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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시물 및 메일 내용 수집해 법무 담당에게 일일전달'
'학생선동자 소환경고 및 일일보고'
'사범대 학생 가운데 교수협의회 동조자 개별 면담 및 일일보고'
'현수막 설치 즉시 철거'
'경리팀 학생지원비 자료 유출자 색출 및 징계조치'
'사진 및 비디오 촬영 일일 점검 및 보고'

 

경찰의 사건 수사나 첩보활동을 위한 지침이 아니다. 한 대학이 '현 학교 상황에 대한 각 부서장의 역할 지시사항' 제목으로 작성한 문건 내용 중 일부다.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대전의 한남대학교(총장 이상윤)에서 벌어진 일이다. 모든 이메일 내용을 검열당하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당해야 하는 대상은 소속 교수와 학생이다. 학내 교직원과 학생들의 의사표현을 차단하기 위해 감시와 통제를 해왔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11명의 실처장별로 40개 항의 지시사항을 담은 이 문건에는 총장의 자필로 추정되는 지시메모도 들어있다.    

 

최근 이 같은 문건을 입수, 공개한 한남대 교수협의회(교협) 신운환 회장은 "지난 7월경 학교 당국자가 총장의 지시사항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독재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도 학교 당국자가 작성한 문건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교 측 "지시하지는 않고 폐기한 듯"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학교 당국자 중 누군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어느 부서장도 이같은 문건을 본 적도, 지시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문건을 작성했지만 지시하지는 않고 폐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교 당국자 중 누군가가 작성한 것은 맞지만 실제 지시된 사항은 아닌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다.

 

반면 교협 신 회장은 "얼마 전 용역회사 직원이 교수들이 정문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하다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 측이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 당국에 대한 비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모 학생의 아이피를 추적하고 학부모에게까지 연락해 징계하겠다며 협박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협 측은 '학생지원비 자료 유출자를 색출해 징계조치'하라는 지시내용도 '적반하장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학 측은 지난해 학생지원비와 관련, 예년보다 10억원이 많은 32억여원을 집행했고 총학생회장이 이 중 2억6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교직원 두 명이 치르지도 않은 행사비를 학생회에 지급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몰래 사진 찍고 비판 글 문제 삼아 아이피 추적도..."

 

신 회장은 "발견된 문건은 그동안의 감시와 협박이 학교 측의 치밀한 사전계획과 지시에 의해 이루졌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며 "경위와 책임을 묻고 독재 총장의 해악을 널리 알려 더 이상 불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학교 측은 "문건 작성 경위를 파악하거나 책임소재를 가릴 계획이 없고 그럴 필요 또한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한남대 교수협의회는 이상윤 총장의 총체적인 무능과 밀실행정으로 인한 파행운영의 책임을 학교 측에서 총동문회 등 외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며 부총장실에서 지난 2일부터 12일째(14일 현재)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앞서 한남대총동문회는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상징탑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폭거를 저질렀다며,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27일째 총장실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교협'은 왜 부총장실을 점거했나

총 동문회의 총장실 농성 이유는 익히 알려진 바다. 총동문회는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상징탑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하자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9월 20일 보도/ '동문회가 총장실 점거...한남대에 무슨 일이?')

그렇다면 교협은 왜 부총장실을 점거한 것일까? 학교 바로세우기 공동추진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신운환 교협회장은 그 이유로 학교 측의 밀실, 독선 행정과 책임 떠넘기를 꼽았다. 발견된 사찰지시 문건은 정당한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있는 학교 측의 독선행정의 실사례라는 주장이다.   

 

한남대는 현재의 본부 캠퍼스를 팔고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지난해 6월 행정도시진출 정책연구팀을 구성했고 현재 세종시 건설청에 토지매입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매각여부를 검토중인 대덕밸리의 제2캠퍼스는 땅 매입 과정 등을 놓고 대학 측과 교협이 법정다툼을 벌인 화근이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은 "50여 년의 전통이 있는 사학을 팔고 캠퍼스를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학생 자치기구와 교직원에게 형식적 설명회 외에 구성원의 의견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교협에 대해서는 캠퍼스 이전자료 일체를 '대외비'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심지어 관련 위원회 명단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캠퍼스 이전계획, 교수들에게도 '대외비'"

 

교협은 "구성원들의 합의 없이 밀실에서 추진되고 있는 한남대 전체의 세종시 이전을 반대한다"며 "매각이전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학교 측은 "지난 5, 6월 경 교협과도 세종시 이전과 관련한 설명회를 하려고 했는데 교협 측이 이를 거부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당국에서는 (의견수렴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캠퍼스 이전 사업은 아직 명확히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교협은 사범대 총장을 임명하면서 관련 교수 전원이 만장일치로 추천한 L교수를 배제한 것도 밀실행정의 한 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교협 관계자는 "L교수가 '공동추진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사범대 학장을 공석으로 두다 최근 다른 사람을 임명했다"고 말했다.

 

상징탑 철거 문제 또한 교협이 농성을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학교 측은 당초 철거이유로 '교통 혼잡'을 들었으나 그 자리엔 도로가 아닌 분수대가 들어섰다. 지난 2004년 대학 측이 학교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71.5%가 '대학의 대표적 상징물'로 상징탑을 꼽았다.

 

"상징탑 이전, 부총장 개인감정에서 시작"

 

교협 측은 철거 이유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상징탑 철거 이전은 부총장이 상징탑을 설계한 미술교육과 P교수에 대한 개인감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교협 측은 "부총장이 P교수에 대한 감정으로 멀쩡한 상징탑을 철거 이전하고서도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동문회의 상징탑 복원 요구는 지극히 정당함에도 총장과 부총장이 서로 책임을 총동문회에 떠넘기고 시간끌기로 일관해 부득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부총장이 특정인에 대한 사감을 갖고 상징탑을 철거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실제 부총장은 상징탑 철거에 대한 결정권자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교협 측은 상징탑 대화에 부총장이 응할 것, 학내 각 구성원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 구성, 각 현안별 문제해결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대화의 우선 조건으로 점거농성 중단을 내세우고 있다. 파행이 장기화되더라도 집단행동에 굴복해 대화에 응하는 방식은 택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총장실과 부총장실 농성파문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한남대, #사찰지시, #이상윤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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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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