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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대롱거리지는 못합니다
▲ 오십견 때문에 매달려야 합니다 발을 대롱거리지는 못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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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해 보지 그래?”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목 운동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끝낸 어르신이 저쪽에 구름다리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신을 따라 구름다리 매달리기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철봉대 매달리기를 하던 나는 철봉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직 여기서 발을 대롱거리지도 못하는데요.”
“철봉대든 구름다리든 하면 된다구, 나도 하잖아.”

어르신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구름다리 쪽으로 가버립니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어르신은 키도 훤칠하고 등도 반듯합니다. 칠십 대 중반 나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내가 저 높은 구름다리에 매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해보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철봉대 매달리기도 제대로 하는 철봉대 매달리기가 아닙니다. 발을 땅에 붙이고 두 손으로 철봉대를 잡고는 몸만 척 늘어뜨리는 수준입니다. 그것도 순수한 운동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십견 때문에 할 수 없이 새벽마다 나와서 하는 것입니다.

샤워를 하다가 오십견 증세를 발견했습니다. 오른쪽 팔은 괜찮은데 왼쪽 팔이 뒤로 돌아갈 때 왼쪽 어깨가 째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팔이 뒤로 제대로 돌아가지도, 뒤에서 올라가지도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란 나는 그 길로 사방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이웃들은 한결같이 "거 오십견야. 정형외과에 가 봐"라고 합니다. 성당 주보접기 팀에 있는 한 어르신만이 "오십견이네. 그 정도면 가벼운 거니까 철봉대 매달리기 해 봐. 아파도 참고 아침 저녁으로 스무 번 정도씩은 매달려야 해. 걷기운동도 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철봉대 매달리기요?"
"그렇게 쭉 펴주기 안 하면 어깨 관절이 딱딱하게 굳어져. 난 더 심했어. 머리 감기는커녕 팔을 위로 올리지도 못했어. 그것도 양 팔이 다 그랬어. 그 정도는 아주 가벼운 거라니까." 

철봉대 매달리기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난감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보았습니다. 오십견은 노화로 인해 어깨 관절 주위에 연부 조직이 퇴행해 생기는 병이라고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오십견 치료를 위한 자가요법이며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동작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새벽마다 어린이 놀이터로 달려가 철봉대 매달리기를 했습니다. 발을 대롱거리지는 못 합니다. 겁도 나고 자신도 없습니다. 낮에는 인터넷에서 본대로 수시로 스트레칭 동작을 합니다. 스트레칭을 할 때도 왼쪽 어깨가 째지는 듯이 아픕니다.

처음엔 철봉대에 1분도 못 매달렸습니다. 팔을 올려 철봉대를 잡는 순간에 벌써 왼쪽 어깨가 째지는 듯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래도 참고 발을 땅에 붙인 채로 악착같이 팔을 팽팽하게 척 늘어뜨리는 동작을 반복합니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다 났습니다. 횟수를 잊어버릴까봐 운동화 발 끝으로 땅에 正 자를 그려갑니다. 아무리 아파도 20번은 채워야만 합니다.

어느 날입니다. 늘 옆 숲에서 걷기와 맨손 체조를 하고 난 후에 놀이터로 와서 다시 목 운동과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구름다리 매달리기를 하는 어르신이 노파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철봉대 매달리기부터 하면 병을 하나 더 얻어. 목 운동부터 해야 해. 스트레칭도 하고 말이야."

그제야 나는 '아하 그렇지'하고 철봉대에서 손을 떼고 양 손을 허리에 얹고 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스트레칭은 별 게 아닙니다.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인데 그러고 보니 어르신은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르신은 고령인데도 근력이 약해 보이지 않습니다. 운동이 부족해서 오는 무엇이 어디에도 없어 보일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유연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체력관리를 하고 있는데도 겉보기와 다르게 어르신은 척추에 협착증이 있어 정기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퇴행성 척추 질환은 노인이 되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건가 봅니다.

어르신이 구름다리 매달리기를 하는 것도 협착증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을 했는데 예감대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기 진료시에 X-선 검사를 해보니까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은 새벽에만 운동을 합니다. 저녁에는 TV 연속극을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조언대로 목운동과 스트레칭을 먼저 하고 나서 철봉대 매달리기를 몇 번 한 다음에 왼쪽팔을 뒤로 돌려보면 훨씬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때 뿐입니다. 집에 와서 다시 해 보면 처음처럼 아프고 팔이 뒤로 돌아가다가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걷기운동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두 달 이상을 했더니 요즘은 통증이 많이 없어졌고 팔도 뒤로 편하게 끝까지 돌아갑니다. 그래도 정상은 아닙니다. 뒤로 돌아간 팔이 위로 올라가기는 하는데 어깨가 조금 아픕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오십견이 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르신은 오십견을 앓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도 평소에 운동을 한다고 하는 편인데 그 정도 가지고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문득 온 집안을 낭낭하게 울리며 다듬이질을 하던 아득한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 났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위한 운동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집안일에만 파묻혀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판에 대고 손빨래를 했고 그 힘든 다듬이질과 프라이판같이 생긴 숯불다리미로 다림질도 자주 했습니다. 다림질을 할 때 어린 내가 빨래 한 끝을 팽팽하게 맞잡아주어야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 고된 집안일들이 오십견을 예방해 주는 전신운동도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한번도 팔이나 어깨가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일론이 세상에 나올 그 무렵, 광목 이불호청(홑청) 한가지를 뜯어 빨더라도 얼마나 힘들고 시간과 손이 많이 갔는지 모릅니다. 하루 종일이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흰죽을 쑤어 풀자루에 넣고 꿀럭 꿀럭 주물러서 풀물을 내어 빨래 방망이질을 한 뒤 깨끗하게 빨아 말린 광목호청에 골고루 먹여 햇볕에 말립니다. 바짝 마르면 걷어서는 손으로 골고루 물을 흩뿌려 축인 후에 어머니와 내가 맞잡고 올을 똑바로 펴기 위해 이쪽으로 저쪽으로 힘껏 잡아 당깁니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힘에 딸려 가다가 엎어지거나 동그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뒤에 귀를 맞추어 적당한 크기로 얌전히 개켜서 빨래보에 싸서는 방바닥에 놓고 어머니가 서성 서성 밟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등에는 울보인 젖먹이 동생이 업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구김살이 펴졌다 싶으면 그것을 다듬이 돌에 놓고 다듬이질을 합니다. 어머니 등에 업혔던 동생은 내 작은 등에 옮겨져 잠이 들었습니다. 두꺼운 다듬잇감을 음율을 타듯이 방망이로 두드리는 어머니의 양 팔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장군같이 힘이 넘쳤습니다.

중간에 두 세번 호청을 펼쳐서 이리 저리 손을 보고 나서 다시 얌전히 개켜서 놓고 다듬이질을 합니다. 그렇게 반복을 하다가 보면 기막히게도 호청은 구김살들이 펴지고 반질반질 윤까지 납니다. 그러느라고 하루 해가 다 갔습니다. 저녁 노을빛이 내려와 창문으로 빨갛게 들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절, 그런 저런 고된 집안일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에게는 오십견이 올 새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껏 편한 세상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집안일이며 운동량은 별것 아닙니다. 오십견이 찾아올 만도 합니다. 

구름다리 매달리기를 마친 어르신이 내 옆으로 와서 정리 운동을 합니다. 마침 나도 철봉대 매달리기 스무 번을 다 끝냈습니다.   

"자전거 타기 많이 느셨어요?"
"그럼 많이 늘었지. 얼마나 재밌나 몰라." 

어르신 다리 힘을 보장합니다
▲ 어르신의 세발 자전거 어르신 다리 힘을 보장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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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르신은 운동 한 가지가 더 늘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다리에 힘을 강화하려고 세 발 자전거를 구입해 아침 운동 끝에 자전거 타기도 합니다. 정리운동을 끝내고 나서 자전거를 타러 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부러울 정도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나는 정리운동을 하려다가 말고 다시 철봉대를 잡았습니다. 구름다리 매달리기는 못해도 철봉대 매달리기는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용을 써 봅니다. 머릿속에서는 두 발이 대롱거리는데 왼쪽 어깨에 통증만 오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무서워서 발을 뗄 수가 없습니다. 떼야 하는데, 떼야 하는데 하다가 그만 철봉대를 놓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새벽마다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내게 아주 무리한 것도 아닌데다가 매일 노력을 하다보면 오십견도 깨끗하게 완쾌될테고, 머리가 하얀 이 나이에 철봉대에서 순간적이나마 발을 대롱거리는 기쁨도 누릴 수 있게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태그:#오십견 , #철봉대, #다듬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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