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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난리다. 나비들이 우리 집 꽃밭에서 잔치를 열었다. 얼마나 꽃이 좋았으면 한 꽃에 둘이 앉다 못해 셋이서 앉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각 꽃마다 나비들이 한 마리 또는 두 마리 꼴로 자리를 차고 앉아 있다.

 

꽃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꼭 한 꽃에 둘이 앉아서 서로 다투는 꼴이 마치 아이들 소꿉놀이 하는 거 같다. 한 꽃에 한 마리씩 앉아도 꽃이 남을 텐데 다들 계산도 못하는지 저렇게 중복되는 꼴이라니. 현명한 나비는 아까부터 자기 몸집에 알맞은 크기의 꽃을 차고 앉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잘도 먹고 있는데 말이다.

 

꽃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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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벼도 여물게 한다는 따사로운 가을 햇볕에서 벌이는 나비들의 가을 꽃 잔치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장자의 ‘호접지몽’인들 부러울쏘냐. 나비들 천지에 간혹 꿀벌까지 끼어드니 잔치의 흥은 두 배로 돋우어진다. 나비들의 꽃 잔치에 꿀벌이 초대받았을 게다.

 

꽃들도 모두 예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쁘게 되라고 작정하고 키운 꽃들이니 얼마나 예쁠까. 마치 사람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들꽃들이야 수수하게 뽐낸다지만, ‘집꽃’들은 드러내놓고 뽐내는 게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집 꽃들이라고 왜 멋이 없겠는가. 웬만하게 사진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들꽃을 주제로 찍는 것이 아주 다반사지만, ‘집꽃’들도 얼마든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는가. ‘집꽃’들의 화려함이 없었다면 들꽃들의 수수함이 빛날 수 있을까 말이다.

 

사실 화려함도 수수함도 인간이 매긴 평점이거늘, 꽃 스스로에게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들꽃으로 태어나고 싶어 들꽃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집꽃’으로 태어나고 싶어 ‘집꽃’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질 않는가. 저마다 타고나서 생긴 대로 잘 사는 착한 꽃들이 아닌가.

 

 

작정하고 들에 나가서야 볼 수 있는 들꽃은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손님 같아 그대로 좋고, 언제라도 지나치며 볼 수 있는 집 꽃은 곁에 있는 이웃사촌 같아 또한 그대로 좋지 아니한가. 들에 가면 들꽃에 앉은 나비를 보아서 좋고, 집에 오면 ‘집꽃’에 앉은 나비를 볼 수 있으니 또한 좋고. 그래서 우리에겐 들에 가도 좋고 집에 와도 좋을 수밖에.

 

어찌 됐건 우리가 조금만 눈을 열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가꾼다면 이렇게 풍요롭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지구별이 얼마나 고마운가.

 

 

우여곡절 끝에 시골 흙집으로 이사 온 후 처음 맞이하는 이 가을, 우리 집 마당에 핀 ‘집꽃’을 배경으로 벌어진 나비들의 꽃 잔치를 보면서 올 봄부터 여름 내내 애써서 꽃밭을 가꾼 아내의 땀방울이 더욱 소중해진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태그:#더아모의집, #꽃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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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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