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정동영 후보의 짝사랑인가.

정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노 대통령과의 화해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다.

후보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분의 협력을 얻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노 대통령에게 '당선 신고' 전화를 했다.

정동영 후보의 몸낮추기

그런가 하면 노 대통령을 향해 전에 없이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사람이 탈당해 신당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대단히 미안하다."

"나는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통에서 문제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겠다. 두 분 지도자의 응원을 얻고 싶다."

노 대통령은 정 후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동영 후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라"는 주문을 했다. 여기서 말한 '상처받은 사람들'에는 노 대통령 자신도 포함된 의미로 해석되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가시돋힌 말이기도 했지만, 정 후보는 이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이라며 "그 말씀을 실천할 생각"이라고 자세를 낮추었다. 이 정도 되면 철저한 몸낮추기라고 할 수 있다.

경선과정에서 자신의 선대위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가 있었을 때 '친노의 후보찬탈 음모'라고까지 했던 정 후보였다. 불과 얼마 사이에 180도 달라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 배경을 헤아리기는 어렵지않다. 정동영 후보는 지금 노 대통령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신당의 후보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아직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명박 후보와의 현격한 지지율 격차 때문에 당안팎에서는 대선결과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들이 팽배해있다.

여기에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 후보 대신 문국현 후보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기류가 있다. 손학규 전 지사·이해찬 전 총리가 경선승복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막상 이들의 행보가 어떤 형태로 나올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특히 친노세력이 정 후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도 정 후보 체제의 안정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이다.

누군가가 마음먹고 정 후보를 흔들기로 작심하고 나선다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지금 정 후보가 처한 현실이다. 정 후보가 혼자의 힘만으로는 상황을 주도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역시 낮은 지지율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은 불안한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지원이 있을 경우, 당내 갈등의 수습은 물론이고, 범여권의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정 후보는 했을 법하다.

특히 노 대통령과의 화해는 친노세력의 이탈가능성을 막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 후보 입장에서는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은 냉담한 청와대의 반응

그러나 이러한 속내를 너무 잘 꿰뚫고 있어서일까. 청와대는 아직까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 후보의 화해 시도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도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천호선 대변인은 "먼저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과 신당 경선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상처가 풀리고, 화해가 이뤄진 뒤 정 후보 측에서 회동 요청이 온다면 그때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앞으로 정 후보의 입장을 좀 더 보고 난 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복원을 위한 선결조건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정 후보가 앞으로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좀 더 두고 보겠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도 나왔다. 참여정부의 성공여부에 대한 정 후보의 입장정리도 선결조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같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정 후보를 끝까지 거부할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정 후보의 '차별화' 전략에 대한 그동안 불편한 마음을 가져왔지만, 손학규 후보에 대한 거부정서에 비하면 그 강도는 낮은 편이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물론 이해찬 후보보다야 못하겠지만, 정 후보가 이렇게 몸을 낮추고 나오는데 범여권 내부의 논란을 무릅쓰며 구태여 그를 거부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화해를 하더라도 '명분있는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 후보를 향해 보다 분명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상황이 급해진 정 후보, 반대로 급할 것이 없는 노 대통령. 그래서 한 사람은 몸을 낮추고 다른 사람은 아직 뻣뻣한 모습을 보이고, 서로의 다른 위치로부터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관계복원 여부 대승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청와대는 관계복원을 위한 공을 정 후보에게로 넘겼다. 그러나 공을 넘겨받은 정 후보로서는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여기서 더 물러서서 참여정부의 계승자로 대선에 나가는 모습으로 비쳐질 경우 그 역풍이 만만치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후보와 노 대통령의 관계복원 여부가 대선정국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기왕에 두 사람 사이의 화해가 모색된다면, 그 과정도 화해의 정신에 기초한 대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어느 한쪽이 항복을 하는 식으로 비쳐지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않는다. 특히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 후보에게는 정치적 상처와 부담을 안길 수도 있다. 정 후보가 참여정부의 성공을 인정해야 비로소 그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식의 모습이 되어버리면, 관계복원 문제를 놓고 자칫 기싸움을 한다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정 후보가 현실적으로 아쉬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해서, 청와대가 일종의 선결 조건까지 제시하며 뻣뻣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청와대의 입장에서야 자신의 명예회복이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범여권 전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쪽에서 관계복원을 위해 저렇게까지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단을 조건없이 내리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정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