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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골목길, 자전거와 사람들이 쉼 없이 드나든다
 젊은 골목길, 자전거와 사람들이 쉼 없이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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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밤
 거문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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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녹동항, 맨눈으로 봐도 바닷속에 있는 학꽁치가 보였다. 낚시 하던 아저씨가 아이에게 학꽁치를 주었다.
 전남 고흥 녹동항, 맨눈으로 봐도 바닷속에 있는 학꽁치가 보였다. 낚시 하던 아저씨가 아이에게 학꽁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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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학꽁치의 머리와 내장을 떼내고 즉석에서 먹는 야성!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학꽁치의 머리와 내장을 떼내고 즉석에서 먹는 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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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고요하지 않았다

전남 고흥, 녹동 항에서 어슬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출발 시간이 남아있었다. 포구에서 학꽁치 낚시하는 사람을 구경하다가 맨 눈으로 바다 속을 들여다봤더니 진짜로 보였다. 저만치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 봤더니, 주인도 객도 섞여서 학꽁치 내장을 떼내고, 머리를 잘라내서 잽싸게 초장을 찍어 먹고 있었다. 방금까지 살아있던 것을 먹는 대단한 야성들이었다. 

거문도로 가는 2시간 동안 바다는 고요하지 않았다. 파도는 2층 갑판까지 들이쳤다. 직업군인이어서 울릉도에서도 5년 근무하고, 이라크에 다녀온 사람도 배멀미를 하는데 우리 아이는 배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멀미로 축 처진 아이를 다독이는 엄마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꾸 사라졌다가 튀어나오는 아이를 째려보았다.

기어이 아이를 내 옆으로 끌어 앉히지 않은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희복 선생님과 함께 왔다. 지난 7년 동안 선생님을 좋아해서 나라 곳곳을 따라다녔다. 선생님이 어디 가자고 하면, 누구누구 가느냐고 묻지 않고, 무조건 나섰다. 그 덕분에 선생님의 아내와 대학교 2학년인 딸 주희, 직장 동료와 이웃, 선생님의 학교 때 친구들까지 총 망라된 이 여행에 끼게 됐다.

이희복 선생님네 식구들. 이들이 있어 먼 여행도 가능했고, 즐거웠다.
 이희복 선생님네 식구들. 이들이 있어 먼 여행도 가능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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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복 선생님을 따라나선 내 마음은 단순하고 가뿐한데 우리 아이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아이는 일기장에다 새벽에 일어나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2시간 동안 배를 타고, 다른 배로 옮겨서 다시 2시간을 탔다고,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고 써놓았다. 내년이면 10대가 되는 아이는 벌써부터 저 너머,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그 날 새벽, 아이는 5시 30분에 일어났다. 원래 토요일은 30분 동안 컴퓨터 게임을 하는 날이다. 집밖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해서 지나가버린, '토요일 게임 30분'은 저축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그러고나서 배낭에 자기 짐을 꾸렸다. <서유기>책 한 권, 유희왕 카드, 속옷, 내복, 점퍼를 집어넣는데 불쑥, 큰 아이로 느껴졌다. 

그 날 낮, 나는 전남 고흥 나로도 해수욕장 화장실에 있었다.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서 아이 몸을 씻겼다. 몇 시간 전, 군산 집에서 아이가 다 컸다고 한 생각은 착각이었나 보다. 아이는 바다를 보자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갈 곳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온통 바다뿐이다. 아이는 또 바다에 달겨들 것인가. 나는 젖은 옷 때문에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투덜거렸다.

"완소제굴(아들의 애칭) 지금이 한여름이야? 아무 준비도 없이 막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나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걸 어떻게 해?"

겨울이 닥치기 전까지 거문도에서는 갈치잡이가 한창이다.
 겨울이 닥치기 전까지 거문도에서는 갈치잡이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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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귀여운 '뻥'이 있는 백도

배가 거문도에 닿았을 때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비가 올 듯, 하늘이 낮게 가라앉았지만 백도로 가는 유람선으로 갈아탔다. 배에서 안내하는 분은 처자식과 떨어져, 처자식을 위해서 일하고 있으니, 여행객들은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옛날, 날씨가 궂거나 바다에서 길을 잃은 거문도 어부들은 백도에서 날아오는 풍란의 향내로 갈 길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처자식과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유람선은 속도를 줄여 천천히 백도 주위를 돌았다. 파도는 갑판까지 올라와서 옷이 젖는 사람도 생겼다. 백도의 바위들은 사람처럼 각자 생긴 모습도 다르고, 저마다 사연과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 유럽의 거대한 성 같은 바위도 있고, 작아도 '쫄지' 않고 배짱으로 버티고 서 있는 바위도 있었다. 바다에 솟아 있는 바위가 100개라서 백도(百島)였는데 세어보니까 99개여서 글자 획을 하나 떼어내 백도(白島)가 되었다는, 옛사람들의 귀여운 '뻥'이 있었다.

막막한 바다에 박힌 채 서 있는 바위들을 바라봐도 그 속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1년씩 끊어서 세월을 느낄 때, 그들은 1만년을 단위로 시간을 잴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형벌 같았다. 백도의 바위들도 만우절 장난 같이, 서로 자리도 바꿔 보고, 틈틈이 말 타기나 잠수도 했으면 좋겠다. 백도에 기대 사는 풍란이나 눈향나무, 흑비둘기들과 서로 미워할 정도의 친한 사이라면, 바위에는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이 몇 가지 있어도 괜찮겠다.

 바다에 깊이 박힌 채 서 있는 백도의 바위섬.
 바다에 깊이 박힌 채 서 있는 백도의 바위섬.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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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학생 시절,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른 건 어마어마했다.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사는 건 위험했다. 사람이 바위처럼 둔하게 견디면 다치고 만다. 나는 여행 오기 일주일 전에 자궁에 근종이 생겨서 간단한 수술을 했다. 벌써 몇 번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뚜껑이 열린다'는 경지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몸에도 촛대처럼 심지가 있어서 자꾸 타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게 쌓이면, 하혈을 했다.

백도와 멀어지면서, 살아가는 일이 좀더 얕고 가벼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풍란 향은 모르지만 거창하게도 인생의 방향 감각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거문도로 돌아오는 유람선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다 마시면 또 새 것을 따서 마실 거면서도, 류용희 선생님, 이화재 언니와 나는, 캔 하나로 나눠 마셨다. 오랜 치과 치료로 이제는 기억에서도 지워진 맥주맛이 캬! 되살아났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능선을 걷다가 등대를 보게 된 순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능선을 걷다가 등대를 보게 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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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밥집에서 사람들은 저녁밥상에 오른 갈치 회를 보고 좋아했다. 갈치는 야행성이라서 보름달이 뜨면 잡히지 않는다. 그 날은 추석이 지난 나흘 뒤, 운 좋게도 전날 저녁에 나간 배들이 갈치를 잡아왔다. 갈치는 제주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에는 거문도 근처 바다에서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며 월동 준비를 한다. 그래서 몸이 튼실한 거문도 갈치를, 11월까지는 최고로 친다고 했다.

갈치 회에 술을 곁들이면서 밥 먹는 시간은 길어졌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밥집은 경사진 골목길로 이어져 있었다. 골목길 한편에는 자전거가 있고, 후다닥 뛰는 아이들이 있고, 섬사람들은 가로등 불빛 아래 모여 있었다. 내가 아는, 기울기가 있는 골목길은 군산의 콩나물 고개 하나다.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처럼 남았던 집들이 쓸려나간 자리에는 도로가 들어섰다. 부디 거문도의 골목길은 들고나는 사람이 많아서 되도록 천천히 늙기를….

아이가 자라 등대 불빛 기억했으면

동양 최대의 등대처럼 반짝반짝 존재감이 있는 주희.
 동양 최대의 등대처럼 반짝반짝 존재감이 있는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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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거문도는 하나짜리 섬이 아니다. 동도, 서도, 고도가 있다. 고도는 가장 작지만 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서 행정기관들이 있다. 밥집과 여관도 있다. 우리는 고도에서 자고 일어나서 다리를 건너 서도로 갔다.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등대를 보기 위해 산에 올랐다. 능선에서 잠깐씩 쉴 때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는데 감탄이 나왔다.

새벽의 어둠은 좋다. 습자지를 한 장씩 걷어내듯, 어둠에도 결이 있는 게 보인다. 겨우 내 앞의 세 걸음 정도만 밝힐 수 있는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으면서 저 멀리 고른 간격으로 깜빡거리는 빛을 보았다. 등대였다. 종교가 따로 없지만 그럴 때는 겸손해진다. 이 세상은 어떤 거대한 힘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어서 우리를 살피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날은 완전히 밝았고, 불 꺼진 등대가 가깝게 보였다. 서도의 등대는 1905년에 세워졌다. 우리는 내년 2월의 절정을 준비하는 동백나무 군락을 지나서 동양 최대의 등대 아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조붓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백도도 보이고, 한라산도 보인다는데 그런 것은 안 봐도 그만이었다. 다만, 우리 아이가 자라 '등대' 노래를 배울 때에, 능선을 넘으며 본, 어두운 바다 위로 고르게 반짝이던 등대 빛이,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9월 29일과 30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거문도 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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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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