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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입구에 있는 단풍잎 길목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잎들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한결 부드럽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지나간 길목에 뒤이어 오는 사람들의 마음도 부드럽고 풍요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두물머리 입구 단풍잎 길목 두물머리 입구에 있는 단풍잎 길목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잎들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한결 부드럽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지나간 길목에 뒤이어 오는 사람들의 마음도 부드럽고 풍요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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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열기란 쉽지 않다. 사막에 부는 모래 바람과 맞서야 한다. 망망한 대해에 몰아치는 파도를 꿰뚫고 나가야 한다. 굽이굽이 솟아 있는 산허리도 타고 넘어야 한다. 봄에는 죽은 것과 움터있는 생명체를 분간해야 한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여름철 거짓 소리와 참된 소리를 구별해야 한다. 낙엽으로 뒤덮여 있는 가을철 깊은 웅덩이도 살펴야 한다. 살얼음판에 내려앉은 겨울 함박눈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그 길을 앞에서 터 준다고 해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런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제 스스로 깊이 있는 길을 잴 수 있는 가늠자를 없애는 꼴과 같다. 어디에 혈이 있는지, 어디에 막힘이 있는지, 그것을 보는 혜안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가지만 언제나 깊이 있는 앞선 걸음으로 꿰뚫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두물머리 둘레에 있는 억새입니다. 가을 빛깔을 띠며 스스로 농익어가고 있습니다. 완연하게 익을 무렵엔 더욱더 머리를 숙이며 물에 맞닿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듯 겸손한 억새를 만나는데, 사람도 이처럼 겸손하다면 더욱더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 두물머리 억새 두물머리 둘레에 있는 억새입니다. 가을 빛깔을 띠며 스스로 농익어가고 있습니다. 완연하게 익을 무렵엔 더욱더 머리를 숙이며 물에 맞닿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듯 겸손한 억새를 만나는데, 사람도 이처럼 겸손하다면 더욱더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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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위의 모든 것 속에는 뜻이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은 작은 우주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자를 통해 고독을 헤아리고, 병든 자를 통해 병듦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길목에서 절망하고 있는 자를 통해 스스로 절망할 줄 알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사람을 통해 진정한 이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대와 다른 걸음을 걷는 이가 있을지라도 언제나 스승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의 그릇은 길의 넓이를 재는 가늠자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모든 길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이미 인생의 중턱을 넘어선 그대도 그 길이 어떠한지 환히 알고 있지 아니한가? 이것인가 싶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길이다. 이 항로가 맞는가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항로가 나타나 혼란케 한다. 한결 같던 사람도 한 순간의 욕망으로 인해 다른 길을 택하지 않던가? 앞에서는 웃을지언정 뒤로는 비수를 꽂는 사람도 적지 않다. 참되려니 하면 어느새 돌아서 있는 게 사람의 마음임을 알면서도 매번 속고 또 속아 오지 않았던가?

두물머리 연꽃 길 위를 한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어찌나 다정하던지 보기에도 넉넉했고 흐뭇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들이 걷는 길목의 걸음걸이가 이렇게 다정다감하고 흐뭇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 연꽃 길 위를 걷는 엄마와 아들 두물머리 연꽃 길 위를 한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어찌나 다정하던지 보기에도 넉넉했고 흐뭇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들이 걷는 길목의 걸음걸이가 이렇게 다정다감하고 흐뭇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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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직 제 있는 함량으로 가야 한다. 올곧게 변화된 존재는 누가 떠벌리지 않아도 소문나기 마련이다. 입소문은 그래서 가끔 새 길을 터주는 몽학선생이기 되기도 한다. 누구든지 제 스스로 변화의 정점에 서 있기만 하면 푯말을 세우거나 홍보력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나비가 향기 있는 꽃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스로 진실되게 살면 온 세상 물결은 자연스레 감동을 받는다.

혹여 그대가 보기에 그 길이 이미 놓여 있던 돌다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더라도 실망치 말라. 경제적 효과나 물량주의 업적에 너무 괘념치 말라. 오히려 그들의 인생길을 터주려고 온 힘을 기울이면 된다. 경제나 물질은 결코 사람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발아래에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의 소통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면 된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과 여럿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생의 길을 터 나가면 족할 것이다.

모름지기 깊은 우물물을 퍼올리기 위해선 한 모금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물은 사람에게 생수입니다. 물을 퍼올리기 위해서 마중물이 필요하듯 인생의 길목을 여는 사람은 누구나가 한 모금 마중물이 되는 걸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헌신의 깊이만큼 생명이 넘쳐나는 까닭입니다.
▲ 깊은 물을 퍼올리는 마중물 모름지기 깊은 우물물을 퍼올리기 위해선 한 모금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물은 사람에게 생수입니다. 물을 퍼올리기 위해서 마중물이 필요하듯 인생의 길목을 여는 사람은 누구나가 한 모금 마중물이 되는 걸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헌신의 깊이만큼 생명이 넘쳐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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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모든 역량을 발휘한 뒤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다. 겸손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막힘이 있으면 기다렸다 에돌아가고, 결국 낮은 바다로 한데 모인다. 그 길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뿐이다. 고함치는 폭포수와 같은 깜냥으로는 결코 모두를 포용할 수 없다. 하여 최선을 다해되 꼭 완전무결하려고 하지 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예나 지금이나 그 말이 헛되지 않음을 안다면, 새 길을 여는 그대가 온 역량을 다한 뒤에도 언제 어디서나 겸손하길 바란다.


태그:#새로운 길, #두물머리 연꽃, #한 모금 마중물, #물처럼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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