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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숙박지였던 나디마을은 산속의 전원마을처럼 차분했다.
▲ 나디 마을 첫날 숙박지였던 나디마을은 산속의 전원마을처럼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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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에 잠을 깬다. 자정부터 비가 내렸다. 비는 새벽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자욱한 안개가 페와호수를 가렸다. 연일 습한 날씨로 3일째 걸어놓은 빨래는 여전히 눅눅하다.

새벽 6시, 기다렸던 알람시계가 울린다. 이제 출발 시간이 되었다. 짐을 챙겨 숙소 앞으로 나가니 프레임(포터 겸 가이드)이 빈 배낭을 매고 기다리다 우리 짐을 자기 가방에 넣는다.

검은 피부에 탄탄하게 잘생긴 네팔 청년 프레임은 27살이라고 했다. 결혼해서 이번에 아이를 낳았는데 곧 있으면 100일이 된다고 했다. 트래킹에 꼭 필요한 짐 이외에는 숙소에 보관했다. 처음 배낭 여행을 출발할 때부터 짐이 가벼웠기에 포터에게 맡길 짐도 별로 없다.

트래킹을 함께 했던 포터 겸 가이드 프레임이다. 27살의 나이로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포카라 인근에 살고 있다.
▲ 포터 프레임과 아내 트래킹을 함께 했던 포터 겸 가이드 프레임이다. 27살의 나이로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포카라 인근에 살고 있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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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를 떠나 안나푸르나 향해 택시가 달린다. 이른 아침 포카라 시내를 가로지른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있다. 길거리엔 종이 쪽지들이 날린다. 뭐냐고 했더니 네팔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면 시험지를 찢어 버린다고 한다. 길거리에 날리는 종이는 바로 시험지였다.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나도 한 때 영어공부가 하기 싫어서 영어책을 찢어버린 적이 있다. 책을 찢는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그 아이들도 시험지를 찢는다고 해서 시험성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분풀이라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으니 시험지를 찢으며 즐기는 것도 아는 것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포카라에서 베시사하르까지는 1시간 30분~2시간 정도가 걸린다. 택시는 중간에 단 한번 택시기사가 화장실에 가기 위에 길거리에 차를 멈춘 적을 빼고는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달려오니 멀리 옥색 빛을 띤 강이 흐른다. 프레임에게 물으니 먼센티강이라고 했다. 이 강은 안나푸르나 빙하가 녹아 흘러 내리는 강이라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베시사하르에 도착했다. 베시사하르는 한국의 작은 소읍 같은 곳이었다. 아나푸르나 트래킹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산 위 사는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하거나 산으로 물건을 싫어 나르는 당나귀들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즉, 이 마을은 산과 도시를 연결하는 항구 같은 곳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이 시작되는 베시사하르에서 안나푸르나로 걷기 위한 첫 길이다.
▲ 베시사하르에서 안나푸르나 가늘 길목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이 시작되는 베시사하르에서 안나푸르나로 걷기 위한 첫 길이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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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택시가 멈춘 곳은 안나푸르나 입장권을 확인하는 체크포인트다. 한국의 입장권 받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나푸르나 입장권은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확인하는 곳이 나온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어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택시 기사는 다시 포카라로 돌아가고 우리는 드디어 걷기 시작했다. 안나푸르나의 설산 밑에는 설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열대림이 존재한다. 바나나 나무와 설산은 그렇게 묘하게 어울리는 것이다.

프레임은 1시간쯤 있으면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불부레까지 버스가 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맘은 걷기를 선택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짐을 어깨에 올려 놓았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진 그 어떤 짐보다도 가벼웠다. 체크포인트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는 길이 트래킹의 시작을 알리는 첫 발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바로 걷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드디어 산으로 향하는 첫 걸음을 시작한다. 이제 걷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10일 넘게 이제까지 현대적인 교통수단이라는 것으로부터 외면받은 가장 오래된 교통수단인 다리로 저 산을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석유라는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해서 살아왔던 지난 삶과도 이별을 고한다. 두 다리는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다는 듯이 익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 끝에서 산의 기운이 느껴진다.

대부분 네팔 주택은 2층으로 되어있다.
▲ 네팔의 주택 대부분 네팔 주택은 2층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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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은 가볍고 주변의 모든 풍경들은 새롭다. 길 주변에 농부들이 타작을 하고 있다. 밀이 익어간다. 농부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걷는다. 한참을 걷는데 버스가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휑하니 지나친다. 버스 안에 여행자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옥색의 강물은 여전히 우리 옆을 흐른다. 몸에 힘이 빠질 때쯤 멀리 네팔 여인 하나가 춤을 춘다. 머리를 곱게 단장한 그녀는 옥색의 계곡 옆에 불안하게 뻗은 바위에 올라 부채춤을 추듯 손을 움직였다.

이 여인은 바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실성했다고 마을주민들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빙빙돌렸다. 저 뒤로 흐르는 강이 먼세팅 강이다. 사진에서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옥색이다.
▲ 실성한 여인 이 여인은 바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실성했다고 마을주민들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빙빙돌렸다. 저 뒤로 흐르는 강이 먼세팅 강이다. 사진에서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옥색이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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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연이 있을까? 했는데 저 멀리 떨어진 아주머니 한 분이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빙빙 돌린다. 실성했다는 것이다. 진짜 실성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싫지 않았다.

마낭은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중에 중요한 지점으로 비공식적인 안나푸르나의 수도로 통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마낭에서 고산병때문에 되돌아 가기도 한다.
▲ 마낭표지판 마낭은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중에 중요한 지점으로 비공식적인 안나푸르나의 수도로 통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마낭에서 고산병때문에 되돌아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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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그녀를 떠나 한참을 걸었다. 드디어 마낭이라는 화살표가 표시된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드디어 진짜 산행의 시작이라고 한다. 즉 여기까지 버스가 오는 것이다. 한때의 당나귀들이 방울 소리를 울리며 우리를 앞질러 다리를 건넌다.

산속 마을에 자동차가 갈 수 없기 때문에 당나귀와 사람이 짐을 옮긴다.
▲ 짐을 나르는 당나귀 산속 마을에 자동차가 갈 수 없기 때문에 당나귀와 사람이 짐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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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선두엔 경험 많은 암컷이 서고 뒤에는 수컷이 따른다. 이 두말에 머리엔 우두머리를 뜻하는 멋진 장식과 종이 달려있다. 종소리 울림이 경박하지 않아 산과 잘 어울렸다. 그들의 등에는 산중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담겨 있는데 대부분은 여행자들을 위해 롯지(산장)에서 주문한 물건들이라고 했다. 양쪽에 40kg씩 80kg을 지고 올라간다는데 당나귀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첫 날 숙소였던 나디는 해발890m 였다.
▲ 첫 날 숙소 나디 첫 날 숙소였던 나디는 해발890m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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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몰이꾼은 작은 꼬챙이 하나를 들고 가고 있었는데 포터의 말에 의하면 그 꼬챙이로 당나귀가 멈추면 항문 주위를 찌른다고 한다.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설산을 오가며 살아가는 당나귀와 가난한 몰이꾼의 운명이 슬퍼 보였다.  몰이꾼은 산중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직업 중 하나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곳은 구름다리를 지나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첫 마을 나디였다. 멀리 산속의 전원마을처럼 한가롭게 보이는 마을 나디가 우리에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태그:#안나푸르나, #먼센티강, #트래킹, #네팔,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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