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좌우에 산이 있고 더욱이 명산인 도봉이 지척인데도 좀처럼 가지질 않는다. 헌데 계절 탓인지 며칠 전부터 가을 산이 유혹을 하는 듯 마음이 들썩이더니 오늘(12일)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퍼지기 전에 다녀오리라 큰맘을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산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플래카드
 산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플래카드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산 입구부터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가을바람에 펄럭이며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하나하나 읽으며 올라가는 재미도 솔찮다. 그 중 그냥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엄마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그렇다, 엄마를 좋아하는데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나래도 "그냥…" 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물었어도 그냥이란 말밖에는...
 누군가 내게 물었어도 그냥이란 말밖에는...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그림엽서 같기도 크리스마스카드 같기도 한 축제를 알리는 그림들이 한껏 분위기를 돋운다. 산을 오르는 이들도 담벼락에 붙은 작품에 눈이 팔려 걷다가 멈추고 또 몇 걸음을 가다간 서고를 반복한다.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그림 1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그림 1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어느새 약수터 앞, 만병통치 신비의 약이라도 되는 양 어떤 이는 한 바가지를 받아 단숨에  벌컥 벌컥 들이킨다. 나도 기둥에 걸려 있는 파란 바가지로 물을 받아 몇 모금 삼켜본다.  기분 때문일까 눈이 밝아진 듯 시야가 맑다. 쉼 없이 흘러넘치는 맑은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3
 그림 3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동행하는 이 없이 유유자적하며 혼자 오르니 예전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물 속 모래에 묻혀 글씨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안내판에 숙종 26년에 김수항이 썼다고 되어 있는 ‘고산앙지(高山仰止)’글자가 있다. 혹자는 그의 형인 김수증이 썼다고도 한다.

그림 2
 그림 2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누구의 글이면 어떠한가 내겐 그 의미가 더 중요하거늘 ‘고산앙지’란 말은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라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누군가에게 우러름의 대상이 되어 후세까지 이름을 남긴 이라면 인간세상으로 여행을 왔다 간 족적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 속 모래에 묻혀 일부만이 보이는 '고산앙지'
 물 속 모래에 묻혀 일부만이 보이는 '고산앙지'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그 대상이었던 정암 조광조, 그의 치적을 숙제로 안고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해 겨울 얼음장 밑에서 투명한 알몸으로 헤엄을 치던 송사리 떼가 생각나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손으로 떠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한 계곡물, 가을바람에 때 이른 낙엽이 물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파문을 일으킨다.

그 밑으로 떼를 지어 노니는 송사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조심조심 돌을 옮겨 밟다가 그만 이끼 낀 돌에 미끄러져 물속으로 첨벙! 행여 누가 볼 새라 허겁지겁 일어서려다가 한 번 더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뭔가를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더니 송사리에게 모델료를 톡톡히 치룬 격이 되었다.

물에 빠지는 소리에 놀란 물고기들이 화생방 훈련을 하듯 한 마리도 없이 모두 바위틈으로 숨어 버렸다. 펑 젖어 물이 주르르 흐르는 옷, 그러나 이대로 그냥 갈 수가 없다는 오기가 발동 다시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잠시 후 주위가 평온해지자 바위틈에서 한 마리 두 마리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옳지~  조금만 더 가까이오너라~",  드디어  '찰칵'!
                                             
비싼 모델료를 지불한 송사리
 비싼 모델료를 지불한 송사리
ⓒ 김정애

관련사진보기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등은 돌에 긁혀 피가 흐르고 엉덩이는 아팠지만 만선을 몰고 오는 어부처럼 가을을 즐기고 돌아오는 마음은 넉넉하기만 했다.  
 


태그:#플래카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