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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에 나는 시린 발을 내딛으며 눈 속을 걷고 있었다. 내가 눈을 밟는 소리 외에는 주변에 아무 소리도 없고, 먼 민가에서 나를 향해 가끔 짖어대는 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폭포를 향해 걸어갔지만, 폭포의 물줄기는 말라 있었다. 절벽 아래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강추위에 얼어버린 것이다. 스위스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의 수직 절벽에 걸려 있는 슈타우프바흐(Staubbach) 폭포는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라우터브룬넨에 자리하고 있다. 라우터브룬넨이라는 이름은 마을에 크고 작은 10여개의 폭포가 자리하고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울려 퍼지는 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폭포 중에서 가장 이름 있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알프스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는 늦봄에 폭포의 모습을 되찾고,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는 300m 폭포의 장관을 느낄 수 있다.

 

 

라우터브룬넨 역에 내리자마자 이 폭포의 장관을 먼발치에서 만날 수 있다. 폭포가 워낙 높은 절벽 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라우터브룬넨 역에서 내려 곧장 폭포를 찾아갔다. 예기치 못한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여름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날씨에 둔감한 나도 꽤 따갑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아내는 인터라켄 팸플릿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내 옆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도로변으로 이어진 상가와 그 뒤편의 마을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날씨는 꽤 덥지만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불편스런 날씨를 잊게 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알프스 정도 높이의 산은 많이 있지만, 왜 유독 이곳의 정경이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라우터브룬넨 마을 주변에는 크고 작은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폭포를 이루고, 그 폭포수들은 수직 절벽 아래쪽으로 시원스럽게 떨어지면서 라우터브룬넨의 명성을 높이고 있었다. 라우터브룬넨의 폭포 중 낙차가 300m나 되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높은 낙차로 인하여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켜주는 폭포이다.

 

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낙차를 가진 이 폭포를 향해 걸음을 걷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만년설 쌓인 융프라우 봉우리를 바라보며 아내, 딸과 손을 잡고 걸었다. 몸에 좋다는 걷기 운동을 하기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환상적인 경관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시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찾은 여름, 이 폭포는 거대한 바위 위로 하얀 물보라를 줄기차게 뿜어내고 있었다. 폭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폭포는 더 많은 물줄기를 땅으로 내리꽂고 있었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참으로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폭포 밑의 작은 언덕에는 폭포를 구경하러 올라가는 등산로가 가늘게 길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닿은 폭포수가 작은 줄기를 만드는 곳 앞의 바위에 가족과 함께 걸터앉았다. 라우터브룬넨 역에서부터 그리 많이 걸은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폭포를 감상하면서 다리를 쉬어갈 만한 곳이었다.

 

우리 가족 옆으로 남자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여행하는 스위스의 젊은 부부가 와서 앉았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깔끔한 원색의 반팔 상의를 입은 젊은 부부의 모습이 싱그럽다. 나는 윤곽이 뚜렷하게 잘 생긴 그들의 외모가 선 굵은 알프스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젊은 부부의 남편이 우리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는 우리 사진을 찍으면서 한 장은 배경의 폭포가 잘 나오도록 멀리 떨어져서 찍어주었고, 다른 한 장은 우리 가족이 잘 나오도록 상반신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역시 여행지에서 사진촬영 요청에 가장 친절하게 응하는 사람들은 젊은 남자라는 내 그동안의 여행경험이 여기에서도 입증되고 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젊은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은 그들의 카메라가 없다고 했다. 유모차를 끌고 이 명산에 온 젊은 부부에게 카메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 온 나의 선입관이었다. 그들이 이 폭포 앞에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은 꼭 사진에 남기지 않고도 절경을 감상할 줄 아는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울타리가 쳐진 언덕 위의 산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있었다. 초록빛 싱그러운 언덕의 경사 너머로 하얀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언덕길은 마치 영화 속에서 천상의 나라로 향하는 길 같았다.

 

언덕 위를 다 올라서자 절벽에 뚫린 터널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그 터널은 폭포 뒤편으로 가서 폭포의 물줄기를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터널이었다. 나는 절벽 속으로 이어진 터널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폭포 전망대에 올라선 사람들은 물세례를 받고 있었다. 철조망으로 막힌 전망대의 바닥은 온통 폭포수로 젖어 있었다. 이 물이 겨울에는 빙하 속에 얼어 있었을 것이다. 빙하가 녹는 봄에는 이 물줄기가 차게 느껴졌을 테지만, 한여름에는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없었다. 어른 가슴 높이의 철조망을 잡고 폭포 밖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시원한 희열에 차 있었다.

 

폭포의 물줄기는 마치 분수대의 물줄기 같았다. 분수대와 다른 점은 물안개 속의 물줄기는 하늘을 향하지 않고 땅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줄기처럼, 빙하가 녹은 폭포수는 투명하고 뽀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높기는 하나 수량이 많지 않은 이 폭포는 어디에도 없는 특이한 폭포의 모양을 하고 있다. 19세기 영국 낭만파 시인인 바이런(Byron)은 이 날씬한 폭포를 보고 ‘창백한 여윈 말의 폭포’라고 했다. 이곳에 등산 철도가 없을 당시에 이곳을 걸어 올라왔을 바이런은 지금의 여행자들보다 폭포의 모습이 더 가슴 깊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 폭포의 모습은 어찌 보면 창백하기도 하고 여위어 있기도 하다.

 

장대한 이 폭포는 요란스럽지 않았다. 날씨는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맑고 쾌청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세계의 경치가 영화 속에서처럼 환상적으로 펼쳐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내와 딸은 쏟아지는 빙하수를 보며 발길을 떼는 것을 아쉬워했다. 다시 알프스 융프라우를 올라가는 기차 안, 기차의 오른편으로 슈타우프바흐 폭포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위스, #라우터브룬넨, #슈타우프바흐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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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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