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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창문 뒤쪽 마당에 많은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하룻밤 자고 나면 어느새 쌓여 있는 함박눈 눈처럼 수북할 정도다. 가끔 그 낙엽을 밟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감촉은 너무나도 좋다. 어쩌다 따사로운 햇볕이라도 내리쬐는 날이면 더더욱 아늑하다. 마치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을 듣는 기분이다.
 
그저께는 그 낙엽들을 큼지막한 빗자루 하나로 찬찬히 쓸어 모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니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산 속이나 들판이라면 그냥 내버려둬도 좋으련만 사람 사는 곳이니 치워야만 했다. 낙엽도 그렇지만 때론 사람들도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한마당에 함께 뒹굴고 있지만 때가 되면 하나 둘 떠나야 하는 모습들…. 그게 어쩌면 인생이기도 할 것이다.

 

빗자루에 묻혀 스르르 쓸려가는 낙엽들을 보니 그야말로 형형색색이다. 안에서 보면 모두들 고운 빛깔을 하고 있지만 바깥에선 그 사정이 달랐다. 놀놀하거나 빨간 빛을 띤 낙엽들도 있었고, 검붉은 빛을 띤 낙엽들도 있었다. 그래도 온통 땅을 도배한 것은 희멀건 빛의 낙엽들이었다. 흡사 그것들은 아직 생기 어린 생명들의 고함 같기도 했고, 세상 음지 속에서 힘겹게 생을 다한 사람들 같기도 했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시절의 오줌보 친구들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빛깔만 다양한 건 아니었다. 생김새도 제각각이었다. 쭈글쭈글하거나 한쪽 부위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었고, 겉은 바짝 탔으나 속이 고르지 못한 낙엽들도 있었다. 팔순인생을 산 노인들의 얼굴 모습이 흡사 그 속에 담긴 듯했고, 일찍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얼굴 모습 또한 그런 것 같았다. 잔잔한 가을 호수처럼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아픈 흔적이 배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다.

 

“엊그제 듣자니 그 사람 제주도에 있다던데요?”
“거기서 쉬나 보죠. 근데 얼굴이 않 좋더라구요.”
“젊은 시절에 좀 고쳤든가 그랬지요, 뭐.”
“그럼 더 힘들겠네요.”
“그렇겠죠.”
“그러고 보면 전원주가 낫다니깐요.”
“당연하죠. 자연 그대로니 얼마나 좋아요.”
“근데 늙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아니 무슨 추태래요. 늙으면 곱게 늙어야지.”

 

저녁 무렵 수요 예배를 향해 달리는 봉고차 뒷전에서 몇몇 권사님들이 주고받은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쭈글쭈글한 모습을 띤 팔순 할머니 권사님도 두 분이나 있었고, 육십 고개를 준비하고 있는 권사님 한 분과 오십 고개를 넘어서고 있는 권사님 두 분이 있었다. 나이 차이는 나긴 했지만 다들 가을 낙엽처럼 잘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나 싶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한 줌 낙엽임에 틀림없다. 빨갛거나 놀놀한 생기발랄한 빛을 띤다 해도, 눌눌하거나 희멀건 빛을 띤다 해도, 쭈글쭈글하거나 움푹 패인 모양새를 해도 언젠가는 떨어져야 할 낙엽 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치를 안다면, 인생의 끝물 때보다 젊디 젊은 시절에 곱게 늙어가도록 애를 쓰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싶다.


태그:#가을 낙엽, #낙엽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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