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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설회 답다. 후보들은 목이 쉬어라 막판 열변을 토했고, 지지자들은 팔이 부러져라 막대 풍선을 두드리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은 없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후보자 서울·경기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지난 2일 대전·충남 합동연설회 이후 파행을 거듭해오다 8일만에 처음으로 열린 연설회이자, 이번 경선의 마지막 연설회다.

 

누적득표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판이 깨지면 안된다"며 세 후보의 단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해찬 후보는 불법·부정 선거 논란으로 얼룩진 경선의 문제점을 들어 정 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번 대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하는, 반칙왕을 가리는 선거가 아니다"며 정 후보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싸잡아 비판한 것.

 

반면 전날(9일) 1차 모바일 투표에서 1위를 한 손학규 후보는 여세를 몰아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정동영] "싸우느라 정상회담 밥상 엎어졌다"

 

지난 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두 후보가 불참한 채 '나홀로' 연설을 한 정동영 후보는 "셋이 함께 다 모이니까 좋지요?"라고 물은 뒤, "대구에서 처음으로 혼자 연설을 했는데 흥도 안나고 신도 안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학규·이해찬 후보 없이는 정동영은 힘이 없다. 마찬가지로 정동영이 없으면 손학규·이해찬 후보도 힘이 없다"며 "셋이 함께 하는 것을 국민이 원하고 있다"고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연단 뒷편에 앉아있던 두 후보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손학규 후보측 지지자들쪽에서 먼저 "정동영은 물러나라"고 외치자, 불길이 일듯 이해찬 후보측 지지자들도 "사퇴하라"는 야유를 쏟아냈다. 봉합은 됐지만 상처까지 아물진 않았던 셈이다.

 

정 후보는 분위기라도 전환하려는 듯 "오늘 서울에서 이렇게 세 후보가 정상적인 연설회를 가질 수 있도록 결단하신 두 후보께 뜨거운 박수와 성원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판을 깨서는 안된다는 걱정과 한나라당 집권을 막아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오늘 경선판을 정상화 시켰다"며 당 지도부의 화해 노력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일주일이 참으로 뼈 아팠다"고 토로했다. "정동영이가 공격당한 것도 그렇지만 당이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성과를 (우리가) 받아먹어야 하는데, 밥상이 엎어졌다. 또 어이없는 헛발질을 해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불발로 결정적인 신뢰에 금이 갔던 이명박 후보를 우리가 지켜준 꼴이 됐다."

 

정 후보는 이어 "열심히 참여를 독려해 낮은 투표율이라는 비아냥을 떨쳐버리고, 상호 비방하지 말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자"고 제안했다. 정 후보는 특히 세 후보가 단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당이 출발한 지 얼마 안돼 당원이 없는 당"이라며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지지자만 모여서 연설회를 갖는 과도기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연설회 장엔 당원만 없었던 게 아니다. 서울·경기 지역 '국민'도 없었다. 각 후보측 지지자 100여명씩 300여명 만이 세 곳으로 나눠 앉았을 뿐, 커다란 행사장 좌석 대부분은 텅 비었다. 서로의 지지자를 향한 세 후보의 '공허한' 외침은 '국민참여경선'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세 후보의 발언에 대한 지지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표출됐다.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솔직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손학규 후보측 지지자들이 "똑같다"고 받아쳤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자 다시 "똑같다"는 반응 터져나왔다. "목표를 위해서는 불법이든, 탈법이든 안 가리고…"라고 말했는데, 이번엔 2-3명의 지지자들이 큰 소리로 "하하하" 웃으며 조소를 보냈다.

 

정 후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전날(9일) 발표된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을 "교육·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종 인종분리 정책"이라고 맹성토했다. 교육혁명을 위한 사회대타협 협의체 구성도 공약했다.

 

[손학규] "깨끗한 손으로 경선 혁명 만들어달라"

 

이날 따라 손학규 후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 후보는 전날 휴대전화 투표에서 1위 한 얘기를 꺼냈다. 그동안 진행된 8개 지역 순회 경선에서 단 한차례도 1위를 하지 못했던 그였다.

 

"국민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있겠나. 관심이라면 애들 취직 걱정, 먹고 살 걱정, 여가 시간에 친구들과 놀 생각… 그게 일상 관심사다. 게다가 대통합신당 경선에서 무슨 박스떼기니, 차떼기니 하지 않았나. 국민들이 경선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것을 탓할 게 아니다. 그런데 그 국민들이 이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의 손으로 깨끗한 정치를 만들어달라는 우리의 호소가 먹혀들기 시작했다."

 

손 후보는 "휴대전화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신청자가 폭주해 당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됐다"며 "국민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조직동원 선거로부터 신당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기된 표정의 손 후보는 "어제 실시된 휴대폰 선거 1차 투표 결과 투표율이 70를 넘었고, 저 손학규를 고맙게도 1등으로 만들어주셨다"며 "깨끗한 손, 깨끗한 정치를 손들어 주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역전의 드라마가, 국민 감동의 드라마가 드디어 시작됐다. 지금 깨끗한 손, 국민의 손이 선거혁명, 경선혁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조직, 동원, 불법, 타락, 부정 선거를 이겨내고 있다."

 

1차 휴대전화 투표에서 손 후보와 2위 정 후보의 표 차는 600여표. 누적득표에서 1만표 이상 밀리고 있는 상황으로 본다면 미미한 득표다. 그러나 손 후보측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1위를 하고 있는 정 후보를 이겼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향후 경선에 '힘'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손 후보가 얘기하는 '경선 혁명'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휴대전화 투표에서 자신감을 얻은 손 후보도 정 후보와 표현만 달리했을 뿐 단합을 얘기했다. "같이 봉합해서 함께 나가자"는 것이다. 스스로를 "과거가 있는 사람, 상처가 있는 사람, 외로운 사람"이라며 "이제 과거 탓 하지 말고, 옛날 얘기 하지 말자. 옛날 음식에서 냄새난다고 타박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경선 이후 한나라당 탈당 전력 등 정체성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이해찬 후보 어느 분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도 손학규는 대선 승리를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며 "선대위원장을 하라면 하고, 수행원을 하라면 하고, 운전을 하라면 운전대를 잡겠다"고도 했다. 또 경선 이후 민주당 후보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도 후보단일화에 나서는 데 어떤 기득권도 내세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자신감의 극대화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해찬] "수단·방법 안 가리는 사람은 반칙왕 이명박 못 이겨"

 

'버럭 해찬', '구글 해찬'으로 통하던 이해찬 후보는 이날 '비장 해찬' 모드였다. "제가 마지막으로 연설함으로써 우리는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는 경선 일정을 다 마치게 된다. 끝까지 함께 하자"고는 했지만, 얼마전까지 경선 판을 깰 수도 있는 '폭탄의 뇌관'을 쥐고 있던 그였다.

 

이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로 시작해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 부시 대통령 면담설 해프닝 등에 대한 비판으로 서두를 열었다.

 

그는 또 "이해찬은 위선적인 노태우 시대를 물치쳤고, 온갖 위압을 부리며 광주민중을 학살한 살인마 전두환도 쫒아냈고, 5·16 군사쿠데타로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 세력을 다 쫓아냈다"며 "이제 우리가 쫓아내야 할 세력은 위증을 교사한 사람"이라고 말해, 자연스럽게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다.

 

"선거법을 위반하고, 땅 투기하고 위증을 하도록 교사하고, 범인을 은폐시킨 사람을 쫓아내는 일이 민주화 세력의 마지막 대업"이라고도 했다.

 

그러더니 경선 얘기를 꺼내들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런 경선을 놓고 우리는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말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가 하고픈 말은 결국 이것이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고 우리가 도덕적이지 않고 어떻게 이명박 후보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사람을 이길 수 있나."

 

특히 이 후보는 "명의를 도용하고 범인을 도피시키는 것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디지털 정보 사회에 살면서 개인의 정보가 누구한테 악용당하는 것은 개인의 주권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며 정동영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후보는 이어 "지금 우리는 도덕적 불감증에 우리 스스로 걸려 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보로는 반칙왕 이명박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끝으로 "우리는 진실이 언제나 패배하는 역사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반칙을 해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나쁜 생각이 존재한다"며 "반드시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여갈 수록 관람석에 앉아있던 정동영 후보측 지지자들의 야유도 거세졌다. 그들은 이 후보를 향해 "너나 잘해", "내려와"라고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들고있던 막대 풍선으로 'X'자를 만들어 항변했다.

 

그렇게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은 막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신당은 오는 14일 서울·경기 지역을 포함해 아직 투표를 하지 못한 8개 지역에 대해 '원샷 경선'을 실시한다. 이어 15일 모바일 투표 3차분과 여론조사, 그리고 8개 지역 개표 결과를 한꺼번에 공개해 최종 대통령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태그:#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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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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