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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아니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새벽 시간이다. 하지만, 졸리다. 세상의 소음이 가득했던 도시 속에서 이렇게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오늘(6일)은 진주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과 떠나는 진주여행이어서인지 새삼 들뜨기도 한다.

9월 한달동안 보름이 넘도록 비가 왔단다. 돌이켜보니 9월에는 여행 다닐 때마다 비가 왔던 것 같다. 습관도 하나 늘었다. 일기예보가 발표되면 으레 그런 줄 알았던 날씨를 요즘은 하루 전날도 의심스러워 인터넷을 찾게 된다. 불과 어제 잠들기 전까지도 그랬다.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잠이 들었으니까….

구름은 조금 많았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부랴부랴 도착한 광화문 동아면세점 앞은 오늘 진주로 떠나는 사람들의 분주함만이 가득하다. 커피 한 잔 나누며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뛰어오는 사람들, 인원 체크하는 가이드분들…. 떠나는 시간이 촉박해지자 그 분주함도 박차를 가한다.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부드럽게 진주로 진주로 향한다. 하늘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촘촘한 구름들이 가득하다. 촘촘함 속에서도 보이는 푸른 하늘이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하고 시원한 음료수 같다.

산청휴게소에서 바라본 풍경 진주로 내려가는 마지막 휴게소 산청 휴게소의 푸른 하늘
▲ 산청휴게소에서 바라본 풍경 진주로 내려가는 마지막 휴게소 산청 휴게소의 푸른 하늘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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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산청에 접어들었다. 먼저 쉰 휴게소에서 한국도로공사에서 격월제로 발행하는 월간지를 가져왔는데, 내용중에 산청휴게소가 있었다. 우연하게도 타고가는 버스의 두번째 휴식처는 산청휴게소였다.

산청은 류의태 선생과 허준 선생으로 이어지는 한의학의 고장이고, 한방약초축제가 열릴만큼 인지도가 높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휴게소의 음식 가운데도 한방약초비빔밥이라는 메뉴가 유독 눈에 띄었다. 10분이라는 짧은 휴식시간이어서 맛을 보지는 못 했지만, 나중에라도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진주의 명물, 육회 비빔밥을 맛보다

진주의 명물... 육회 비빔밥 비빔밥에 육회를 넣은 육회비빔밥은 진주의 명물이다
▲ 진주의 명물... 육회 비빔밥 비빔밥에 육회를 넣은 육회비빔밥은 진주의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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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주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진주에서 유명한 육회비빔밥이다. 비빔밥 안에 육회가 들어간 것이다. 비빔밥의 유래는 참 다양하다. 궁중음식설부터 시작해서 임금몽진 음식설, 농번기 음식설, 동학혁명설 등등 이렇게 들어보면 맞는 것 같고, 저렇게 들어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때는 음식을 섞어먹는 것마저 예가 아니라 했으니 아마도 서민들이 먹던 음식이었고, 각 지역별로 특성화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간에 진주에서 유명한 비빔밥은 육회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육회비빔밥이 나온 갑을가든은 일반 음식점보다 조경에 많이 신경쓴 흔적들이 보인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덩쿨과 대나무의 푸른 기운이 아늑하고, 곳곳에 마련된 항아리도 나름대로 조화롭게 놓여져 있다. 정원쯤 정도되는 앞마당에는 쉴 수 있는 공간과 그네의자도 마련되어 있어 식사 후 커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약간 시간이 남아서 유등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남강변을 잠시 들렀다. 둔치 뿐 아니라 남강의 유유한 물길 위에도 유등이 둥실둥실 떠 있다. 한낮인지라 그 아름다움은 볼 수 없었지만,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원색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수놓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긴장된다.

진주 전국 민속 소싸움대회의 전경 진주 소싸움 상설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소싸움 풍경
▲ 진주 전국 민속 소싸움대회의 전경 진주 소싸움 상설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소싸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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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걔걔 무슨 소가 이리 작아?"

진주에서 맨 처음 찾은 곳은 소싸움 상설경기장이다. 113회째 맞는 "진주 전국 민속 소싸움대회"가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싸움 축제로 유명한 곳이 경북 청도다. 내가 해마다 찾는 축제이기도 한 청도 소싸움축제보다는 인지도면에서는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유래와 역사는 자못 깊다.

특히 진주는 신라가 백제를 물리친 승리의 기념으로 치러졌다는 유래가 전해질 정도로 역사가 깊고, 일제시대 때는 민족문화말살의 방편으로 소싸움을 없애기도 했다.(역시 군중심리가 무서운 것을 알았나보다.)

일본 흑소와 싸우는 대한민국 황소(지난해 청도 소싸움축제에서) 국제소싸움과 특갑종(810kg이상)의 소싸움이 흥미진진하다
▲ 일본 흑소와 싸우는 대한민국 황소(지난해 청도 소싸움축제에서) 국제소싸움과 특갑종(810kg이상)의 소싸움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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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각인된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없나보다. 청도 소싸움축제에 갔을 때는 항상 특갑종의 경기를 보거나 국제전을 보게 되었다. 특갑종은 800kg 이상 나가는 묵직한 녀석들의 싸움이고, 국제전 또한 우리나라 황소보다 덩치도 큰 소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 둔중하고 육중한 움직임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이 자못 볼 만했다. 우습게도 진주 상설 소싸움경기장에 들어가서 싸움소들을 보고 한 첫마디는 "무슨 소가 이리 작아??"였다.

소싸움은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자못 지겨울 때도 있고 싱거울 때도 있다. 기술이 펼쳐지지 않고 상대의 틈을 노리며 뿔치기나 밀치기만 할 때는 시간이 한량없이 흐르기도 하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의 기세에 눌려 싸우려들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싱겁게 경기가 끝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켜본 두 경기는 그리 지루하지도 싱겁지도 않은 제법 진지한 경기였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싸움소 싸움에 진 소가 무척 힘겨운 듯 하다. 싸움에 졌더라도 우주는 격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싸움소 싸움에 진 소가 무척 힘겨운 듯 하다. 싸움에 졌더라도 우주는 격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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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하는 내내 싸움소와 우주(소주인)는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함부로 하거나 무리하게 하는 법이 없다. 우주는 싸움소의 기를 북돋게 해주고, 기술을 명한다. 싸움소는 우주의 명령에 충실하고, 지는 그 순간까지 우주를 쳐다보기도 한다. 싸움에 졌더라도 우주는 화난 내색을 하지 않는다. 경기장을 쓸쓸히 빠져나가는 그 순간에도 우주는 싸움소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잘 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한다. 경기장 뒷편에서 우주의 부인인 듯한 분이 싸움에 진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생했다고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애틋하던지….

경기장 밖 우사에서 대기중인 싸움소 뿔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싸움소, 그러나,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가진 친근한 가축이다
▲ 경기장 밖 우사에서 대기중인 싸움소 뿔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싸움소, 그러나,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가진 친근한 가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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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뒤편에는 이번 소싸움대회에 출전할 소들의 대기장소가 있다. 육중한 덩치와 곧선 뿔을 가진 싸움소들의 모습에 기가 눌려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그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가진 동물인 것만은 틀림없다.

투계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된다. 발목에 파란색,빨간색 띠를 두른 투계는 두 사람의 손에서 놓아지는 순간 맹렬히 싸운다
▲ 투계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된다. 발목에 파란색,빨간색 띠를 두른 투계는 두 사람의 손에서 놓아지는 순간 맹렬히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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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은 기운과 흥, 닭싸움은 속도와 긴장

진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경기를 봤다. 바로 투계대회다. 소싸움과 마찬가지로 쉽게 말하면 닭싸움이 되겠다. 투계 역시 진주지역이 원조라 한다. 소싸움 상설경기장 옆에 120석 규모로 지어진 투계장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다.

소싸움이 싸움소들의 기운과 관중들의 흥이 어우러진다면 투계장은 차분함 가운데 빠른 공격이 주로 이루어지고, 관중들도 숨죽여 구경하는 분위기다. 경기장 내 짚으로 짠 바닥은 투계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100만원이 넘는 제작품이라고 한다.

투계의 위풍당당한 모습 시합을 앞두고 먼저 경기장에 입장한 투계를 잡아봤습니다.
▲ 투계의 위풍당당한 모습 시합을 앞두고 먼저 경기장에 입장한 투계를 잡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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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 역시 무게에 따라 낙동급, 한강급, 금강급, 섬진급, 영산급 등 체급이 있다. 우리나라 강의 긴 순서대로 체급을 정했다고 한다. 투계의 눈빛은 정말 날카롭다. 날카로운 눈빛은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고, 틈이 보이는 순간 기술을 선보인다. 서로 목을 휘감고 머리와 부리를 쪼는 모습은 다소 안스럽기까지 하다. 치고 받고 싸워서 이겨야만 기억되는 인간들의 싸움도 있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투계의 싸움 모습 투계중 한마리가 때려치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 투계의 싸움 모습 투계중 한마리가 때려치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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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공격기술과 방어기술을 선보이는 투계는 목과 머리를 쪼아대며 순식간에 때려차기 기술이 나오기 때문에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통상 40분 경기(30분경과 후 10분 경기)하고 물참시간이 있는데 물참시간은 싸움닭이 싸움도중 지치고 열기 가득한 몸을 물로 식히는 시간이다. 녀석들은 그 흔한 '꼬끼오~~' 소리도 내지 않는다. 오로지 강렬한 눈빛과 날카로운 부리만이 장내의 환호성을 자아낼 뿐이다.

투계장을 빠져 나와 집합장소로 걸어가며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혼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여행이란 것이 나를 찾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만, 옛것을 알고, 그 뜻을 새기는 것도 여행의 별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고사성어가 문득 떠오른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한국관광공사 여행후기란에도 올렸습니다.



#진주#소싸움#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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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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