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 대선의 주요 이슈가 경제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문제가 된 비정규직과 양극화 해법을 두고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을 높여온 기업들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이른바 '기업혁명'이라 불리는 이들의 실험과 지속가능성, 한계를 다섯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병원쪽은 주당 5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일반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등 각 부서별로 탄력적이고, 차등적인 근무시간을 만들었다.
병원쪽은 주당 5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일반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등 각 부서별로 탄력적이고, 차등적인 근무시간을 만들었다. ⓒ 굿모닝병원 전선미

"아~이리와 보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5시께 경기도 평택의 굿모닝병원 6층.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쳐다보던 이승광 이사장이 기자에게 손짓을 했다. 화면엔 다소 복잡한 표가 보였고, 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늘 환자들이 1076명이 들어왔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번 돈이고, 9월 한달동안 번 돈을 보려면…."

이사장의 손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화면엔 새로운 문서창이 떠오른다.

"음, 30억 좀 넘게 벌었네요. 앞으로 며칠 남았으니까, 좀 더 오르겠지만…. 40억은 벌었어야 했는데, 추석연휴도 끼고 해서…. 그래도 올해 목표는 얼추 채울것 같아요. 직원들이 열심히 해줘서…."

'병원의 이런 정보를 다 보여줘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별 다른 표정없이, "우리 병원 사람이면 누구나 다 볼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숨길 것도 없고, 모두 다 공개돼 있다"면서 "직원들과 회사 사정을 함께 공유하고 하면, 오히려 일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그와의 대화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솔직했고, 거침이 없었다. 평택을 비롯해 송탄 등 경기 남부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원 이사장이었지만, 주요 관공서나 기관장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대신 400명이 넘는 병원 직원들의 이름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생일이나 기념일도 직접 챙기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굿모닝 병원. 서울 위주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인력 수급의 어려움 등으로 지방 중견병원들이 쓰러져 가는 상황에서 이곳에선 3년째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다.

밤 근무에 시달려온 간호사 등 직원들의 노동시간은 대폭 줄었다. 병원은 직원을 더 뽑았다. 대신 직원들에겐 각종 문화공연을 비롯해, 세미나 등 교육시간이 크게 늘었다. 일하는 시간은 크게 줄었고, 교육받고,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병원은 어떻게 됐을까?

 철저한 환자중심 서비스와 평생 교육 시스템, 능력있는 인사관리, 투명 경영과 노사간의 신뢰. 굿모닝 병원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의 병원 전경.
철저한 환자중심 서비스와 평생 교육 시스템, 능력있는 인사관리, 투명 경영과 노사간의 신뢰. 굿모닝 병원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의 병원 전경. ⓒ 굿모닝병원 전선미

세계 경영학계가 주목한 모델, 굿모닝 병원의 실험

세계 경영학계의 석학인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교수는 지난 8월 미국의 경제경영전문지인 <비즈니스2.0>에 글을 실었다. '한국 기업 경쟁력의 비밀(Management Secrets of the South Koreans)'이라는 제목이었다. 국내 언론에는 그리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페퍼 교수는 굿모닝 병원의 실험을 주목했다.

그는 "직원을 상대로 간호기술과 외국어교육 등을 늘리고,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직원들의 생산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면서 "직원들의 고객에 대한 태도가 좋아지면서, 병원 수입도 늘고 경영 여건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페퍼 교수는 미국 노동정책이 중요한 점을 잊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어 직원들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뉴패러다임 기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승광 이사장에게 페퍼 교수의 기고문을 소개하자, "부담스럽다"며 쑥스러워 했다. 그는 "직원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할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도 많다"면서 "여전히 고민되는 부분도 있고, 지금보다 근무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병원을 직접 찾았다. 평택역에서 내리면 차로 15분 거리,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평택인터체인지로 나오면 가장 먼저 보게되는 건물이 이곳이다.

레지던트 없는 철저한 환자 중심의 병원

 모든 진료실 입구에는 근무자의 사진과 이름이 내걸려 있다. 각 과마다 걸려있는 게시판에는 매일 병원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정이나 환자 동향, 자료 등이 실려있다.
모든 진료실 입구에는 근무자의 사진과 이름이 내걸려 있다. 각 과마다 걸려있는 게시판에는 매일 병원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정이나 환자 동향, 자료 등이 실려있다. ⓒ 굿모닝병원 전선미
지난 2001년에 새로 지어 만 6년째다. 굿모닝병원은 병상수만 367개(응급실 30개 포함)에 달한다. 직원수는 435명. 병원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반 종합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띈점은 안내데스크가 유독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1층 중앙 로비부터 거의 각층마다 안내데스크가 있었고, 내과, 외과 등에도 별도의 안내 창구가 또 있었다. 다른 병원들이 진료 접수나 상담 등의 창구를 한곳을 몰아두는 것에 비해, 이곳은 각 과마다 마련돼 있었다.

호흡기 내과를 찾은 정성호(64)씨는 "여기가 큰 병원인데도,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 같다"면서 "의사도 편하고, 간호사들도 먼저 와서 도와주고 해서 좋은것 같다"고 말했다.

또 종합병원에 있을법한 레지던트(수련의사)가 없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보다 의사 숫자도 두배정도 많다. 물론 모두 전문의다. 실력있고, 질높은 서비스 제공은 굿모닝 병원의 철학이다.

모든 진료실 입구에는 근무자의 사진과 이름이 내걸려 있었고, 직원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각 과마다 걸려있는 게시판에는 매일 병원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정이나 환자 동향, 자료 등이 실려있다.

이상기 경영관리팀 부장은 "누구나 종합병원을 찾은 사람이라면,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한번쯤 고민을 했을것"이라며 "안내나 상담 창구를 쉽게 찾아서 원하는 정보와 위치를 빨리 편하게 알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굿모닝병원은 지난 2년동안 뉴패러다임을 도입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교육시간은 크게 늘렸다. 고용은 크게 늘었고, 인건비 역시 상승했다.
굿모닝병원은 지난 2년동안 뉴패러다임을 도입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교육시간은 크게 늘렸다. 고용은 크게 늘었고, 인건비 역시 상승했다. ⓒ 굿모닝병원

노동시간 확 줄이고, 교육과 여가 활동 늘리고

이 병원의 실험은 지난 2005년부터다. 2001년이후 새롭게 병원을 지은후, 2~3년동안 환자수도 늘고, 병원 매출도 증가했다. 신축 종합병원이라는 효과가 컸다. 이후 환자수 증가에 따른 간호사 등 내부직원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불만도 커졌고, 병원 매출도 정체하거나 하락세로 돌아섰다. 경영진은 뉴패러다임센터의 도움을 받아, 병원 환경에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주당 5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일반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등 각 부서별로 탄력적이고, 차등적인 근무시간을 만들었다. 4개조가 3교대 형식으로 돌아가며 업무를 보고 있다. 물론 모든 직원은 정규직이다.

노동시간이 줄다보니, 빈 시간을 채울 사람이 필요했다. 2005년 308명이었던 직원수는 435명으로 무려 41%나 늘었다. 인건비도 10%이상 증가했다. 병원 입장에선 비용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크게 강화했다. 병원 특성상 가져야 할 기본적인 교육시간 이외 외국어 교육을 비롯해 각종 문화공연 등도 포함됐다. 1년동안 46시간이었던 교육시간은 120시간 이상 늘었다. 작년말엔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한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에서 삼성SDI를 제치고, 기업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병원 6년차인 서정훈 시설관리팀장은 "다른 직장보다 교육시간과 각종 세미나, 행사 등이 많은 곳"이라며 "직원들도 자신의 전공분야 이외 별도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직원들간 단합이나 분위기도 좋아지면서 만족감도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영과 인사권까지 모든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2년동안 매년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각각 평균 15%와 10%씩 늘었다. 진료수입 역시 평균 20%이상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년동안 매년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각각 평균 15%와 10%씩 늘었다. 진료수입 역시 평균 20%이상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 굿모닝병원
병원의 경영은 어떨까. 일단 생산성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감소 추세였던 환자수가 늘었고, 그만큼 병원 수입도 증가했다. 병원쪽 집계를 보면, 지난 2년 동안 매년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각각 평균 15%와 10%씩 늘었다.

병원 수입 역시 매년 20% 이상씩 증가했다. 2005년 346억원에서 작년엔 42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6월까지 237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 역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증가한 금액이다.

이상기 경영관리팀 부장은 "최근 2년새 환자수와 진료수입이 뚜렷이 증가세를 보였다"면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새로운 근무체제를 도입하고 교육부분을 강화시켜 생산성을 높인 것도 주요한 요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 이곳은 모든 병원 경영을 팀별 책임제로 운영하고 있다. 해당 부서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고, 인사권까지 이들이 행사할수 있도록 했다. 물론 경영상황은 모든 직원들이 볼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대신 병원 이사장은 정기적으로 말단 직원들과 직접 대화를 한다. 여행도 함께 다닌다. 또 병원이 살아 남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도 직원들로부터 직접 받는다. 물론 채택되면 수백만원의 인센티브도 준다.

김상호 기획팀장도 "근무환경 변화 이외 병원 경영이나 인사 등도 모두 공개, 투명하게 운영된 것도 경영진과 직원간의 신뢰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승광 이사장은 "욕심을 버리면 된다"면서 "병원이 살기 위해선 환자들이 계속 찾아올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최신 설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이끌어가는 직원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굿모닝의 새로운 도전과 고민, 대대적인 근무제 변화 시도

이곳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들의 이직율이 높다는 것. 직원 교육에선 국내 최고 수준을 유지한 덕분에 서울 대형 병원들은 이곳 간호사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이사장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오늘도 2명의 괜찮은 간호사가 사표를 냈다"면서 "자신의 발전을 위해 간다고 하니 마냥 잡을수도 없고, 안타깝다"고 아쉬워 했다.

인력을 늘렸지만, 여전히 밤 근무 등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직원들을 위해 새로운 근무제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의 주당 40시간 근무시간을 더 줄이는 방향이다. 이 이사장은 "우선 간호 부서를 대상으로 5조4교대 방식이 됐든간에, 노동시간을 보다 줄여 나가는 방법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향후 병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익모델 찾기에도 골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병원의 투자도 계속된다. 당장 내년 초부터 제2의 굿모닝병원을 짓기 시작한다. 한방병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탓에 중국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병원 한쪽으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중국어 교육 때문이다.

철저한 환자중심 서비스와 평생 교육 시스템, 능력있는 인사관리, 투명 경영과 노사간의 신뢰. 굿모닝 병원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굿모닝병원#뉴패러다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