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비가 내리더니 금세 바람도 차고 공기도 사나워졌습니다. 여름에서 가을을 넘어 성급하게 겨울로 넘어가려는지 계절의 흐름이 빠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은 왠지 어머니가 더 보고 싶었습니다.

 

서울 홍은동의 조그만 아파트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뵌 지가 2주 정도 지났습니다. 언제 들러서 벽에 못도 몇 개 박아주고, 더 추워지기 전에 뒷 베란다 창문에 들이치는 외풍을 막기 위해 방풍막음도 해달라 하셨드랬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어머니 집에 가서 어머니와 단둘이 앉아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점심밥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서 차를 한 잔 따끈하게 끓여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조그만 종이봉투(일명 쇼핑백) 하나를 저에게 슬며시 내놓으셨습니다.

 

 

"엄마, 이거 뭐예요?"
"그러니까 어제(10월 19일)가 우리 막내 아들 생일이었지? 깜박 모르고 지날 뻔하다가 동네 친구들과 얘기 나누던 중, 음력 9월 9일이 어떻구, 저떻구 이바구 하는 통에 우리 아들 생일이란 걸 알게 됐지. 그래서 이 엄마가 아들에게 또 언제 줄 수 있을지 모를 용돈을 주는 거야!"

 

어머니는 00은행 봉투 표지에 '성한아, 엄마가 생일을 축하한다'고 쓴 용돈봉투를 제게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고모가 주었다며 우리 쌍둥이 딸들에게 줄 예쁜 속옷 몇 벌도 넣어서 함께 주셨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맞이했습니다.

"엄마, 뭐 이런 걸…. 생일날은 부모님께 오히려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들여야 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조용히 숨만 쉬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닐텐데, 10만 원을 봉투에 정성들여 넣고, 표지에는 예쁘게 글을 쓸 수 없으니 은행직원에게 부탁해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감사와 감동의 메시지를 곱게 담아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눈물짓게 하셨습니다. 1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 안에는 은행 자동입출금기에서 발행되는 거래명세서가 우연히 함께 들어 있었는데, 살펴보니 10만 원을 인출하신 후 잔액이 9만 8천 원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엄마, 왜 저를 눈물짓게 하시는 거예요!'

그 쪽지를 바라보며 저는 마음 속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의 비자금 통장은 따로 있답니다. ^*^)

 

제 어머니는 올해 일흔 일곱이시고, 막내 아들인 제 나이는 마흔 둘입니다. 아들인 제가 보기에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60대 후반, 아니면 70대 초반의 곱게 늙으신, 지혜롭고 총명하신 분입니다.

 

자식들이(3남 4녀)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자 여러 차례 가족회의도 하고, 모임도 하며 의논해서 어머니께 살림을 합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하셨습니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이 엄마가 까딱없으니 걱정들 말고 너희들이나 새끼들 잘 키우고 잘 살면 된다. 내가 정히 힘들면 알아서 너희들에게 얘기하마."

그러나 가끔씩 어머니의 작아진 체구와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면 마음이 사르르 저려오고 아파옵니다. 이젠 더 늦기 전에 올해가 지나 내년쯤에는 자식들이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오순도순 살 수 있도록, 어머니를 꼬드길 수 있는 특단의 묘책을 만들어야 할 모양입니다.

 

오늘 제 어머니는 40줄을 넘어선 아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절묘한 기획행사를 만들어 저를, 이 부족한 아들을 감동으로 눈물짓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엄마, 사랑합니다!

 


태그:#어머니, #생일, #눈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