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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정지영씨의 허락하에 취재기자가 시각장애인의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 <기자 주>

 

오전 9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 도착했다고? 거기서 유턴해서 00가구 골목으로 들어와. 우리도 나갈게!”

 

친구들과 마니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딸아이와 안내견을 준비시켜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골목에 친구 둘이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견 ‘난이’도 나들이에 신이 났는지 차에 먼저 올라타려 한다.

 

467m, 그 험한 길을 어떻게?


2시간 가량을 달려 강화도에 도착했다. 마니산 입구에서 입장권을 산다며 매표소에 갔던 친구가 되돌아와서 복지카드를 갖고 왔는지 물었다. 마니산 입장료는 성인이 1500원이고 7세 이상 어린이는 500원이다. 그런데 복지카드를 내밀자 어른 세 명 입장료를 모두 무료로 해주었다. 복지카드를 받아들며 “여긴 내가 쏜 거야~!”하며 친구들에게 생색을 냈다. 하하하.


오른손으론 친구의 팔을 잡고, 왼손으로는 난이의 목줄을 잡았다. 드디어 마니산 등반이 시작되었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다. 사실 난 등산을 싫어한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걸 대체 왜 산에 올라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가 말했다. “올라갈 때는 참 힘이 드는데 정상에 올라갔을 때 그 시원한 바람을 한 번 맞아보면 그 다음부터는 산에 가는 게 좋아져.”

과연 그럴까? 그렇게 나의 첫 산행이 시작되었다.


마니산 초입은 완만하고 넓은 길이었다.

 

“길이 계속 이렇다면 충분히 잘 올라갈 거 같은데…! 나무 냄새도 나고 바람도 시원하고 참 좋다.”
“좀 더 올라가면 곧 험한 길 시작이야. 지금 맘껏 즐겨두라고.”

친구가 은근히 겁을 주었다. 산책길을 걷는 기분으로 걷노라니 단군로와 계단로로 나뉘는 곳에 이르렀다. 친구가 예전에 계단으로 올라가며 많이 힘들었다며 이번에는 단군로로 가보자 한다. 단군로 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니 잘 닦인 길은 어느덧 끝이 나고 바닥에 넓적한 돌들이 깔려 있어 울퉁불퉁한 느낌을 주는 길로 접어들었다.

 

돌계단에 당황하다

 

나는 벌써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자꾸만 빠른 속도로 올라가려 한다. 나현이도 나보다 앞서서 잘 걷는다. 처음 산에 간다고 했을 때 7살짜리 딸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나현이는 오히려 나보다 더 씩씩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등산 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은 점점 가팔라졌다. 흙길에는 곳곳에 나무뿌리가 가로질러 있고 바닥에는 자잘한 돌멩이들이 박혀 있어서 몇 번이나 걸려 휘청거렸다. 간간히 나오는 계단 역시 돌로 돼 있어 높이나 폭이 일정치 않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난이는 계단에서는 오히려 더 빨라지곤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난이를 다른 친구에게 맡기고 나는 친구의 팔만 잡고 가기로 했다. 나는 진행성 RP(망막색소변성증)로 어려서부터 서서히 시력이 약해지다가 스무 살 때부터 급격히 눈이 나빠져서 현재는 시각장애 1급이다. 진행성이다 보니 예전에는 보였던 것이 안 보이면 속이 상하기도 하고, 친숙한 풍경은 더 잘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바위 계단 있어.”

“바닥에 나무뿌리 조심!”

“왼쪽에 나무 잡고 오른쪽에 바위 잡고 올라와.”


친구가 계속 길을 설명하며 안내해준다. 나현이는 이미 저 앞에서 난이와 속도를 맞추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점차 숨이 가빠지고 있는데 나현이는 힘들지도 않은지 걸어가면서 과자까지 먹고 있다.


“이제 반 정도는 왔겠지?”

그러나 표지판을 보니 이제 겨우 1/3 정도 올라온 셈이었다. '에휴~, 정상까지 어떻게 가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잠시 쉬며 친구가 싸온 오이도 먹고, 초코바도 먹으면서…. 그렇게 사이사이 영양보충을 해주며 기운을 차리고 계속 올라갔다.


“나현아, 다리 안 아파?”
내심 딸아이가 걱정됐다. 두 시간이면 꽤 긴 시간인데, 가파른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이 7살짜리 아이에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난 다리 안 아파요.”
쌩쌩한 대답소리에 걱정이 다소 누그러진다.

“엄마, 나 밤 주웠어요.”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알밤을 더 찾겠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보니 괜한 걱정을 했나 싶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걸 보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점점 험해져 갔다. 살짝 내리막이 나타나는가 싶으면 다시 오르막이 이어졌다. 커다란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손을 잡고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던 참성단은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출입을 통제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옆 봉우리로 올라가 멀리서 참성단을 바라본단다. 산 정상은 생각보다 매우 좁았는데, 바닥은 편평했다. 그리고 사방이 트여 있어 바람이 매우 시원했다.

 

알고 보니 헬기가 내리는 곳이란다. 그래서 편평하게 닦아놓은 모양이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김밥을 한 줄씩 나눠 먹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걸 걱정하기에는 다리의 피로가 너무 컸다. 잠시 쉬는 동안 나현이는 참성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현아, 참성단이 어떻게 생겼어?”
“음~ 네모 모양이야. 돌을 벽돌처럼 쌓아서 만들어놨어.”

 
나현이는 산 아래로 논과 갯벌, 바다가 보인다며 마냥 신기해했다. 나는 이제 그 험한 길을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시계는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려갈 때는 계단로로 가기로 했다. 가장 험했던 정상 근처 돌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내려왔고, 이후 계단길이 지루하게 펼쳐졌다. 끝났는가 싶으면 계단이 또 나타나기를 몇 차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바닥에 주저앉아 몇 번이나 쉬었다. 그렇게 겨우 마니산 입구까지 내려왔다. 나무 의자에 앉아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노라니, 새삼 뿌듯함이 느껴진다. 내가 처음으로 산에 와서, 467m 높이의 정상까지 갔다 온 것 아닌가. 이런 성취감 때문에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모양이다. 이번 마니산 등반은 나에게 정말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내 딸 나현이에게도 참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어 더욱 좋았다.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10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마니산, #시각장애, #등산, #안내견,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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