모두 단결해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나라의 기반을 바로 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이 북한 핵 폐기를 기화로 기존의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현 정부의 포용정책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고 한다는 게 이 전 총재의 인식이지만,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전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출마의 전제 조건으로 신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이 전 총재를 주저앉히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후보가 '친북좌파' 발언을 했을 때 우리가 잃은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 후보가 8월 29일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 세력과 보수우파 세력과의 대결"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 후보가 '색깔론' 논쟁에 휩싸인 것을 말한다.

이 측근은 "한 신문사 조사에서 8월20일부터 9월9일 사이에 7.3% 가량 지지율이 빠졌었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개혁·중도 성향의 유권자 상당수는 '친북좌파' 발언을 접하고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후보가 '이회창 향수'를 지닌 보수층을 의식해 과거 한나라당의 기조로 회귀하더라도 비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지할 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비보이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뒤 공연단의 춤을 따라하고 있다.
▲ 비보이 춤추는 이명박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비보이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뒤 공연단의 춤을 따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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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의 바람(?)대로 국가안보가 대선 이슈로 떠오르면 '유능한 경제전문가' 대 '무능한 여권 후보'라는 대결 구도 또한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이회창과 이명박, 보수성향의 양대 후보의 기세로 인해 당장은 3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안보 정책이 대선의 쟁점이 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 후보 주변으로 모여들 공산이 크다. 김형준 교수(명지대 정치학과)는 "이 전 총재의 복귀는 곧 자신들이 맞서 싸운 구(舊)정치세력의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동영 지지를 유보해온 친노 세력들에게 정 후보를 지지할 명분을 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이회창·정동영의 3파전 구도에서는 최악의 경우 "이명박·이회창 두 사람 모두 떨어지는 상황"(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이 올 수도 있다.

집안 단속? 실용주의 노선 수정? 딜레마 빠진 이명박 캠프

이 후보의 측근들은 '이회창 출마'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집안 단속'이다. 경선이 끝난 후 '찬밥' 대우를 했던 박근혜 의원에 대한 회유책들이 나오는 것도 "박근혜를 잡아놓으면 '이회창 출마'는 미풍에 그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나의 오만함을 깊이 반성한다. 내일(5일) 열릴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이런 사과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직접 찾아뵙고 사과의 뜻을 전하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그러나 박 의원의 한 측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사과해도 다음에 뒤통수치는 게 저쪽의 수법 아니냐? 말로만 사과하지 말고 최고위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한나라당의 신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것도 이 후보 측의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 전 총재에 이어 박 의원까지 '원칙 없는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할 경우 이 후보의 실용주의 대북정책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이 후보의 '친북좌파'발언에 염증을 냈던 개혁·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4일 오후 서울 홍대앞 커피프린스에서 '포스트386과의 대화' 행사를 가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한 시민과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홍대앞 커피프린스에서 '포스트386과의 대화' 행사를 가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한 시민과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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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후보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정치권 외곽에서 내놓는 처방은 제각각이다.

'강경 보수' 성향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양(兩)이씨가 만나 주요한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이 전 총재가 이 후보와 ▲ 6·15 선언과 10·4 선언의 무효화 ▲ 공직사회의 '친북좌익' 세력 정리 ▲ 헌법재판소에 대한 민주노동당 '해산' 제소 ▲ 불법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시위관계 법률의 엄격한 개정 ▲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중단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뒤 출마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보수세력 후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 전 총재와 함께 '보수세력 분열'에 대한 책임을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위협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반면, 김형준 교수는 "이 후보가 행여라도 이회창 지지표를 잡으려고 기존의 선거 전략을 바꾸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회창이 출마한다고 해도 '합리적·중도적 보수층'을 대변하는 이명박이 '수구적·기회주의적 보수층'을 대변하는 이회창을 몰아세워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은 어차피 이회창과의 '보수'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2002년 노무현은 권영길을 왼쪽에, 이회창을 오른쪽에 두었기 때문에 중도층 유권자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회창의 등장으로 인해 수면 밑에 있던 '집토끼'(전통지지층) 대 '산토끼'(중도개혁층) 논쟁이 재연된 것은 분명하다.


태그:#이명박,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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