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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의 절집은 크게 불갑산으로 불리는 원형의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주봉인 연실봉(516m)을 정점으로 북쪽에는 장군봉, 법성봉, 노적봉이, 남쪽에는 용천봉, 도솔봉, 나팔봉이 자리 잡고 있다. 서남쪽으로 들어가 동쪽으로 길게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서쪽에 불갑사가 위치한다.


불갑사 경내에서는 두어 개 문(일주문과 해탈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야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사천왕으로부터 마지막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양쪽으로 각각 두 분의 사천왕이 눈을 크게 뜨고 들어가는 사람을 감시한다. 이들은 각각 비파(동방 지국천왕), 구슬과 뱀(서방  광목천왕), 칼(남방 증장천왕), 창과 탑(북방 다문천왕)을 들고 있다.

 


이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1870년 전라북도 무장현 소요산에 있던 연기사(烟起寺)가 폐사될 때 설보(雪寶)스님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건물에 비해 사천왕상이 지나치게 크다. 사천왕상은 목재의 재질이나 양식으로 보아 17-18세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상은 현재 전남 유형문화재 159호이다.


사천왕상을 보고 우리는 만세루로 간다. 만세루는 대개 절의 강당 역할을 하는 곳으로 스님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회의도 하는 곳이다. 이곳 불갑사 만세루는 기둥을 제외한 벽체 부분이 빗살문으로 만들어져 단순하면서도 정연한 느낌을 준다. 만세루 툇마루에 앉으니 마당에 괘불걸이(괘불대)가 보이고 그 앞으로 대웅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괘불대에는 ‘강희 49 경인(康熙四十九庚寅)’이라는 명문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1710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괘불대 북쪽으로는 스님들의 숙소로 쓰일 것 같은 일광당이 보인다. 일광당 문 아래에는 하얀 고무신이 단정하게 세워져 있다. 속세를 떠난 스님의 단아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대웅전은 불갑사의 중심 법당으로 보물 제830호이다. 건물의 암막새에 ‘건륭 20년갑신(乾隆二十年甲申)’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46년(영조 40년)에 지어졌거나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의 건물이 된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사찰 사료(朝鮮寺刹 史料)>를 통해 1909년 최종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건물의 외양에서 우리는 날렵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살짝 치켜 올린 처마며, 옆에서 보는 팔작지붕이며, 건물 정면의 삼분합문이 정말 잘 어울린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꽃살문이다. 건물 중앙의 꽃살문에는 연꽃과 국화꽃이 조각되어 있다. 양쪽의 두 분합문은 가운데 보리수 문양을 중심으로 양쪽에 빗살문이 있는 혼합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의 용마루 위 한 가운데에는 이상한 형태의 아주 작은 탑이 만들어져 있다. 소위 보탑(寶塔)이라고 하는 것으로 탑받침 부분이 도깨비 모양으로 되어 있다. 도깨비는 상징적인 도상으로 귀신을 쫒는 역할도 하고 건물을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 또 미학적으로도 단순한 용마루 선에 어떤 강조점을 두어 시선을 끌어 모으는 역할도 한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를 맡은 전미경 해설사가 대웅전에 얽힌 두 가지 동물, 까치와 쥐 이야기를 해 준다. 절집 그림이나 조각에서 코끼리와 용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까치와 쥐는 별로 보지를 못했다. 불갑사 대웅전 안 벽화에는 졸고 있는 까치가 그려져 있다. 이 까치는 벽화를 그리던 화공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화공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한 사람이 안을 들여다보아서 화공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까치로 변했다나 뭐라나.


또 하나 대웅전 안 불단 기둥을 보면 전면 양쪽 기둥에 흰 쥐와 검은 쥐가 한 마리씩 붙어있다. 이중 흰 쥐는 낮을 상징하고 검은 쥐는 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 두 마리 쥐는 세월을 뜻하며, 우리 인간에게 인생무상의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 더 수긍이 간다.

 


대웅전 불단에는 목조 삼세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불이 오른쪽에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대웅전의 주존불로 세 부처님 가운데 가장 크다. 양쪽의 두 부처님은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에 비해 크기가 조금 작고 옷이 양어깨를 덮고 있다. 수인을 제외하면 세 부처님은 전체적으로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따르면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 도우, 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이 만들었다.


불갑사 대웅전은 법당의 좌향과 부처님의 앉은 방향이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양식을 우리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볼 수 있다. 수미단(須彌壇)을 서쪽에 두고 본존불이 동쪽을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불갑사 대웅전은 서향을 하고 있고, 이곳에 모셔진 부처님들은 남향을 하고 있다. 건물은 서쪽을 향하고 부처님은 남쪽을 향하는 서좌남향의 배치 양식으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대웅전 옆에는 뭔가 이상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조각이 정교하지도 않고 비례와 균형도 맞지 않는 귀부 위에 작은 비석이 얹혀 있다. 그리고 비석의 절반 정도는 시멘트로 보완되어 있다. 비석의 위에는 각진국사라는 글자가 분명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이게 각진국사비이다. 불갑사를 삼창한 그 각진국사가 맞다. 그런데 이 비석이 왜 이렇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진본인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훼손 정도가 심해 내용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석의 아랫부분에 그래도 글자가 좀 보여 들여다보았으나 어떤 글자인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진위 여부는 <동문선>에 기록된 ‘각진국사비문’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사진의 글자와 비문 기록을 비교해 보니 ‘而又師之’라는 글자가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이 비석이 각진국사비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 주지 스님은 불갑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불사에 한창이다. 대웅전 뒤의 향원정을 헐어 새로운 법당을 짓고 있으며, 대웅전 왼쪽 앞의 명부전도 헐어서 청풍각 쪽으로의 전망을 좋게 했다. 그리고 만세루와 사천왕문 옆에 있던 범종각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바깥으로 유물전시관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불갑사를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보여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각진국사비도 좀 제자리를 찾아 불갑사 중흥조에 걸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불사의 진행을 보면서 불갑사 주지스님의 안목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주지들이 건물만 자꾸 지어 절을 점점 답답하게 만드는데, 이곳 주지 스님은 공간을 넓히면서 불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스님은 상당히 해학이 있는 분 같다. 대웅전 왼쪽 뒤 언덕에 굴뚝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사람 형상에 기와 지붕을 얹었으며 그 위는 탑의 상륜부 형식으로 되어있다. 점심공양을 위해 불을 때니 굴뚝인 사람의 입에서 연기가 나온다. 천상 사람이 담배피우는 모습이다. 절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다니, 불갑사 주지스님은 정말 멋쟁이다.

덧붙이는 글 | 전남 영광군 답사 두번째 이야기 불갑사편이다. 당우와 인물을 통해 불갑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었다.


태그:#사천왕상, #만세루, #대웅전, #목조 삼세불좌상, #일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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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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