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겉그림 찰스Y.거킨의 〈살아 있는 인간문서〉
책 겉그림찰스Y.거킨의 〈살아 있는 인간문서〉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도구다. 인간의 내면과 바깥 사물을 잇는 관계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다. 그 창문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드나들며,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 창문이 때로는 옥상에, 학교 교실에, 감옥에, 현관문에, 아파트 베란다에 존재한다. 그만큼 다양하게 놓인 창문의 위치에 따라 의식과 취향이 여러 갈래로 나타난다.

 

이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우들과 목사 사이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목사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교우들과 상담을 하게 돼 있다. 교우들이 지닌 갈등과 문제점을 안고 목사와 교우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그렇지만 어떤 상담이든 간에 목사와 교우 사이에는 나름대로의 창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목사는 목사대로 성경과 신학의 입장에서, 교우는 교우대로 지난날의 삶과 의식에서 지닌 입장 차가 그것이다.

 

찰스 Y. 거킨의 <살아 있는 인간문서>는 그 창문을 ‘해석학적 지평의 언어’로 열어가길 권유하고 있다. 이는 목사든 교우든 혹은 다른 상담자든 내담자든 그들 두 사람이 지닌 인식의 창문을 하나로 볼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거기에 대한 필수 과제로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그곳에 해석학적 관계 인식을 가져오는 언어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그만큼 언어가 서로의 관계를 푸는 열쇠요, 갈등을 봉합하는 실마리요, 변화를 꾀하는 돌파구인 것이다.

 

“목회상담이란 상담자와 내담자가 모두 참여하여 두 사람의 언어의 세계를 넘나들며 교류하는 대화의 해석학적 과정이다.”(32쪽)

 

특별히 저자가 ‘살아 있는 인간문서’라는 말을 쓴 것은 한 개인의 삶의 여정을 빗댄 것으로서, 그가 지닌 현재의 갈등과 문제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마치 유대 기독교 신앙전통의 토대를 밝혀주는 역사적 텍스트처럼, 그 개인의 여정 속에는 깊이 있는 나름대로의 창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 문서를 해석할 때에는 역사적 텍스트처럼 어떤 틀이나 범주처럼 치부할 수 없는 이해와 깊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인간 문서의 창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현재 다양한 기법들이 놓여 있다. 물론 전통적인 목사들은 무조건적으로 성경 속에서 답을 찾거나 기도하면 된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현대 목사들은 프로이트의 욕동이론이라든지, 위니캇과 하인츠 코헛 그리고 오토 컨버그 같은 대상관계 이론들을 수용하며 접목시키길 원한다. 그만큼 끊임없는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있으며, 그 창문도 가지각색임을 드러내는 바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다머의 이야기를 빌려와, 과연 상담자와 내담자 두 사람 사이에 진정으로 새로운 이해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때가 언제인지 되묻는다. 그것은 바로 두 사람 사이에 상호 의견을 주고받는 지평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통합될 때이고, 또 다른 상호작용의 차원으로 그 대화의 지평이 전개될 때라 밝히고 있다.

 

이는 목사와 교우 사이도 다르지 않다. 그만큼 두 사람이 융합될 수 있는 언어의 창문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목사는 교우로 하여금 무조건 지시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 교우 스스로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의존관계에 놓여 있음을 인식시켜주고, 궁극적으로는 만물의 변형까지 포함할 수 있는 생태적 관계성까지 열어줘야 한다. 그것도 목사의 강요가 아닌 교우 스스로의 결단으로 나아가게 할 바이다. 여기에는 상담에 있어서 조금은 긴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의 상담 사례 중 수잔에 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는데, 그 어머니는 자신과는 어떤 접촉도 하길 꺼려했다. 피아노 레슨 시간도 그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에 어떤 핑계거리도 없이 꾹꾹 참아가며 했다. 더욱이 그 어머니가 루터교 신자라는 이유로 가톨릭 신자와 사귀던 자신의 남자친구와도 헤어져야 했다. 그 까닭에 결혼하고서도 예전의 그 남자친구와 은밀히 만나고 있고,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서도 소홀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수잔이 자기 및 그녀의 대상관계들을 새롭게 형성할 가능성이 배태되는 중간공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신학자로서 내가 바라고 희망하는 것들은 그러한 변화된 공간 속에서 성령이 활동하고 또한 그 공간 속에서 수잔이 종말론적인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을 이해하는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173쪽)

 

이는 목사들이 지녀야 할 해석학적 지평의 창문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부분이다. 저자는 그것을 위니캇의 대상관계 이론으로 접근하여 중간공간을 만들도록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의 심리적 기법을 하나의 창문으로 접목시킨다 하더라도 목사로서 지녀야 할 바람은 그 창문 속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은총이요,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아무렇게나 엉켜 사는 게 아니라 바른 목적을 지닌 새로운 삶을 살도록 주문하는 것이라 한다.

 

물론 그녀가 그런 방안을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로 여기며 수용했는지, 어떻게 그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는지는 그 결말이 나와 있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내담자가 바라는 필요나 목적에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또는 목사가 그녀의 한계를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써 위의 상황에 대처하게 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런 관점 때문에 해석학적 창문의 지평이 모든 시야에 열려 있어서 좋은 것 같지만 실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단점일 수 있다. 더욱이 뚜렷한 결과나 새로운 변화를 양산해 내지 못한다는 것도 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해석학적 창문의 지평을 여는 시각을 통해 목사가 보다 심화된 의미를 지닌 통합된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두드러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인간문서 - 해석학적 목회상담학

찰스 V. 거킨 지음, 안석모 옮김, 한국심리치료연구소(1998)


#살아 있는 인간문서#찰스Y.거킨#해석학적 지평#목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