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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안했으면 좋겠는디."
 
전화로 취재요청을 하자 조남칠 에그홈 대표(65)는 거듭 사양했다. 건강 문제로 병원 출입이 잦아 시간 내기도 힘들 뿐더러 취재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행여나 피해를 줄까 하는 걱정도 내비췄다.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인을 소개하는 목적"이라고 취지를 설명했지만 조 대표는 극구 거절했다.
 
하지만 5일간의 구애 끝에 결국 "토요일엔 괜찮으니 오라"는 허락을 받았다. 지난 20일 에그홈 영양란 조남칠 대표를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가을 찬바람이 제법 매서웠지만 개량한복을 걸친 그는 문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삶은 계란 하나면 행복했던 시절
 

1974년 여주에 자리를 잡고 양계장을 차렸다. 소·돼지를 키우다 양계장이 벌이가 좋다는 말을 듣고 옮겨 온 것이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달걀은 소풍이나 운동회처럼 '행사'가 있는 날에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이렇다보니 그땐 달걀을 생산하는 족족 상인들이 제값 쳐주고 사갔다. 2남 2녀 대학교육 다 시키고 작은 아들은 미국 유학도 보냈다.

 

군것질 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소풍날 가슴 쳐가며 삶은 달걀을 먹는 모습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달걀 값도 떨어졌다. 개당 100원은 받아야 이윤이 남는데 95원, 90원으로 떨어지더니 경쟁이 붙어 요샌 80원 불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조류독감도 달걀소비 하락을 거들었다. 30년 넘게 이어온 조 대표의 생업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이지 아마, 달걀 값은 계속 떨어지고 소비는 줄고, 방법이 없더라고. 사료를 바꿔서 고급달걀을 생산해보자 해서 시작한 거야."


사료 업체에 허브와 목초, 숯가루를 넣은 특수 사료를 주문했다. 따로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오랜 경험으로 닭에게 가장 좋은 사료를 직접 구상한 것이다.

 

"일반 사료보다 kg당 500원 정도 비싸지. 그래도 이 사료를 쓰니까 닭이 면역력도 좋아지고 달걀 품질도 좋아졌어. 가격도 일반 계란보다 개당 5원 더 받게 됐고. 사료 덕분인진 몰라도 조류독감도 우리 계사는 피해가더라고."


자체브랜드 달고 마트에 납품하지만 수입은 제자리걸음

 

품질 좋은 계란을 생산한단 입소문이 퍼져 중대형 마트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마트에 직접 계란을 납품하는 판로가 열린 것이다. 큰아들이 지었다는 '에그홈'이란 자체 브랜드를 달고 계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생산부터 포장까지 모두 에그홈에서 이뤄진다. 지금은 여주지역 6개 마트에 달걀을 납품하고 있다. 마트 직원들도 "한번 맛보고는 맛이 좋다며 재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칭찬 일색이라고 한다. 에그홈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영양란은 1만3천개 정도. 전량 마트로 납품되고 있다. 작년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납품했는데 건강 문제로 요즘은 서울에 사는 큰 아들이 매일 새벽 수고해주고 있다.

 

하지만 달걀 소비가 줄고 있어 힘든 건 마찬가지. 에그홈은 3개의 계사 중 현재 1개만 가동 중이다.

 

"지금이라도 나머지 계사에 닭을 들여다 달걀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해봤자 팔 때가 없으니 문제지. 이 마을도 예전에는 온통 양계장이었는데 지금은 몇 곳 안 남았어."

 

 

예전엔 농가에서 퇴비로 쓰기 위해 닭의 분뇨를 구입해 갔으나 지금은 그나마도 끊긴 상태다. "계분을 퇴비로 쓰면 농산물에 좋겠지만 손도 많이 가고 요즘은 워낙 화학비료들이 잘나오니까…" 조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마른 입을 다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65세의 나이에도 그는 새벽 5시면 계사로 나간다. 밤새 사료가 떨어진 곳은 없나 일일이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식들이 "당신 몸 보살피라"며 "양계장을 그만 두면 안 되냐"고 운을 떼보지만 손사래를 친다. 언제까지 양계장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내 몸 움직일 때까지 하는 거지. 이 일에 정년이 어디있냐!"

 

나이도 잊은 채 닭을 키우는 조남칠 대표, 취재가 끝났다고 얘기해도 계란을 손에서 내려 놓지 않았다. 조 대표의 손 안에 담긴 그 계란의 맛이 궁금해진다.


태그:#달걀, #계란, #에그홈, #조남칠, #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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