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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책상맡에 늘 놓아두면서 틈틈이 읽어 나가는 책이, “책상맡에 놓는 책”입니다. 참 좋다고 느껴서, 짧으면 반 해, 길면 여러 해에 걸쳐서 읽고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이 책들 이야기를 짤막하게 끄적여 보겠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차 문화' 이야기책입니다.
▲ 겉그림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차 문화' 이야기책입니다.
ⓒ 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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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다도와 일본의 미

- 책이름 : 다도와 일본의 美
- 글 : 야나기 무네요시
- 엮은이 : 구마쿠라 이사오
- 옮긴이 : 김순희
- 펴낸 곳 : 소화(1996.3.30.)
- 책값 : 6800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학년을 마칠 즈음이면 담임을 찾아가 꼬박꼬박 ‘돌려 달라’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 일기장입니다. 담임은 아이들 일기장을 고스란히 모아서 간직하게 되어 있었는지, ‘일기장 돌려받기 바라는 사람?’을 물은 뒤, 따로 바라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발자취를 하나하나 모으고 싶은 마음이 짙어서 잊지 않고 챙겼으나, 1학년 것은 미처 못 챙겼지 싶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고 난 뒤, 시험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모의고사 시험지도 차곡차곡 모았고요. 쪽지시험 종이도 모으고 싶었는데, 쪽지시험 종이는 못 챙겼습니다.

… 다례에 빈부의 격차는 없다. 가난한 자라도 ‘차’를 즐길 수 있다.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다도에 관한 여러 일이다. 아니 인간의 다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공유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 (87쪽)

역사를 알 턱이 없었고, 무엇이 문화가 되는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때였는데, 역사를 배울 때 ‘왕 이름만 외우기’ 시키는 것, ‘전쟁영웅이 무슨 싸움터에서 몇 사람을 죽였는가 자랑 외우기’ 시키는 것이 참 싫었어요. 살수대첩이니 무슨 대첩이니 할 때면, ‘그때 우리 군인들은 얼마나 죽었을까, 또 죽은 이들 남은 식구는 어떠했을까, 또 우리가 죽인 그 적군 병사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 적군 병사들 남은 식구는 어떤 마음일까’가 떠오르곤 했어요.

… 진정한 자유에 기인하는 창조미가 아니라 억지로 신기로움을 꾸민 집착의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집착은 인간을 부자유로 빠지게 한다. 음악 세계에서도 근대에 와서는 소음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도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기로움으로의 집착에 사로잡힌 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192∼193쪽)

그래서 꿈을 하나 꾸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살아간 발자취를 알뜰히 모아 놓고, 이것들을 한 자리에 보여주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를 말하겠다고.

지금 제 책상 서랍에는 국민학교 때 쓰던 이름표, 필통, 연필, 공책, 색종이, 판박이, 껌종이, 책받침 들을 비롯해서, 버스표와 전화카드와 야구장 입장권과 편지봉투와 학부모 알림 쪽지와 중학교 적 보충수업비 영수증과 그때 연예인 사진 오려 모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우리 땅 구석구석 힘없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 겉그림 우리 땅 구석구석 힘없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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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우리 옆의 약자

- 책이름 : 우리 옆의 약자
- 글쓴이 : 이수현
- 펴낸 곳 : 산지니(2006.3.31.)
- 책값 : 12800원


자전거를 타는 까닭이라면 ‘더 빨리 가고 싶기 때문’은 아닙니다. 때때로 빨리 갈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탈 때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어 좋기도 합니다. 가방을 메고 걸을 때보다는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 힘이 한결 덜 들어요. 그렇지만 자전거 타는 까닭은 ‘짐을 나를 생각’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업주들은 일은 많이 시키면서 돈은 적게 주었다." (37쪽)

내 두 다리로 움직이는 일, 내 몸뚱이를 쓰는 일이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걷기가 두 다리를 쓰듯, 자전거 타기도 두 다리를 씁니다. 자가용은 두 다리를 안 씁니다. 버스와 전철이나 기차 또한 두 다리를 쓸 일이 없습니다. 자가용을 타면 책조차 못 읽습니다.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잠깐이나마 책을 쥘 수 있습니다. 다만,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책을 오래 못 읽어요. 꽉 막혀 있는 쇠붙이 통인 터라 숨이 막혀서 머리가 지끈거리니까요.

자전거를 탈 때에도 책을 못 읽지만, 내 몸뚱이를 써서 움직이기 때문에 차츰차츰 몸이 튼튼해집니다. 몸이 차츰 튼튼해지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도 몸이나 마음이 한결 싱싱합니다. 집에서 씻고 치우고 아이 돌보고 한 뒤에도 책을 잠깐 펼칠 수 있는 기운이 남아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자기한테 주어진 한 삶이라고 하는 시간을 한껏 알뜰히 즐길 수 있습니다. 자가용 몰며 보내는 시간과 자전거 타며 보내는 시간은 서로한테 얼마나 다르게 영향을 끼치는가요.

"두발제한과 체벌 등이 아직도 횡행하는 이유를 학생들은 입시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했다." (160쪽)

요사이 자전거 타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찻길에서도 싱싱 달리는 분을 곧잘 만납니다. 하지만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즐길 줄 아는 분은 썩 안 늘었구나 싶어요. 자전거 타기는 무엇보다도 자기 몸을 가꾸는 일이요, 자기 둘레 사람들을 더 두루 헤아리는 일이며, 자기가 디디는 이 땅을 더욱 돌아보고 보듬는 일인데 말입니다.

찻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전거꾼한테 폭력을 휘두르는지 느끼고, 거님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이곳에서는 자전거가 걷는 이한테 폭력을 휘두를 수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없다면, 자전거 타는 보람이란 어디에서 찾을까요.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 한갓진 취미생활이 자전거 타기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닌 100 가지 동무 이야기를 담은 살가운 이야기그림책입니다.
▲ 겉그림 사람이 아닌 100 가지 동무 이야기를 담은 살가운 이야기그림책입니다.
ⓒ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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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백 가지 친구 이야기

- 책이름 : 백 가지 친구 이야기
- 글ㆍ그림 : 이와타 켄자부로
- 옮긴이 : 이언숙
- 펴낸 곳 : 호미(2002.5.25.)
- 책값 : 8700원


날이 갑자기 포근해지는 요즈음, 모기장에 들어가서 자지 않으면 모기가 하도 물어뜯어서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모기장 바깥에 나와 드러누워 쉴 때면 꾹 참습니다. 엊저녁, 하는 수 없이 모기향을 태웁니다. 모기는 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기향 내가 머리를 어질어질 만듭니다. 그리고 모기향 내에 어질어질해 하며 갈 곳 몰라 하는 바퀴벌레 두 마리 신문을 똘똘 말아 때려잡습니다.

"달님의 친구는, 그래,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 (10쪽)

겨울이 문턱인데 외려 더 따뜻해지는 올해 날씨는, 저녁까지 햇볕이 쨍쨍 내리쬐다가도 어느새 굵은 빗줄기가 쫘악 내리붓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길이 촉촉하게 젖어 있곤 합니다. 이때 제 살림집이 있는 4층 마당에도 물기가 배어 있습니다. 비가 쏟아붓지는 않고 땅을 살짝 적실 만큼 오기도 합니다. 이슬비라고 해야 할까 가랑비라고 해야 할까,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먼지 띠를 조금 씻어낸 비입니다. 아니, 비님입니다. 우리들 사람이 엉망진창으로 흩트려 놓은 뿌연 하늘을 말끔하게 씻어 주려는 비님입니다. 다만, 비님 마음씀만으로는 하늘이 맑아질 수 없어요. 어젯밤 잠깐 먼지 띠를 씻었다고 하나, 우리들 사람은 오늘 하루 또다시 엄청난 자동차 배기가스며 갖가지 화학물질 담긴 쓰레기물이며 공해 덩어리를 잔뜩 쏟아낼 테니까요.

"나뭇가지가 벌거벗었다고? 자세히 보면, 가지마다 작은 겨울눈이 촘촘해. / 나뭇가지의 친구는 작은 벌레들. 몸을 떨며 마음속 가득 눈을 틔우네." (28쪽)

어느 분이었던가, 환경운동이 가야 할 가장 마지막 길이라면,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쓰지 않고, 무슨 물건을 쓰든 버리지 말며 어디에든 쓸모가 있도록 찾아서 쓰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에서 읽었던가.

요사이 이 말을 곰곰이 되씹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을 거닐며 골목 어귀에도 모퉁이에도 구석진 데에도 쓰레기가 버려져 있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이 골목길에 사는 분들은 자기한테 소중한 삶터이기 때문에 쓰레기를 안 버리는구나. 보여도 자기들이 먼저 집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골목길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무슨 물건이든 그에 걸맞은 쓰임새를 찾아서 알뜰히 쓰지 않겠느냐 싶은 생각.

"'정말 그래,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거야.' 물쥐가 속삭인다. /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 가득한 별님." (50쪽)

오늘 하루를 맑게 비추어 줄 해님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얼마쯤 있으면, 또는 하루나 이틀이나 며칠쯤 있으면 다시 얼굴을 드러낼 해님이겠지요. 못난 사람한테도, 잘난 사람한테도, 몹쓸 사람한테도, 착한 사람한테도, 더러운 사람한테도, 깨끗한 사람한테도, 늙은 사람한테도, 어린 사람한테도, 누구한테도 고르게 따순 볕을 내려주는 해님입니다.


다도와 일본의 미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김순희 옮김, 소화(2004)


태그:#책읽기, #야나기 무네요시, #이수현, #이와타 켄자부로, #책상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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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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