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래도 현재의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의 방향을 찾는 것은 이해찬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한 정부에서는 교육부 장관으로 그리고 다음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교육에 관한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의 비판은 전적으로 그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정책의 일부는 이미 문민정부 때 시작된 것들을 이어받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입장에서는 이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와 그가 속했던 정부가 책임을 맡은 시점이 이미 경제위기가 휩쓸고 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그 역시 하나의 상징인 것을.

첨언하자면, 나에게는 지난 10년의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글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유학생활을 준비하고 외국에서 적응하느라 한국의 교육현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비판을 바란다.

비유해서 표현해 보면 그의 교육 정책은 좌측 깜박이와 우측 깜박이를 동시에 켜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채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와 같았다. 

그 첫 번째 깜박이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교육의 '합리화'를 주장하면서 '경쟁'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문민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교육에도 '시장'의 개념을 도입하여 소비자인 학생을 위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관료주의적인 교육행정 및 교수와 교사들이 보여 주던 기존의 잘못된 관행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로 인해 처음에는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 때부터 모든 것이 점수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지원금을 매개로 교육부는 대학개혁을 추진했으며 대학과 교수들은 어떤 점수를 어떻게 따야 되는지를 다른 무엇보다 앞서 고민했다. 일정한 기준에 의해 일렬로 줄을 세우는 그의 교육정책은 결국 이미 앞서 가고 있던 일부 대학들에 더욱 많은 지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낳았고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와 함께 점수로 계산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이 차츰 대학에서 사라져갔다.

그의 교육에 대한 시장논리의 적용은 중등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특수목적고는 '특별한 학교'가 되었다. 또 '교사평가제'를 도입하려는 그의 시도는 합법화로 인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전교조와의 첫 번째 마찰을 빚어냈다. 사실 무능하고 부패한 교사를 걸러내는 일은 학부모들의 공감을 얻었지만 그 평가의 내용과 방식을 두고 교사들은 분노했다.

판매 실적으로 드러나는 영업사원의 평가는 손쉽다. 그러나 교육의 목표를 무엇으로 두는가에 따라 교사에 대한 평가기준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가장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평가기준은 아이들이 점수를 어떻게 받고 좋은 상급학교에 얼마나 합격 시키는가이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듯 시험에서의 점수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며,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그 결과가 눈앞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장의 경쟁을 학교에 도입한 그의 오른쪽 깜박이가 비난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해찬의 교육정책이 더욱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은 그가 왼쪽 깜박이를 동시에 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판은 그의 왼쪽 깜박이가 학부모들이면 모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입시정책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시빗거리가 되었다. 물론 입시정책이 논란거리가 된 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경제위기로 인해 대학 졸업생의 취업이 심각하게 위협 받는 상황에서 그의 왼쪽 깜박이가 기존의 공교육체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기대와 반대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민주화 세대의 선두주자였던 그는 동시에, 386들과 함께,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3불정책'으로 대표되는 공교육의 수호는 그로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근간이었고, 수월성이 아니라 봉사활동으로 대표되는 인성교육은 전교조를 비롯한 기존 민주화 세력의 오랜 주장이기도 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그는 수능출제의 난이도를 낮추었다. 보충수업과 모의교사를 폐지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난이도가 약화되면서 학원이나 족집게 과외를 통해 부유층 자녀들이 고득점을 얻기가 더욱 쉬워졌다. 자립형 사립고는 부유층 자녀들의 특수학교가 되었고 강남과 목동의 학원가는 집값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었다. 객관식 답안으로 상징되는 단순 암기식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논술 시험도 아이들의 종합적인 사고를 훈련시키기보다는 유명 논술학원의 등장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유발시켰다.

인성교육을 위한 수행평가 역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점수화되면서 학부모의 부담은 더욱 강화되었다. 학부모들이 특별활동을 위해 골프장을 뒤따라 다니고, 봉사활동을 대신하면서 점수를 따주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난 것이다. 각 분야에서 극히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일부를 제외하고, 그의 말을 믿었던 많은 '이해찬 세대'와 학부모들은 다시 시험성적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다.

내신제도의 강화는 사교육을 일반화시키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켰다. 한번의 시험만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부담감을 약화시키는 의미에서 도입된 내신제도는 사실 이미 80년대 학력고사의 도입과 함께 한 오래된 제도였다. 그러나 고교평준화의 틀을 벗어난 특목고나 자사고 등의 학교가 명문대 진학코스가 되면서 내신제도의 연계는 중학교까지 확대되었다. 이제 '고3'만이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이 된 것이다.

한꺼번에 켜져 있는 두 깜박이는 서로 뒤섞이면서 묘한 상승작용을 만들어냈다. 교육의 장인 학교를 '시장'으로 만드는 그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쟁이 적용되어야 할 입시에서 그 경쟁은 너무 많은 것들을 기준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실제적인 기준은 없어져 버렸다.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는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정부의 정책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의 변화는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가의 문제였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만에 차 있지만 해결책은 없었고, 이 와중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모두가 모두와 '경쟁'하는 지옥도가 만들어졌다.

덧붙이는 글 | 지난번에 쓴 글로 ‘파리유학생’이 되어버린 김정인입니다. 이제는 더 빼낼 시간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글은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제까지 먹은 밥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참고로 저는, 비록 아직도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학생의 신분이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프랑스 교육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홍세화 선생님의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칼럼을 읽고 난 후였는데 아무래도 바로잡을 것이 있어서였습니다. 미적거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께서 교육관련 공약을 발표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 마디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6개의 글로 짧게 나누어 하루에 2편씩 사흘동안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다음은 각 편의 제목입니다.

1. 교육이 문제다?
2. 이해찬의 함께 켜져 있는 양쪽 깜박이
3. 홍세화의 프랑스식 모델, 대학평준화?
4. 이명박의 미국식 모델, 자율형 사립고?
5. 토론을 위한 전제들
6. 교육문제, 문국현이 정답이다



태그:#문국현, #이해찬, #홍세화, #이명박, #교육공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