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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물든 소금강 계곡.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 국내 명승지 1호인 소금강 가을빛이 물든 소금강 계곡.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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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정선의 가리왕산 단풍이 절정을 맞이하고 있던 때라 생뚱맞기는 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곁에 두고 길을 떠나다니. 주변의 상황만 짐작하면 정신나간 짓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길을 떠났다. 길 떠남의 목적이 비단 단풍의 화려함에 현혹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아름다움도 때로는 멀미가 날 정도로 답답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알아차린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지나친 아름다움도 때로는 멀미를 일으킨다

어디로 갈까.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고민했던 오늘 여행의 목적지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은 후에도 정해지지 않았다. 하루 일정으로 상큼하게 다녀올 곳이 인근에 널렸지만 막상 집을 떠나고도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망설였다.

하루 하루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즐거운 법. 차를 오대산 쪽으로 몰았다. 가슴 넉넉한  오대산 줄기에 세상사에서 받은 복잡한 심사 하나 내려 놓을 곳이 없으랴, 하는 식이었다.

정선에서 오대산으로 가는 59번 국도는 여전히 공사중이었다. 편도의 길은 길 안내를 하는 이도 없어 엉키기 일쑤였다. 30분이면 통과할 길을 1시간도 더 걸려 오대천을 벗어났다. 현장 소장을 찾아 멱살잡이라도 할 법한 도로의 '형편 없음'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복잡한 심사를 털어내기 위한 여행 길이 초반부터 엉망이 되고 말았다. 월정사 가는 길을 버리고 진고개로 갔다. 진고개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오대산은 이미 겨울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단풍을 다 떨군 진고개, 황당했다

황당했다. 단풍이 절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산은 비어 있었다. 도시에 살던 몇 해 전 단풍구경을 하리라 작심하고 오대산을 찾았던 때와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서울의 단풍의 뒤로 하고 떠난 여행 길이라 더욱 난망했다.

그때도 고속도로를 버리고 운두령을 넘어 홍천군 내면에서 상원사로 향하던 길이었다. 서울과 달리 오대산은 겨울 풍경이었고, 곳곳엔 고드름까지 달려 있었다. 훌쩍 떠난 가을이 야속했다. 대신 철 이른 겨울 풍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게 당시의 여행길이었다.
 
이번이라고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단풍이라고는 만날 수 없는 길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단풍 숲을 통과했던 기억은 아득한 추억 같았다. 진고개를 넘으면서도 가야 할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짙푸른 바다뿐이었다.

오래 전 계원들이 소금강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동해안은 계원들이 남긴 글이나 정자가 많은 게 특징이다.
▲ 소금강. 오래 전 계원들이 소금강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동해안은 계원들이 남긴 글이나 정자가 많은 게 특징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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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물든 소금강 계곡. 사람의 소리로 단풍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는다.
▲ 소금강의 단풍. 단풍이 곱게 물든 소금강 계곡. 사람의 소리로 단풍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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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과 바다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넓은 바다에 점 하나 박혀 있듯 초라한 존재도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생각 끝에 부연동으로 가리라고 마음 먹고 있는데, 문득 소금강에 있던 청학산장이 사라진다는 오래 전에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청학산장이 어떤 곳이던가. 소금강과 함께 많은 이들의 땀과 사연이 화석처럼 남아 있던 곳 이 아니던가. 청학산장의 운명이 궁금했다. 사라진다는 소문만 있었지 건물이 철거되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은 없다.

숱한 사연들을 간직한 청학산장이 아직 남아 있을까?

그래, 청학산장으로 가자. 연곡 3거리에서 소금강으로 길을 잡았다. 소금강을 '강'이라고 생각하고 찾아 헤매기도 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전해지는 소금강은 '작은 금강산'이라 할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그러한 이유로 '명승지 1호'라는 명예를 얻기도 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소금강으로 향하는 길은 복잡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최근에 소금강을 찾았던 것이 3년 전인 2004년 10월 24일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청학산장은 건재했고, 사람들도 드나들었다. 3년 후 다시 찾은 날이 지난 10월 27일이니 당시와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것도 의미 있다 싶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덕에 소금강 오르는 길은 '공짜'가 되었다. 그래서인가. 단풍이 사그라지고 있는 소금강엔 가을 나들이에 나선 이들이 등산로를 가득 메웠다. 밀려든 인파로 인해 주변 경치는 곁눈질로 살펴야 했다.

한치의 여유도 없는 산행은 앞선 이의 발치만 따라가야 했다. 단풍이 남아 있는 소금강 계곡은 거대한 물줄기 대신 사람이 강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거대한 사람들이 만든 인간의 강을 따라 등산로를 걸었다.

앞선 사람들의 재잘거림으로 인해 산행이라는 게 마치 도심의 길을 걷는 듯했다. 집안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친구 이야기, 돈에 얽힌 이야기까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들을 산 중에서 다 들어야 했다. 이 지긋지긋한 삶이란.

세상에 대한 인간들의 호기심과 욕심들이 지나치다 싶었다. 등산로 주변의 나무와 꽃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앞선 이들의 발치를 따라 걷다보니 청학산장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소금강을 찾았던 산사람들의 역사를 간직하던 청학산장. 2004년의 모습이다.
▲ 청학산장. 소금강을 찾았던 산사람들의 역사를 간직하던 청학산장. 2004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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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문을 연 청학산장은 2007년 8월 철거되었다.
▲ 청학산장이 있던 자리. 1972년 문을 연 청학산장은 2007년 8월 철거되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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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을 찾아 보았으나 청학산장은 보이지 않았다. 산장이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산장은 소문대로 철거가 된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이 터져나왔다.

산장에 머물던 이들이 남긴 땀과 눈물, 사랑까지 다 사라졌다

청학산장이 어떤 곳이던가. 1972년 문을 연 이후 35년간 숱한 사연을 만들어냈던 곳이 아니던가. 오랜 세월 간직해 놓았던 사연들이 한순간에 폐기물이 되어 버려진 것이었다. 산장에 머물던 이들이 남긴 땀과 눈물, 그리고 그들이 가꾼 수많은 사랑이 한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대명천지에 자행되다니. 산사람들의 사연이 이토록 처연하게 사라져도 된단 말이던가. 그에 대한 물음의 답은 이러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오대산사무소 소금강지구 관계자의 말이다.

"90년대 초 진고개가 확장, 포장되면서 이용객이 급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운영에 문제가 생겼고 보수 공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국립공원인 소금강지구의 자연보호와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산장을 철거해야만 했습니다."

청학산장의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었다. 자연보호와 생태계 복원을 위해 산장을 철거했다는 관계자의 말은 몹시 곤궁하게 들린다. 이런 사실을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청학산장이 산사람들의 삶에 있어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건물의 노후로 인해 철거함이 마땅할지라도 건물이 담고 있는 무형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우선일 것이나 관리공단은 산장을 단순히 관리하기 힘들다는 명목으로 철거를 감행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산장이 있던 자리는 빈 공터로 남았다. 곁에 공중 화장실이 있어 쉼터로서의 가치도 없다. 앉아 쉴 자리도 되지 않은 청학산장 터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쓸쓸하게 빈터로 남은 공간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변해버린 소금강의 모습에서 나는 이방인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길게 띠를 이루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 틈에 끼었다. 다시 앞선 이의 발치를 따라 의미도 없는 길을 걸었다. 갑자기 '왜 걸을까, 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을 헤집었다. 그에 대한 답은 식당암에서 찾았다.

소금강 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 소금강 단풍. 소금강 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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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군사가 한꺼번에 식사를 했다고 전해지는 식당암은 소금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식당암에 이르렀을 때 50대의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그녀의 비명은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묶었으며, 그 이후 내딛는 발걸음을 긴장시켰다.

그녀는 119구급대가 발목에 붕대를 감는 중에도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함께 온 일행들은 그녀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녀의 비명소리는 내가 던진 의문에 대한 답과 같았다.

"조심하셔야지요. 산을 우습게 보았다간 큰일납니다."

더 이상 산을 오르고 싶지 않았다. 식당암에서 발길을 돌려 하산을 하는 중에도 구급대원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 산을 우습게 보았다간 '큰 일' 나는 것이지. 그러하니 지금부터 겸손하게 산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지.

오래 전 남긴 내 사랑의 흔적이 이렇게 허접하다니

하산 길에 발목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여인의 비명이 계곡을 긴장시켰다.
▲ 등반 길에 만난 사고 현장. 하산 길에 발목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여인의 비명이 계곡을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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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에 의해 청학산에서 소금강으로 개명된 청학산을 빠져 나오는데 한숨이 흘러나왔다. 계곡 입구의 식당엔 단체로 온 손님들로 왁자했다. 나는 '청학산장이 없는 청학산은 두 번 다시 찾지 않겠노라' 다짐까지 하면서 소금강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청학산장에 머물고 있었던 산사람들의 영혼과 그들이 남긴 사랑에 대해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했다. 며칠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고작 이러한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청학산장과 안녕, 을 고한다. 오래 전 청학산장에 남긴 내 사랑의 흔적이 이렇게 허접하다니. 씁쓸하다.

소금강 계곡에 자리잡은 사찰인 금강사. 부도 1기만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절집은 현대에 와서 지었다.
▲ 금강사. 소금강 계곡에 자리잡은 사찰인 금강사. 부도 1기만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절집은 현대에 와서 지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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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학산장, #오대산, #소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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