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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산 가는 길에 벼가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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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달 30일 오후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와 함께 경상남도 의령군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10여년 전부터 나와 알고 지내는 사이로 서각을 하는 윤영수 선생님의 집도 구경할 겸 산길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는 의령 한우산(764m,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도 한번 가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윤영수 선생님이 근무하는 마산여고 앞에서 오후 1시 20분에 만나서 함께 출발했다.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 위치한 그 선생님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2시께. 나지막한 돌담이 정겨운 예쁜 집이었다. 대문이 없는 그 집 마당은 썩 넓은 편은 아니지만 절로 피어난 봉선화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나무도 있었다.

 
▲ 서각을 하는 윤영수 선생님 집. 돌담이 참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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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무화과를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은 뒤 우리는 곧장 한우산을 향했다. 한우산(寒雨山)은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하기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와 같다 하여 예전에는 찰비산이라 불렀다 한다.

철쭉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며 예쁘게 피는 한우산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그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더욱이 이광모 감독이 만든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마지막 장면이 그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 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이 묻어나는 그 풍요로운 경치로 내 마음밭도 넉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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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으로 가는 길에 벼가 여물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이 묻어나는 그 풍요로운 경치로 내 마음 밭도 넉넉해졌다. 문득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세상이 부쩍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져 가는 듯해서 아쉽다.

 
▲ 의령 한우산 드라이브 코스.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이 촬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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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벽계교를 건너가자 산굽이를 돌아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이 정상 바로 아래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차로 정상 가까이에 오를 수 있도록 길이 닦인 한우산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많이 알려졌다. 그날 우리도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서 드라이브 코스 따라 차로 이동을 했지만,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과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 가을 하늘에 무선조종 글라이더를 신나게 날리는 멋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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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우산에서 가을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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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굴산(897m)이 바라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고 10분 남짓 올라가니 한우산 정상이었다. 군데군데 억새도 보이고 가을꽃들도 피어 있었다. 마침 진주에서 왔다는 무선조종 글라이더 동호인들이 거기에 있었다. 가을 하늘에 글라이더를 신나게 날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새처럼 하늘을 맘껏 날아 봤으면 하는 생각에 젖었다.

우리는 한우산에서 내려와 윤영수 선생님의 서각 작품 두 점이 걸려 있는 의령예술촌(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에도 들렀다. 한 점은 나무 그대로 살리고 또 한 점은 나무에 채색을 했다. 더욱이 의령예술촌을 오가는 길에 벼와 어우러져 한들한들 피어 있는 코스모스꽃들이 너무 예뻐 우리는 가을 풍경에 푹 빠졌다.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휴대 전화에도 담고 사진도 찍었다.

 
▲ 의령예술촌에 걸려 있는 윤영수 선생님의 서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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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 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 박찬의 '사람'

오후 5시 50분께 되어서야 우리는 윤영수 선생님 집에 다시 돌아왔다. 밥을 짓고, 부추를 다듬어 겉절이를 하고, 추석 때 만들어 둔 반찬을 데워 맛있는 저녁을 했다. 그리고 농약을 안 친 자연산 감을 깎아 먹고 따끈한 커피도 마시며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았다.

 
▲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의령예술촌으로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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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의령구름다리(의령군 의령읍 서동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화려한 조명을 입은 구름다리가 캄캄한 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마치 다리에 작은 별들이 무수히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해가 뜰 무렵 구름다리 주탑에서 남강의 정암진 솥바위 쪽을 바라보고 간절히 빌면 부자가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정암진은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는 가마솥처럼 생긴 솥바위가 있는데, 그 솥바위를 중심으로 하여 20리(8km) 거리 내에서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은 의령군 정곡면에서, 효성그룹 고 조홍제 회장은 함안군 군북면에서, 그리고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이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나 그 전설이 딱 들어맞다고 무릎을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다.

 
▲ 스스로 '풍류의 장'이라 이름 붙인 그곳에서 피리를 부는 한기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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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디에선가 피리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다리 밑에 한 남자가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우리는 구름다리에서 내려가 그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자신의 이름을 한기철(36)이라고 소개한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대학생 때부터 취미로 피리를 불어왔다고 한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피리를 불고 싶을 때면 스스로 '풍류의 장'이라 이름을 붙인 그곳을 찾는다는 그는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 캄캄한 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의령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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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를 채우면/ 하나가 모자라는/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저를 그대로/ 사랑해 주소서'라고 쓴 윤영수 선생님의 기도문이 자꾸 떠올랐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신의 어설픈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진솔한 친구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한우산,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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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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