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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강원도 정선에도 가을이 통과하고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산 정상을 내려온 단풍이 민가에까지 오색의 물감을 풀어 놓았다. 정선아라리 가락이 흥겹거나 구성지게 울려퍼지는 강원도 정선 땅. 정선에서는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제32회 정선아리랑제가 열렸다.

 

인간이라고 죽음의 목록에서 예외일 수 없어

 

정선아리랑제 기간 중에 열리는 '2007 아라리문학축전'은 이번이 3회 째다. 정선의 문화예술인들이 마련한 아라리문학축전은 정선이 문학의 고장임을 확인시켜주는 작업까지 병행 한다.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벌어진 '2007 아라리문학축전'은 정선의 삶과 애환을 다룬 예전의 문학 행사와 달리 주제를 무겁게 잡았다. 주최 측이 정한 문학행사의 주제는 '인간, 우리는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이다. 

 

환경오염으로부터 결코 피할 수 없는 세상. 물 좋다고 소문난 정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동강이 죽음의 강으로 변하면서 우리 인간이라고 죽음의 목록에서 제외될 수 없는 상황이다.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동강을 죽이는 건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에 있는 도암댐. 도암댐은 쓸모도 없이 방치되면서 아름다운 동강을 죽이고 있다. 이번 2007 아라리문학축전은 동강을 살려내고, 동강을 죽이고 있는 도암댐을 해체하기 위한 걸음이다.

 

문학축전에 참가한 문화예술인만 해도 100여명이 넘는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 동강 죽이는 도암댐을 해체하라고 정부 측에게 촉구했다. 문학축전의 첫 행사는 동강생명문학포럼이었다.

 

 

 

13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포럼은 '동강의 생태적 가치와 문학의 힘'이라는 주제로 김하돈(백두대간연구소장·시인)을 비롯 신철하(문학평론가), 최석범(한강수자원연구소장), 최법순(민예총 정선지부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살아있는 섬진강과 죽어가는 동강과의 만남

 

토론에서 김하돈 시인은 "강에도 생애가 있습니다. 한강이 노년기라면 동강은 청년기에 해당됩니다. 도암댐이 있는 송천은 유아기에 불과합니다. 유아기에 있는 송천에 댐을 건설한 것은 정부의 무지를 스스로 보인 것입니다"라고 정부의 무능행정을 비판했다. 

 

최석범 댐 전문가는 "도암댐이 홍수조절용으로 부적절하지만,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암댐을 홍수조절용으로 전환하려한다"라며 정부의 수자원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토론 말미에 "정부의 정책을 믿지 말라, 정부 정책을 믿었다간 낭패를 보는 것은 국민뿐이다"라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토론에 이어 오후 5시부터 시작된 2007 아라리문학축전 본 행사는 가을빛이 물들어 가는 정선아라리촌 야외무대에서 개최되었다. 강원도 양양 출신 소설가 이경자씨의 문학강연으로 시작된 문학축전은 박영희 시인의 시낭송으로 이어졌고, 강신애 시인과 김용택 시인의 시낭송으로 꾸며졌다.

                                     

그는 퍼슬퍼슬한 장발 질끈 묶고
사시사철 검정고무신에
주야장천 티벳 민속의상 차림이다
튀는 행색으로 치자면야 영락없이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사이비 도인이거나
술 탁발 일삼는 땡추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필력 짱짱한 글쟁이다
누가 반골 관상 아니랄까봐
궂은일 발뺌 못해 사지육신 편할 날 없다
요즘 그가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나 붙잡고 통사정이다
묵납자루 가는돌고기 돌상어
헤까닥 헤까닥 배때기 뒤집고 떠오르는 강
줄초상난 동강을 누가 좀 살려달라 애걸복걸한다
강물이 구정물이 되고 똥물이 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해온 내게
레프팅과 트레킹과 펜션과 정선오일장을
즐겨찾기해둔 내게 동강의 비보를 전한다
자리 만들테니 겸사 다녀가라는 말
귓전으로 흘려버린 지 두어 해
그 많던 쉬리 깔딱깔딱 숨넘어가는데
시간 탓 거리 탓
망할 놈의... 탓! 탓! 탓!만 탓했다

나 오늘 정선에 간다
모든 걸 제 탓으로 돌리고 묵묵히 살아가는
아라리 아라리 강기희 보러 간다
한 수 배우러 간다
- 손세실리아 시 '정선에 간다' 전문

 

섬진강과 동강의 멋진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문학축전은 시낭송을 마친 김용택 시인이 "동강엔 처음 와 보았습니다. 처음이지만 자주 와 본 동강이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동강이 살아나길 간절히 빌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큰 박수가 쏟아졌다.

 

 

임미나 시인의 산문이 낭송되고 이승철 시인의 시 '다시 동강에 와서'가 이어졌다. 정선에 역시 처음이라는 손세실리아 시인은 '정선에 간다'라는 시를, 여주 여강변에 둥지를 튼 홍일선 시인은 시 '강물의 안부'로 동강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동강은 홍일선 시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동강은 죽어 있었으며, 강을 죽인 인간의 물음에 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 시인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할 이는 동강이 아닌 우리 인간. 동강을 죽인 인간도 역시 시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여러분, 동강을 잊어 주십시오!

 

동강 서시 '동강, 이제 그대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못하리'가 시극으로 공연될 때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쓸쓸하게 죽어가는 동강이 극으로 표현되고 제발 동강을 잊어 달라는 말로 시극은 끝났다.

 

긴 여행 끝에 정선에 당도하니
강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아니 이미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강변마을 사람들은 동강이 죽어가는 중에도 제 할일만 묵묵히 합니다.
동강의 다슬기가 버려진 나사처럼 강바닥을 구르는 시간에도 어느 사람은 삼팔광땡을 잡고 어느 사람은 장땡을 잡았다고 좋아합니다.
꺽지의 날쌘 몸놀림도 어름치의 아름다운 날갯짓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우라지를 찾은 사내들은 아우라지 처녀의 서러운 눈물 외면하고 그녀의 치마폭만 살핍니다.
이놈! 하고 큰소리치는 어른이 없으니 강변마을 사람들은 동강이 죽어가는데도 제 할일만 열중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는 장사꾼은 하루 커피값으로 5만원을 쓰지만 정작 죽어가는 동강은 모른 체 합니다.

 

손님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정선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다 잊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강은 이제 여러분의 강이 아닙니다.
강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 동강을 잊어야 합니다.
손님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동강을 잊어 주십시오. 
 - 시극 중에서 강기희 시 '동강에는 쉬리가 없습니다.' 일부

 

행사가 끝나고 문화예술인들은 '죽어가는 동강을 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어둠이 내린 시간 성명서를 낭독하는 김하돈 시인의 목소리는 분명하고도 단호했다.

 

문화예술인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천혜의 자연유산인 동강의 생태계가 조속히 복원할 수 있도록 즉각 국무회를 소집할 것 ▲환경부장관과 산자부장관, 강원도지사는 국민의 강인 동강을 죽인 무능행정에 대해 사과하고 동강살리기 대책을 수립할 것 ▲정부당국은 동강을 죽이고 있는 1차적 주범인 도암댐을 당장 해체하고, 생명의 어머니이신 동강을 살리는데 적극 동참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성명서에 동참한 문화예술단체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한국문학평화포럼, 정선문화연대,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와 2007 아라리문학축전 참가자 일동이다.

 

문학축전에 참가한 문화예술인들은 행사 다음 날인 14일 오전 동강 생태기행에 나섰다. 일행은 동강을 거슬러 올라 도암댐까지 갔다. 동강을 죽이고 있는 도암댐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폐수를 흘려 보냈다.

 

맑고 고운 가을빛이 무색한 장소인 도암댐에서 문화예술인들은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라는 말을 되뇌기도 했다. 어떤 이는 아름답던 송천계곡에 댐을 건설한 정부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도암댐이 해체되어야 할 수 만 가지 이유가 생겨나는 순간에도 도암댐 하류는 물고기들의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아라리문학축전, #정선아라리, #동강, #도암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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