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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를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기자주

 

“어?”

 

중국 교포들과 때 아닌 신경전을 벌이느라 지쳐가고 있던 내게 더 힘이 빠지는 일이 연달아 생기기 시작했다. 강의할 동안 자동으로 복사기가 전단지를 복사하게 해놓았는데 끝나고 나니 다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복사된 것은 저기 올려놓았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멀뚱 서 있다 실장이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까 하다가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어 입을 다물었다. 비록 학원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복사 용지를 너무 많이 쓴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같이 쓰는 것이니 나 혼자서 백 장을 복사하면 학원 입장에서는 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눈에 거슬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복사 용지마저 제대로 사용 못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전단지 돌려가며 모은 학생인데 정작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무언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인지라 학원 입장을 고려하여 한국어를 배울 학생들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모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학원 태도에 조금씩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로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학원을 배려해주었다고 생각했기에 그 실망감은 더했다. 일례로 한국어 강의는 주말에 하는 것이라 학원 차량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학원과 국수 대학교의 거리가 멀고 중국 학생들이 위치를 잘 몰랐기에 차량 지원은 필수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 돈으로 차를 구해 중국 학생들을 학원으로 데려오고 다시 학교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학원 입장을 고려해 여러 배려를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학원에서는 복사 용지 쓰는 것도 알게 모르게 막으니 불쾌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복사 용지를 쓸 때도 마음 같아서는 몇 백 장을 하고 싶었으나 학원 입장을 고려하여 100장~200장으로 제한했는데 그것마저 제한 당하니 울분이 치솟았다.

 

허나 마음을 곧 고쳐 먹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고,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가 복사 용지를 사서 몇 백 장이고 복사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더 실용적이리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곧 300명 되겠죠.”
“의자나 책상 부족해서 학생들 못 데려오는 거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든지 강의실 만들 수 있어요.”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서운한 감정이 들게 하기는 했지만, 종종 실장이나 원장이 내가 분명 잘 될 것이라고 말했던 한국어 강좌에 대해 기대감을 보일 때면 조금만 더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믿고 있는 미래를 남들도 믿는 미래로 바꾸리라.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중국 학생들 영업 사원으로 좀 쓰지요

 

“그 중국 학생들 우리 영업 사원으로 좀 쓰면 어떻겠어요?”

 

원장과 내가 중국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명확하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장은 그 당시 프랜차이즈 영어 업체를 학원으로 들여왔었다. 본래 한국에서는 방문 형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업체였으나 중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다 보니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 독점 계약을 따내어 학원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게다가 중국에서 이미 허가를 받은 것이기에 중국 학생들도 모집할 수 있었다. 단, 학원은 주로 한국 학생들이 오는 만큼 원장은 중국 학생들은 방문해서 가르치는 한국 방식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고객층인 중국 학생을 딱히 끌어오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중국 학생들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중국 학생들에게 일정한 액수의 성공 수당을 주고 학생들을 모집해 오게 하는 것이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학습지 회사에서 얼마간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힘들게 영업을 하고서도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시간만 버리고 돈은 못 받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뿐더러 대학생들의 경우 이 곳이 연고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과 만나고 교류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영업 사원을 모집하기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우스운 모양새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바꾸어 생각하면 대학생들에게 돈 벌 기회를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대부분 수익률이 낮은 경우가 많기에 정말 권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원장의 끈질긴 설득과 혹시 중국 학생들이 반응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한 번 학생들에게 말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영어를 담당하고 있던 중국인 선생과 같이 국수 대학교로 찾아가 친분 있는 중국 친구들을 불러 만나게 해주었다. 이런 저런 얘기가 한참 동안 오갔으나 결론은 ‘하지 않겠다’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 결론도 더욱 확실해졌다. 처음부터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한국어 수업 들으러 온 애들한테 영업 사원 하라는 얘기하기도 싫었다. 물론 수강료를 받긴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어를 잘 가르치겠다는 목적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과장해 말해 신종 다단계 같은 느낌도 들어 원장의 권유를 단호히 거부하지는 못했으나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비록 그렇긴 하나 비가 올 때 전단지를 돌리러 가면 학원 차량을 보내 태워 주는 등 원장이 배려해준 적도 많고, 격려해 준 적도 많았기에 위태하기는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수강생을 모집하러 다닐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비록 원장과 내가 중국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 이윤에 대한 생각 등 여러 면에서 다르긴 했지만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어쨌든 원장도 기본적인 내 구상에 공감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스스로 학생 찾아 나서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정말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먹으면서 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8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위에 나오는 지명 및 인명, 교명 등은 모두 가명입니다.


태그:#청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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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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