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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하루전인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한국군이 월남전 이후 처음 전사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환송식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하루전인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한국군이 월남전 이후 처음 전사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환송식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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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또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주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정부는 이번주에 국회에 보고하고 파병 연장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상당 부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6월까지 자이툰 부대 임무종결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지만, 계속 미뤄왔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올해까지 철군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또 다시 파병을 연장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1차 파병 결정에서부터 철군을 차기 정부로 떠넘기기에 이르기까지, 파병으로 시작해서 파병으로 끝나는 정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유전 개발이나 경제재건 참여 등 온갖 구실을 내놓고 있지만, 결국 미국을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렵게 문제 해결 국면에 접어든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하고, 이에 따라 파병 연장은 이를 위한 '기회비용'이라는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 해결이 파병 덕분?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 핵심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백승권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이 1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남북정상회담과 북핵문제 진전은 통찰력의 승리"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데 한미동맹의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미 양국은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일관되게 조율해 왔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북핵 해결의 진전이 '파병 효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을 빌려보자면, '북핵 해결이 파병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민들을 오도하는 것이 아닐까?'

올해 들면서 북핵 문제가 진전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에 있다. 이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라크 파병이 부시의 대북정책 전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파병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를 강조한 때는 2차 파병을 결정한 2003년 10월이다. 당시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한 직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안전을 서면으로 보장하겠다고 발언을 했는데, 이것은 최초의 일로서 "꺼져가던 6자회담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부시 행정부가 대북 안전보장을 서면으로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 '추가 파병의 효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추가 파병 결정 '이전'인 2003년 8월에 서면 안전보장 제공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오히려 파월은 이라크 파병과 북핵 문제를 연계시키려고 했던 윤영관 외교부 장관에게 "그것은 동맹국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며 핀잔을 주었다.

또한 정부가 파병 덕분에 재개될 것이라던 2차 6자회담도 계속 지연되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제안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해법을 일축하고 선(先) 핵폐기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결국 표류하던 6자회담은 2004년 2월에 들어서야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에 힘입어 재개되게 되었다.

이라크 사태와 부시의 대북정책 관계의 진실은?

지난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대표들은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 등 비핵화 2단계의 구체적 방안과 이에 상응해 북한에 제공할 안보적 조치 등을 집중 협의한다.
 지난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대표들은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 등 비핵화 2단계의 구체적 방안과 이에 상응해 북한에 제공할 안보적 조치 등을 집중 협의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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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듯,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부시의 대북정책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저 '미국이 어려울 때 도와주면, 미국도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주겠지'하는 '짝사랑'만 있었을 뿐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부시의 대북정책 흐름과 이라크 사태의 상관관계는 정부가 이라크 파병으로 기대했던 효과와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고 개전 3주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했던 2003년 봄에 가장 강경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1차 파병을 결정했음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시의 대북정책 강경기조가 약간이나마 누그러지기 시작한 시점은 2003년 여름부터이다. 이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격이 본격화되던 시점하고 정확히 일치한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점령을 마무리짓고 북한으로 눈을 돌리려고 했던 때에 저항세력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이라크에 발목이 잡혔던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 정권교체'를 꿈꿨던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관리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정권교체에서 관리모드로 대북정책의 기조를 약간 누그러뜨린 부시 행정부는 기나긴 시간이 지난 2006년 11월에 들어서야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을 선택하게 된다. 미군 사망자가 급등하는 등 이라크 전쟁 패배론이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던 시점이다. 그 여파로 이라크 전쟁의 설계자이자 대북강경파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도날드 럼스펠드가 사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라크에 힘을 집중시키고자 했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자 큰 부담을 느꼈다. 또한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핵 해결이라는 업적이라도 남기고 싶어했던 것도 대북정책 전환의 큰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부시의 대북정책은 이라크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파병 효과'와는 정반대의 경로를 밟아왔다. 이라크 상황이 부시 행정부의 뜻대로 풀리면 대북정책이 강경해졌고,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약간이나마 누그러졌으며, 남은 힘을 이라크에 집중시키고자 할 때 대북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북핵 해결의 진전이 파병 덕분인 것처럼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릇된 판단은 '파병 연장을 하면 북핵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에 사로잡혀 또 다시 파병 연장이라는 결정을 가져오고 말았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국익, 혹은 국익으로 포장된 정권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 부시 행정부가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로 정책을 선회하고 적극적인 협상에 나선 것은 이 방법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코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도와준 노무현 정부에게 보답코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그:#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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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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