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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이 1년여만에 제모습을 찾고 일반에 공개됐다.
▲ 5일 수덕여관 옥호를 달고 일반에 공개된 수덕여관 수덕여관이 1년여만에 제모습을 찾고 일반에 공개됐다.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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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이 다시 대문을 열었다.

송진냄새가 나는 새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고암 이응로 화백이 노란 국화꽃 사이로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활짝 웃고 있는 고암의 큰 사진이 대문 걸려 있다).

5일, 1년여만에 복원되어  문을 열고 일반에 공개된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이 1944년 사들여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15년 동안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가 떠난 후엔 부인 박귀희(2001년 사망)씨가 식당과 여관을 해 왔다.

당초 수덕사와 충남도는 이 집 주변 바위 등에 이응로 화백이 새긴 글씨 등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그 집을 그대로 고암 기념관으로 만들어 그의 예술혼을 기리려 했으나 집이 너무 낡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지었다.

수덕사는 지난해 1월, 소유권을 갖고 있는 이 화백의 조카로부터 수덕여관을 사들였다. 이후 충남도가 4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부터 복원공사에 나섰다. 10개월만인 지난 8월 24일 준공돼 내부시설과 주변 정리 등을 거쳐 이날 일반에 공개됐다.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수덕여관은 부엌이 딸린 내실은 마루와 ‘고암이 쓰시던 방’이란 팻말이 달린 방으로 이뤄져있다. '고암이 쓰시던 방'은 고암이 쓰던 그대로 집기 등을 재현시켜 놓았다.

그방 문설주 위에는 고암이 1969년에 새긴 문자추상(149×29)나무목판이 걸려 있다. 여관방으로 쓰던 객실은 ‘수덕사 선 미술관’으로 바꿔 고암이 1940년대부터 프랑스로 가기 전인 1969년에 그린 풍경화와 문자추상 등 모두 22점을 전시해 놓았다.

대문 위에  걸린 ‘수덕여관’이란 글씨는 고암의 친필이다. 수덕사는 수덕여관을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전시장소와 발표장, 불자들의 템플스테이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문을 활짝 연 수덕여관
▲ 문을 활짝 연 수덕여관 문을 활짝 연 수덕여관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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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수덕여관과 함께  복원된 고암 이응노 방
▲ 복원된 수덕여관과 함께 복원된 고암의 작업실 겸 응접실 복원된 수덕여관과 함께 복원된 고암 이응노 방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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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복원, 일반에 공개된 수덕여관을 들어서는 관광객들
▲ 문을 연 수덕여관을 들어서는 관광객들 5일 복원, 일반에 공개된 수덕여관을 들어서는 관광객들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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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전시실 내부
▲ 수덕여관 전시실 내부 수덕여관 전시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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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고암의 작품
▲ 수덕여관 전시실에 걸려 잇는 고암의 문자추상 작품 이 곳에 고암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수덕여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고암의 작품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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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암, #이응노, #수덕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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