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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조선일보 대구지사 주최 '신사임당 아카데미'에서 그 해답을 알려드립니다. 주부들에게 특별한 강의를 놓치지 마세요." (지난 8월 '신사임당 아카데미' 6기 모집 공고 중)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항상 좋은 아내와 존경받는 어머니가 돼야 할까.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현모양처'형 인간이 되라고 가르친다.

2009년 발행 예정인 고액권 인물 도안으로 '현모양처'의 상징적 인물인 신사임당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여성계가 이같은 논의에 "신사임당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사임당 선정에 반대하는 입장은 15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사)문화미래 이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계속 됐다. 이날 토론회는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왜 안 되느냐' '현명한 아내와 어머니가 뭐가 나쁘냐'는 일부의 공격에 대한 반박을 내놓은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화폐에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적절한 여성 인물로는, 새 시대와 새 여성의 삶에 비전을 줄 수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새로운 화폐에 등장할 인물로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을 선정한 것은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의 연장 기도에 불과하다"면서 ▲가부장적 사회가 추천하는 전형적인 여성상 ▲일제 잔재의 청산대상인 현모양처 이미지의 부적절성 등을 근거로 들었다. 

새 화폐 인물로 신사임당 반대하는 이유

(사)문화미래 이프는 '새 화폐 여성인물, 어떤 여성이어야 하는가'는 주제로 15일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가부장적 사회가 대표적 여성상으로 내세운 신사임당은 새 화폐 인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사)문화미래 이프는 '새 화폐 여성인물, 어떤 여성이어야 하는가'는 주제로 15일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가부장적 사회가 대표적 여성상으로 내세운 신사임당은 새 화폐 인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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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신사임당은 훌륭한 예술가지만 동시에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상이 됐다"며 "가부장적 한국 사회가 선택한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여성상"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지만, 현대 여성들은 '어머니'만이 아닌 당당한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싶다"며 "이러한 시대에 현모양처의 여성상을 현대 여성에게 재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각국의 화폐에는 독립투사, 과학자, 소설가 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거나 사회에 공헌한 인물이 수록돼, 이 여성을 기리고 그들의 업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화폐 도안이 되는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화폐에 여성이 없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이 사회에 끼친 공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며 "시종 어머니, 아내로서 여성의 가치만 중시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또한 "이미 5000원권에 율곡 이이가 도안으로 수록되면서, 지폐 뒷면에 신사임당의 그림이 실렸다"며 "이런 가운데 다시 신사임당이 화폐 도안으로 들어가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한국은행이 고액권 화폐에 수록될 인물로 후보자 20명을 1차로 선정했을 당시 남성이 19명이고 여성은 신사임당 한 명뿐이었다"며 "그나마 최종 후보에 유관순 열사가 포함됐지만, 여성 후보가 2명밖에 올라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은 없다"

김신명숙 (사)문화미래 이프 이사.
 김신명숙 (사)문화미래 이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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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 (사)문화미래 이프 이사는 "신사임당을 새로운 화폐의 도안으로 삼는 것은 아직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를 그대로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모양처' 개념은 일제 식민지 교육에서 비롯됐다. 남성들에게는 식민 시대에 부려먹을 기능성 교육을 했다면, 여성들은 식민지 목적에 맞는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한 가정에 꼭 필요한 현모양처로 교육시켰다.

일제 식민지 교육 내용을 보면, '여성에게 식견과 이론을 가르치면 자신의 주관이 서면서 잘못된 현실에 대한 저항이 생길 수 있다'면서 현모양처형 여성, 일제 식민지 현실에 저항할 수 없도록 교육했다."


김신 이사는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 시대에는 그에 대해 현모양처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는 일제시대에 강조된 이미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방 이후에도 '남자들에게 협력이 되는 정도로만 배워라'는 교육방식은 계속됐다"면서 "국민을 통제하려는 이같은 교육 방식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존엄하고 고유한 삶을 산 주체적인 여성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적 활동에 참여한 여성 ▲사회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행동한 여성 등을 화폐 도안 인물의 선정 근거로 내세웠다.  
 
이숙인 여성문화이론연구원 연구교수는 "신사임당의 실체를 안다면, 남성들이 더욱 신사임당에 반대할 것"이라며 "신사임당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모양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신사임당은 남편이 첩을 들이는 것에 반대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금강산으로 불법을 닦기 위해 들어가 버렸다. 당시 율곡의 나이가 15세도 되지 않았는데, 4남3녀의 아이들을 두고 떠나버리는 여성을 어떻게 현모양처라고 볼 수 있겠느냐"

이 교수는 "신사임당은 '한국의 여인상' '조선의 모범 규수'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왜곡된 이미지일 뿐"이라며 "자식의 성공에 어머니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현실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화폐 도안 여성으로는 누구?

참석자들은 새로운 화폐의 도안 인물로 신사임당에 반대하면서 독립운동가 유관순, 예술가 나혜석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은광순 '호주제폐지시민모임' 대표는 유관순에 대해 "여성·연령·식민시대의 억압 등의 장벽을 힘차게 뛰어넘었다"고 평가하면서, 높은 대중적 인지도 등을 근거로 들었다.

유동준 '나혜석기념사업회' 회장은 "신사임당이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이유로 부적절하다면, 독립운동가이자 최초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이 적절할 것"이라며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시대를 정직하게 산 여성"이라고 나혜석을 추천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외국에는 독립운동가·문학가 등 여성 화폐인물이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외국에는 독립운동가·문학가 등 여성 화폐인물이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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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사임당 , #(사)문화미래 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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