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걷다가 보면 만나는 풍경 중 하나다. 구름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 순간을 놓치면 금방 그 모양이 바뀐다. 이런 풍경도 걷기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 걷다 보면 만나는 풍경 걷다가 보면 만나는 풍경 중 하나다. 구름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 순간을 놓치면 금방 그 모양이 바뀐다. 이런 풍경도 걷기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 장호준

관련사진보기


걸음을 멈추고

추석 명절과 잦은 비 때문에 걷기가 리듬을 잃어버렸다. 근 한 달간 일주일을 꼬박 걸은 기억이 없다. 비 때문에 아침엔 차를 타고 저녁은 걷고, 아니면 순서가 바뀌었다.

걷다가 비가 쏟아져 차를 타기도 했다. 그렇게 들쭉날쭉 걷다 말다 하다 보니 마음도 풀어졌다. 다리가 조금 아프고, 기분도 별로다 싶으면 그 핑계로 차를 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분은 더욱 가라앉는다.

그러나 자꾸 이럴 수는 없다. 걷는다는 것이 단순한 다리운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걸어야 한다. 그래서 명절에도 그간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걷기를 의식해서 쇼핑을 가는 데도 일부러 지름길을 두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나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렴, 아침, 저녁으로 가야 하는 곳에 가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이럴 때의 구속은 자유보다 더 좋은 것이다.

동반자

걷다가 보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반자들을 더러 만난다. 한 번은 세 여학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은 적이 있었다. 나는 짧은 거리를 가는 잠시 스쳐가는 학생들이겠거니 했는데 세 여학생은 뒤돌아보면 부지런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몇 Km를 같이 걷는다는 것이 도심 속에선 드문 일이라 나는 잠시 멈춰, 카메라로 빌딩사이의 해돋이를 찍고 있는 척 하다가 옆으로 지나가는 학생들을 불렀다.

"너거 어데까지 가노?"
"00 여자고등학굔데예"

내 목적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눴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반자였으니까.

물론 학생들은 앞으로도 걸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후로 행여 하며 그 여학생들을 찾아 봤지만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여학생들이 걷기를 계속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섭섭함도 없다. 학생들의 나이에는 걷기보다 더 바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보면 지하도의 비탈길을 무거운 리어카를 끌며 힘겹게 올라가는 아주머니를 만날 때도 있다. 아주머니는 말도 잘 못할 만큼 힘들어 보였다.

"저기 아저씨이~ 쪼끔 밀어 주마 안 되예?"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였다.

왜 안 되겠는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기꺼운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짚어 아주머니가 고개 마루를 넘도록 밀어준다.

길을 걷다가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또 서슴없이 그 보따리를 낚아채고 걷는다. 그 분들은 하나같이 고맙다고 인사하지만 오히려 나는 걷기에 그런 변화를 준 그분들이 더 고맙다. 정말이다.

그래 이 세상은 피 튀기는 경쟁사회이고 내가 누구를 밀어내지 않으면 내가 못 올라서고 결국은 나는 도태된다고 생각해서 대립 각을 세우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까 함께 협력해가며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말이다.

경쟁이란 남들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진실한 속성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발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걷기만이 아니다. 걷다 보면 어제 먹었던 술의 독소가 수분을 통해 밖으로 내뿜어지는 것을 느낀다. 걷기는 어제 내 몸에 쌓인 피로와 불안이 딱딱한 고체로 변해 내 몸에 남아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한다. 그뿐만 아니라 걷기는 내 몸을 숙주 삼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그 모든 독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것이란 것을 나는 믿는다.

걸어보라.

세상의 신선한 공기와,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 몸에 들어와 어느 새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걷는 만큼 기쁘고 걷는 만큼 즐거워지는 것이다. 걷는 만큼 부드러워지고, 걷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걸어보라.

걸어보면 걷는 만큼, 증오와 미움이, 용서와 화해로 내 속에 걸어 들어와 드디어 사랑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날씨가 변하자 지하도의 노숙자도 달라졌다. 계절이 바뀌어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요즘 그는 몸꼴을 내던 여름과는 달리 새집을 지은 머리를 감을 생각도 않고 잠을 못잔 부석부석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찬 곳에 자서 그런지 한쪽 다리도 절룩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노숙자가 아닌 척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계절은 걷기에도 다른 반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여전히 그의 옆을 지나가지만 이젠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땀도 없다. 날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배려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연간 강수량의 90%가 여름에 쏟아진다니 지금은 겨울을 앞두고 있는 계절이라 앞으로는 비가 거의 없을 것이다. 불과 일주일의 명절 휴가와 비로 인한 걷기의 지지부진은  다시 빡빡하게 걷기를 시작해 일주일쯤 지나자 대번에 다리가 아파왔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하루 두 번에 나누어 약14Km를 칠개월째 걷고 있지만 잠깐의 태만으로 그간에 쌓은 탑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헷갈렸다.

그렇다. 저축을 하려고 걷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저축할 수 없듯이 걷기도 저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동굴을 파듯이 앞의 흙을 파내어 뒤로 넘기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이제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을 것이다.


태그:#걷기, #구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