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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람끼리는 정치를 논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은 일인데, 어쩌다 보니 그 금기사항을 깨고 말았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름대로 고담준론을 나눌 시간인데 시국이 시국인 만큼 대선주자 이야기로 방향이 틀어졌다.

 

모여 있는 지인들 면면을 따지자면 평소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주장하는 의견도 아주 다양하고 소신도 뚜렷하다. 그런 사람들 틈에 A형 특유의 성격으로 소심하고 의견표명도 별로 없는 내가 끼어 "이 말도 일리가 있소, 당신 말도 그럴 듯하오" 틈틈이 맞장구를 치며 고명 역할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하여튼 그 자리는 한탄으로 시작됐다. "우리가 저 말도 안 되는 맹바기 밑에서 살아야 하겠느냐? 대안은 과연 누구냐?" 좌절감으로 한숨을 푹푹 쉬는데 한쪽에 앉았던 지인이 아직은 희망은 버릴 때가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국현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어요. 범여권 주자를 보세요. 문국현보다 나은 사람이 누군가? 경제가 핵심인데 이명박에 대항마는 성공한 CEO, 깨끗한 기업인 문국현 외에 누가 있겠어요?"

 

[열혈 지지자] "깨끗한 기업인 문국현보다 나은 사람이 누구에요?"

 

그렇게 포문을 연 지인은 최근에 문국현 신당에 참여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여권 대표 선수로 뽑힌 정동영은 몇% 부족한 것 같고, 특별히 지지할 만한 믿음직한 후보는 없다"며 고민만 하던 중인데 그 말을 시작으로 화제는 자연스레 문국현으로 집중되고 말았다.

 

경선과정에서 3등으로 낙마한 이해찬 후보 지지자였던 나는 할 말이 없어 그저 듣기만 하고 있는데 포문을 연 지인이 하필 나를 지명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글쎄… 나는 사실 문국현이란 사람을 잘 모르겠어요. 문국현씨가 실패하지 않은 CEO는 분명하지만 성공한 CEO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지 않나? 모기업 유한양행은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모범적 기업이잖아. 유일한 회장의 경영철학을 본받아 착실하게 기업을 꾸린 전문 경영인 문국현, 나는 이 정도로 생각해. 그래서 '정치인 문국현' 이러면 실상 확실하게 잡히는 게 없당게요…."

 

사실 그랬다. 후보는 공약을 검증해서 옥석을 가려야 한다지만 그 공약이란 게 너무 많고 너무 길어 나같이 지적 호기심 없는 아줌마는 읽어도 뭔 소린지 잘 모르겠는 내용뿐이었다. 그저 하나같이 가장 좋은 구호를 나열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는 것들이 각 후보의 정책 공약이었다.

 

그 짧은 행간에 숨은 본뜻을 가려낼 만한 실력이 없는 다음에야 정책으로 사람을 가려내는 시도는 애초에 가당치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할까? 이해찬씨는 내가 직접 겪은 인물이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의 장단점, 무엇이 뛰어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너무 잘 알아 선택에 헛갈릴 일이 없었는데 역시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는 최고의 참모형이지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의견이었을 게다. 유능하고, 깨끗한 인재였지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포용력에서 한계를 드러낸 까칠함. 아마 그런 성향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리란 예측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낙마했다 하더라도 어찌 됐든 소중한 한 표는 행사해야 하는데 잘 모르는 지지 후보를 고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땐 속담을 활용한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

 

후보의 프로필을 보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됨됨이가 보인다.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오만하기까지 하면 그 다음부턴 내리막길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마치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는 약장수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후보는 영 신뢰가 가질 않는다. (하긴 모든 후보가 그 짝이지만.)

 

그래서 식자층부터 시작해 범위를 차츰 넓혀가는 문국현 후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 사람이 과연 우리의 '오아시스'가 될는지 아니면 '신기루'에 불과할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혈질 반대자] "사장님 자식과 월세살이가 같은 비정규직? 착각하지 마세요"

 

열렬한 문 후보 지지자의 지지 발언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지인이 나섰다. 이 친구도 앞서 그 열혈 지지자처럼 다혈질인 사람이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매사에 의견이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문국현씨가 무슨 성공한 CEO입니까? 성공한 기업가라고 하면 적어도 부도난 회사를 회생시켰다거나 아니면 매출이 형편없는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웠다거나 하는 정도는 되어야지요.

 

그리고 그 사람 업적이라는 '이 강산 푸르게 푸르게' 같은 공익광고로 홍보하면서 나무심기를 했다고 하는데 아니 유한킴벌리가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나무 잘라 휴지·기저귀·위생용품 그런 거 만드는 회사 아닙니까? 나무 실컷 잘라 공산품 만들고 나서 보답용으로 나무심기 운동, 그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단 말입니까?"

 

서로 얼굴까지 벌겋게 붉혀가며 '핏대'를 올리는데 아슬아슬했다. 두 사람의 논쟁이 격화되는 것 같아 내가 초를 치기로 했다.
  
"히히히~ 나무 잘라놓고 안 심는 인간도 있잖아. 그 정도 양식이면 격려를 해줘야지."

 

문국현 지지자는 문국현의 모든 장점을 총출동시키며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문 후보 외에 어떤 기업가가 자신의 재산을 그만큼 시민사회운동에 쾌척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업가가 또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더구나 경영능력도 뛰어나 이명박은 고작 현대건설에서 땅판 것이 전부인데 문국현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유한킴벌리에 북아시아를 총괄하는 대표이사를 맡을 정도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전부 다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국현의 거품을 주장하는 다른 지인은 '그 후보가 몇% 부족한 것은 똑같다'는 항변을 계속했다. 우선 '자기 연봉의 몇십%를 시민단체에 기부했다는데 그 기부가 순수하냐'는 의구심을 주장했다.

 

입법·사법·행정 3부에 4부는 언론, 5부의 권력기관은 시민단체라는데 그 NGO에 기부를 한 것은 결국 자기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투자를 한 것은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그리고 기업경영에 실패하지 않았다고 국가를 잘 운영한다는 확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막말로 자기 딸들이 모두 다 비정규직이라 비정규직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하는데 수백억 재산을 가진 사장의 자식과 지하 월셋방에서 신음하는 비정규직이 같은 급수로 비교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는 소리였다.

 

[소심한 아줌마] 참신한 문국현, 그러나 좀 떴다고 너무 오만방자해

 

두 사람의 침 튀기는 논쟁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문 후보를 비롯한 여타의 주자들 모두가 자신만이 대한민국을 1등 국가로 만들 적임자라고 큰소리치는데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주요 정책 몇 가지를 진정성을 가지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최대한 노력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소를 하는 게 국민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 아닐까.

 

다른 정치인 출신의 후보자와 달리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문국현. 그는 좀 더 겸손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정치인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드러낸 처지지만 문국현만은 아직 사람들에게 그런 치부를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치경험이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런 썩은 정치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고, 단일화는 단연코 자신이 돼야 하며, 범여권 어떤 후보도 자신과 연대할만한 후보다운 후보는 없다고 큰소리 치는 것을 보면서 사실은 많이 실망했다.

 

얼마나 떴다고 벌써부터 저리 오만할까? 범여권 후보들이 아무리 함량 미달이라고 해도 그런 방자함에 고개 끄덕일 국민은 없다고 생각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교훈을 생각하며 오늘도 문국현을 지켜본다.

 

그는 과연 '우리가 그처럼 바라는 오아시스'일까 아니면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할까?

 

오직 그의 손에 달렸다.


태그:#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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