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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선의 주요 이슈가 경제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문제가 된 비정규직과 양극화 해법을 두고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을 높여온 기업들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이른바 '기업혁명'이라 불리는 이들의 실험과 지속가능성, 한계를 다섯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1일 오후 경남 산청의 국수제조업체 동명식품에서 만난 손종수씨는 "쉬는 날에는 자기계발도 할 수 있었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오후 경남 산청의 국수제조업체 동명식품에서 만난 손종수씨는 "쉬는 날에는 자기계발도 할 수 있었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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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나면 영화 한 편 본다. 근로조건이 좋아지니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가족들과 대화하면 즐거운 마음이다."

지난 1일 오후 경남 산청의 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만난 손종수(51)씨의 말이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그의 얼굴에선 피로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손씨는 말을 이었다. "쉬는 날에는 자기계발도 할 수 있었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손씨의 말은 주야 교대조 근무를 하는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서 듣기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동명식품의 노동자들은 "근무 조건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그렇다"고 답했다.

동명식품은 경남 산청에 위치한 국수 제조업체로 직원 수가 62명인 중소기업. 현재 생산품을 모두 OEM방식으로 오뚜기에 납품하고 있다. 동명식품이 여타 중소제조업체와 다른 점은 한 가지뿐이다. 지난 2005년 1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는 점.

뉴패러다임이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뉴패러다임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재동 동명식품 대표의 아들인 박철진 상무의 말이다. 박 상무는 "유한킴벌리의 모델이 우리 같은 조그마한 회사에서도 가능할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지금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명식품은 제면(국수 제조)팀에 대해 뉴패러다임을 통한 평생학습 도입과 교대조 변경에 나섰다. 이후 회사의 매출액은 지난 2004년 71억원에서 2006년 110억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러한 동명식품의 사례는 대기업인 유한킴벌리에서 성공한 뉴패러다임이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일 낮 산청 공장을 찾았다.

동명식품은 2004년 진주에서 경남 산청군 금서농공단지로 확장 이전했다. 공장은 깔끔한 외관을 보였다. 공장은 총무부와 회의실 등이 있는 본관과 생산 현장으로 나눠졌다. 공장 소개는 강재영 동명식품 관리부장이 맡았다. 회사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끝낸 뒤 2층 회의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먹고 자기만 했던 일상, 여가시간 갖게 돼"

동명식품 직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위)과 평생학습공간의 모습(아래).
 동명식품 직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위)과 평생학습공간의 모습(아래).
ⓒ 동명식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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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넓은 공간의 대회의실, 아담한 소회의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옆으로는 막 공사를 끝낸 조그마한 공간이 보였다. 강 부장은 10여명의 앉을 수 있는 아담한 방을 두고 "'평생학습공간'의 공사가 오늘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평생학습조가 꾸려졌다"며 "업무와 관련된 직무 교육이나 리더십 등 소양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수 제조 현장으로 갔다. 방진복을 입은 후, 손을 물에 씻고 알코올로 소독했다. 마지막으로 에어샤워 시설을 통과했다. 현장 입구에서부터 소음과 밀가루 냄새가 기자를 반겼다. 하지만 내부는 매우 청결했다.

제면 작업은 대부분 자동화된 기계를 통해 이뤄졌다. 면을 만들 때 직접 소금을 넣는 것을 제외하면 포장팀으로 옮길 때까지 노동력은 필요치 않았다. 방진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CCTV 화면을 보며 기계 상태를 살피거나 제면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면을 청소했다.

제면 팀의 근무조는 3조 2교대로 운영되고 있다. 당초 2조 2교대에서 여러 형태를 운영하다 현재에 이르렀다. 주간 4일 근무 후 2일 휴무, 야간 4일 근무 후 2일 휴무(4-2-4-2)인 방식이다.

이경진(35) 제면 B팀장은 "하루 12시간 씩 일하지만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 별 힘든 점은 없다,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씨는 "2조 2교대에서는 먹고 자고 일하기만 했지만, 3조 2교대에선 자기 계발·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은 현재 1달에 두 번 이뤄지고 있다. 손씨는 "교육이 있으므로 해서 내가 가진 지식을 후배에게 전달해 주는 등 많은 대화를 하게 됐다"며 "(이를 통해) 숙련공이 돼갔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 입사한 하창부씨는 "교육시간 때 같은 조 사람들끼리 만나 이야기들 듣고 있다, 일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역시 "리더십, 대화, 인성 교육 등은 처음엔 귀찮았는데, 리더십 등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자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뉴패러다임을 통한 근무조 변경과 평생학습체계는 노동자와 회사에 큰 성과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회사가 뉴패러다임을 도입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뉴패러다임을 도입한 이유는?

박재동 동명식품 대표의 아들인 박철진 상무는 "뉴패러다임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박재동 동명식품 대표의 아들인 박철진 상무는 "뉴패러다임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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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진 상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동명식품은 2004년 7월 진주에서 산청으로 옮기면서 라인을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렸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박 상무는 "신입사원을 뽑았지만, 새로운 공장에서 기계적 트러블이 너무 발생해 신입사원들이 너무 힘들어했다"고 회고 했다. 이어 "이대로 가다간 직원들이 말라죽겠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며 뉴패러다입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마침 뉴패러다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이뤄져 2005년 1월부터 뉴패러다임을 전격 도입했다. 원래 근무 조는 7명씩 주야로 나뉘어 하루 12시간 씩 6일 일하고 1일을 쉬었다. 뉴패러다임 도입 이후 근로자를 더 뽑아 7명씩 3개조가 '5일 주간 근무-1일 휴무-1일 교육', 이어서 '5일 야간 근무-2일 휴무-1일 교육'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인당 근무시간은 주당 72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었고, 학습시간은 연간 389시간이 확보됐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등 근무환경이 좋아지지만 임금은 줄지 않는다"고 밝혀 동의를 얻었다. 

시작은 좋았다. 근로자 손씨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자기계발을 할 수 있었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한 것처럼 회사는 안정을 이뤘다. 박 상무는 또한 "교육을 통해 회사와 근로자 간의 관계가, 전에는 얼굴도 못 봤는데, 지금은 서로간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 상무는 "시작이 좋아, 욕심을 내 4조 3교대 형태로 갔다"고 밝혔다. "기계적으로 보완이 돼 한 조를 7명에서 5명으로 줄여도 노동자들이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 한명이 떠나 그 사람의 월급을 나머지 노동자에게 나눴다.

시작은 좋았으나... 위기에 부닥친 뉴패러다임

동명식품의 뉴패러다임은 쉬운 길을 걸은 것만은 아니다. 박 상무는 "밀가루 값 상승으로 국수 시장의 제품 가격이 올라 소비량이 줄었다"며 "우리의 경우 밀가루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소비자가에 대한 반영이 어려워 매출액은 오히려 줄었다"고 밝혔다.

동명식품은 근무조를 유지할 수 없어 지난 5월 4조 3교대에서 다시 3조 2교대로 바꾸었다. 예전과는 달리 4일 근무 후 2일 쉬는 방식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에서 12시간 근무로 바뀌자 직원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휴무를 늘리고 교육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합의가 됐다.

박 상무에게 "교육을 줄인 것은 평생학습이 핵심인 뉴패러다임의 의미가 퇴색된 게 아니냐"고 묻자 "질을 높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상무는 "처음 욕심을 많이 내 교육 시간을 늘렸지만, 직원들이 장시간 앉아 있는 걸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박 상무는 이어 "효율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했다"며 "처음엔 근로자들이 '학습조가 왠말이냐'고 했지만, 지금은 해보려는 자세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며 "평생교육은 5~10년 장기 계획으로 가야한다, 1~2년 시간이 줄었다고 못했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실험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박 상무는 인터뷰 내내 지금은 과도기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회사의 매출은 국수시장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매출 상승의 한계가 있다. 실제 현재 1만5000톤의 생산이 가능하지만 1만4000톤 정도만 생산하고 있다. 또한 2005년 11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2006년에는 11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하지만 박 상무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 상무는 "교육의 잠재력은 파악할 수 없다"며 "어디서 어떻게 발휘될지 모른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을 통해 직원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의식이 심어준 것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꼽았다. 박 상무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확신을 보였다.

"5년 후, 10년 후에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회사가 될 것이다."


태그:#뉴패러다임, #동명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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