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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결의는 잘합니다. 센 결의일수록…. 그런데 실천력이 담보되는 것은 30%에 불과해요. 이 고지를 깨지 못하면, 민중들로부터 민주노총은 고립무원에서 헤쳐나오지 못할 겁니다. 전 그런 절박성을 가지고 있어요."

 

거침이 없었다. 연이은 지방 순회로 목소리는 약간 둔탁했지만, 발음은 또렷했다. 90여분동안 그는 찬물을 연거푸 마셨다. 가끔 얼굴에 미소를 띄기는 했다. 곧 사라졌고, 표정은 어느새 심각했다. 한껏 목청이 올라가기도 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비정규직법과 KTX 여승무원 문제, 이랜드 사태 등 굵직한 노동현안의 정점에 서있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동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대선판의 한 가운데에 있기도 하다.

 

90여분 동안의 인터뷰 내내 그는 조직과 진보진영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민주노총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이며, 내부를 향한 강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비판의 칼날은 더 날카로웠다. 인터뷰 말미에는 일부 발언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위원장과의 만남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이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보호법, 노 대통령 공약 아닌가"

 

우선 비정규직법 재개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미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현 정부임기내에선 법 개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민주노동당 등은 그동안 비정규직법 폐지를 주장했다.

 

- 법 시행이 얼마 안된 상태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우리는 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어요. 비정규직 법은 '보호입법'이 돼야 합니다. 현행 법엔 용역이나 하청 등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아요. 그런것 포함해서 재개정하자는 거예요."

 

- 법 폐지까지는 아니군요.
" 비정규직 법은 있어야 합니다. 비정규직법 없애라는 것은 경총과 의견이 같은데, (법을) 없애면 어떻게 되겠어요. 법의 정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줄이고 보호하는 겁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쓰기 위한 이유를 확실히 제한(사용사유제한)해야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회사가 비정규직을) 쓸수밖에 없다면,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하죠.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 고용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복지 제도를 통해서 생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의료·주택 등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  이상수 장관은 참여정부 임기내 법 재개정은 없다고 했는데요. 정부가 이렇게 나오면 재개정이 어려운 것 아닌가요.
"우선 덤프 트럭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위한 보호법(특고법)은 이번에 반드시 통과돼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고 이 장관도 그동안 약속해왔어요. 이미 공청회도 끝났고, 국회에서 바로 다룰 수 있어요."

 

- 만약 안 다뤄지게 되면.
"이번에 다뤄지지 않으면, 분명히 말하지만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겁니다. 화물·덤프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투쟁을 조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과 비정규직법 재개정안도 이미 제출해 놓은 상태입니다."

 

정부에선 법 재개정을 위해선 우선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사를 위해 민주노총도 포함해 노사정이 함께 할수 있는 별도의 합의 '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의 생각은 어떨까.

 

"(정부의 입장에) 동의해요. 하지만 경총이 (민주노총 참여를) 반대하고 있잖아요.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비정규직법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조사하고, 그 후에 어떤 보완과 대책을 해나가야 할지 토론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숫자가 늘었느니 줄었느니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KTX 여승무원 합의 논란에 "저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자연스레 KTX 여승무원과 이랜드 문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그는 조심스러웠다.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문제 처리 과정에서 겪었던 심한 속앓이를 애써 숨기지 않았다.

 

- KTX 여승무원이 최근에 노사공익 3자협의체 구성에 참여하겠다고 했는데요. 그 때 이상수 장관과 합의서 사인하고 했을 땐, 자신들과 합의가 없었다고 했잖아요.
"(한숨을 내쉬며) 지금 입을 열때가 아닌데…. 사람들이 나한테 맡길 때하고 답을 내놨을때 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신뢰의 문제겠죠."

 

그는 연거푸 찬물을 마셨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때 대학교수니 뭐니 해서 성명서를 냈던데, 그 분들보고 책임지라고 하세요. 저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주체들(철도노조·KTX 여승무원)과 논의 안한 바 없어요. 다 논의해서, 그 사람들 요구 관철시킨 겁니다."

 

이 위원장은 "저도 지금은 흐트러졌고 다시 추스르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면서 "더이상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직접 나서기도 제약이 많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이번 합의건으로 내부로부터 혹독한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왜 쓸데없이 개별노조 사안에 개입해서 분란을 일으켰느냐는 것.

 

이랜드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의 고민과 토로는 계속됐다.

 

- 이랜드 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이 장관 말로는 '징계' 문제만 남았다고 하던데요.

"이것도 진행형이어서 말하기가….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요. 민주노총 위원장의 권위는 조합원들이 세워주셔야 합니다. 조합원은 저희 주인이죠. 그럼에도 다소 어렵고 무리가 있더라도 위원장의 말이라면 믿고 그럴 필요가 있는데…. 안타깝죠."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말 믿어줘야 하는데..."

 

 

그의 말은 계속됐다. 좀 길지만 더 들어보자.

 

"이랜드 투쟁은 주변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이들이 뭔가 만들어내고, (이들의) 투쟁이 옳았기 때문에, 후에 자본이나 사회가 이들을 인정해주고, 현장으로 돌아갔을때 고용 차별없이 일할 수 있게 된다면, 하나의 사례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이대로 흘러가도록 놔둘 경우에 의미있는 이번 투쟁이 의미를 상실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민주노총이 이번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의제화한 부분은 성과라고 보는데, 한편에선 투쟁일변도에 대한 우려도 있는것이 사실인데요.
"저요, 민주노총의 실사구시를 이야기했습니다. 위원장이 비정규직 법 철폐가 아닌 재개정을 요구한 것도 용기라고 봐요.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과로해서 쓰러진 상태예요. 요즘 계속 지방 현장에서 조합원 만나고 있는데, 확인하는 것들 있어요.

 

조합원 대중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다시 뛰자고 하려면 작지만 성과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것이 혁신이라고 보는 것이고, 혁신을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민주노총의 위기... 절박함 느끼고 있다"

 

이 위원장의 내부 조직에 대한 쓴소리는 계속됐다. 언제부턴가 목소리 톤은 높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민주노총 결의는 잘합니다. 센 결의일수록…. 그런데 실천력이 담보되는 것은 30%에 불과해요. 이 고지를 깨지 못하면, 이 지점을 벗어나지 못하면 고립무원에서 헤쳐나오지 못할 겁니다. 전 그런 절박성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것이 (민주노총의) 위기가 아닙니다. 결의한 것들에 대한 실천력…."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어 민주노총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환골탈태하기 위해 직접 뛰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이후 8개월여 동안 대화하겠다고 외쳐왔다"면서 "재벌총수든 다 만나겠다고 했지만, 경총이든 누구하나 얼굴을 맞대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신 이상수 장관과는 대화를 하면서,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어 내년 초에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화를 하려고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무엇을 요구해도 재벌 등은 눈 하나 까딱 안한다"면서 "이것은 '너희들 맘대로 해봐라'는 것인데, 그럼 진짜 우리 맘대로 했을때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물었다.

 

- 현재와 같은 결의와 실천력의 괴리감 속에 과연 총파업이 실효를 거둘수 있을까요.
"'총파업'이라는 표현을 쓰지 마세요. 총파업이라면 80만 조합원 중에 3분의 2 이상이 가야하는데…. 이 가운데 30만 정도만 참여해도,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그런 '총파업'은 안 합니다. 진짜 제대로 준비해서 할텐데, 준비할 때는 조용히 할겁니다."

 

"민주노동당에 혁신 요구했지만..."

 

 

인터뷰 시간이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이 위원장의 앞에는 빈 종이컵 대여섯개가 쌓여 있었다. 대선 국면에서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그의 반응은 싸늘했다.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됐는데, 그동안 '들어간다, 안들어간다' 말이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전 민주노동당에 혁신을 요구했어요. 그런데요. 아쉬운 것이 많아요. 민주노동당은 선대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우리와 농민회 등 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조직들에게 단 한 차례도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발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대선 승리를 위해 어떤 선거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가야할 지 입체적인 고민없이 민주노동당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이다.

 

이 위원장은 "이 때문에 선대위원장을 맡을지 답을 유보했던 것"이라며 "그렇다고 (선대위에서) 빠지게 되면, 당에 누가 될수도 있다고 해서 일단 (선대위원장을) 내락했다"고 말했다.

 

- 민주노동당에서 사전에 선거 전략 등에 대해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경선이 끝난지 한 달이 됐지만, 한 번도 저한테 상의해오지 않았습니다. 당 내부에서도 민주노총이 오는것이 맞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난 그런 것에 게의치 않겠다고 했어요."

 

그의 말이 계속됐다.

 

"다만 대중 조직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했어요. 우리는 중앙위에서 우리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고, 사람을 어떻게 파견하는지에 결의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다 논의하면서 간다'고 해놓고, 나 혼자 달랑 선대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건 당에도 도움이 안돼죠.

 

대중지도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우리 대중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았는가, 동원의 대상으로, 수단의 대상으로 말이죠."

 

또 한국노총이 이번 대선에서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따끔한 충고도 했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나를 버리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진보운동의 밑거름이 된다고도 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이석행 위원장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석행의 '민주노총'이 어떻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두고볼 일이다.


태그:#이석행 위원장,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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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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