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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터키의회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노동자당의 공격동의안을 승인했다. 공격동의안은 터키군이 1년간 이라크 국경을 넘어 쿠르드노동자당을 소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라크 북부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나, 정작 쿠르드인과 쿠르드인의 독립전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 아래서 무장투쟁, 학살, 민족말살 정책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쿠르드인의 독립전쟁과 투쟁의 권리를 알리고 공감하고자 한다.

 

쿠르드인은 이란어군에 속하는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에 모두 접하는 쿠르디스탄 지역에 거주한다. 소위 "세계최대의 소수민족"이다. 인구는 2천5백만명에 이른다고 하지만 독립적인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을 뿐만아니라 인접 국가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그 숫자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인구를 알 수는 없다.

 

쿠르드인은 이슬람이 전파된 후에 처음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고 하며 십자군전쟁(3차)에서 사자왕 리처드를 패퇴시킨 술탄 살라후(살라딘)가 가장 유명한 쿠르드인이었다. 강한 부족전통을 가진 용맹한 유목민족이었던 쿠르드인이 독립운동을 시작한 것은 19세기말이다. 1897년 최초의 쿠르드인 신문이 창간되는 등 한편으로 쿠르드인의 민족 의식이 성장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유럽의 식민지분할, 부근 국가에서 국경선 강화,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변화 등 정착의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민족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

 

쿠르드인의 독립운동은 1차세계대전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패배하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맞은 바 있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해체를 선언한 1920년 세브르 조약에서 아랍, 북아프리카에서 터키가 철수하는 외에 쿠르디스탄의 자치도 약속하였다. 그러나 1923년 터키정부가 세브르 조약을 거부하면서 이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으며, 연합국은 로잔조약으로 이를 대치했는데, 여기서 쿠르디스탄은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인접국가에 분할되었다.

 

쿠르드인은 무장봉기는 이때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터키는 쿠르드어와 의복의 사용을 금지하는 민족말살 정책을 취한 바 있고, 이란의 시아파는 주로 수니파인 쿠르드인에 대해 종교적인 탄압을 가하고 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비교적 문화적인 탄압을 덜 받았다고는 하나 1970년 집권한 바트당(후세인) 정권은 왕정 타도의 동맹자였던 쿠르드족의 자치 약속을 거절하고 1988년 대량학살로 민족청소를 시도한 바 있다.

 

오늘날 쿠르드인의 군사적 승리는 대부분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성과이다. 공식적으로 터키를 활동 지역으로 하는 쿠르드노동자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정당으로서 터키와 무장투쟁을 벌여왔으며 터키는 지난 10년간 3만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르드노동자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내걸고 있을 뿐만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합바스와 같은 이슬람 무장투쟁 전통(성전, 지하드)에도 상당히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내의 쿠르드인 양대정당인 쿠르드애국동맹(PUK)와 쿠르드민주당(KDP) 중 쿠르드애국동맹과 연계를 갖고 있는데, 인접한 이란은 이라크의 쿠르드애국동맹(PUK)을 지원하고 있다. 현 이라크대통령인 잘랄 탈라바니는 쿠르드애국동맹의 의장이다.

 

서로 반목하는 미국과 이란이 쿠르드애국동맹을 함께 지원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는 쿠르드애국동맹이 지원하는 쿠르드노동자당을 공격하겠다고 하는 등,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 공격 결정은 이 지역의 복잡한 국제적 정세를 반영하며, 그런만큼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 공격이 실행된다면 미국은 또다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비록 현 이라크대통령이 쿠르드노동자당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쿠르드노동자당은 국제 테러조직으로 낙인찍힌 상황으로서 터키의 공격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쿠르드노동자당은 1980년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 국제회의에서 터키를 목표로 한 폭탄테러를 시작으로 테러와 게릴라전을 통해 터키의 주요시설을 공격해 왔다. 더우기 1990년 이후에는 이슬람 전통에 경도되면서 1995년에서 1999년 사이 15회의 지하드식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에 쿠르드노동자당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쿠르드노동자당은 2004년까지 시한부로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하고 실행했으나 2004년에 EU의회가 국제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추가하고 미재무부가 그 자산을 동결하는 등 국제적으로 고립된 처지이다.

 

반면, 쿠르드노동자당의 적극적인 평화노력에 터키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도 사실이다. 그간 쿠르드노동자당은 쿠르드자유민주의회(KADEK)를 설립하여 터키정부와 대화창구를 마련하였으며 쿠르드인 지도자 사면-감형 등을 포함 터키와의 평화적 협상을 지속해 왔으나 터키의 미온적인 태도와 반군 투항 요구에 따라 2007년 9월1일에야 게릴라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터키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은 이라크-터키 국경지대에서 쿠르드노동자당 활동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라크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은 이라크 내에서 사실상 통치가 가능한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 지역의 안전과 이란 핵위기 등 지역 내의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문제를 쿠르드노동자당 문제로 확대시키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쿠르드인은 미국을 중립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미국은 이라크 지역 내에서 정치적 파트너를 잃을만한 모험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현재 쿠르드인의 독립전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들 역사상 최초로 자치지역을 갖게 되었다. (이라크 내 쿠르드인 자치구역) 터키와 무장투쟁을 재개하면서 최근의 국제적인 외면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인 독립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수년간의 평화적인 협상 노력도 쿠르드인의 명분을 높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쿠르드인 자신은 독립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국제사회가 외면하지 않는 것이 소위 "테러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쿠르드#쿠르디스탄#PKK#KADEK#쿠르드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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