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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신문 지면은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거울이다. 특히 오늘 같은 때는 더욱 그렇다. 남북 정상회담, 그것을 바라보는 신문쟁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희망과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혹은 마지못해 손 흔드는 억지 춘양의 심사가, 혹은 처음부터 딴죽을 걸기로 작심한 결기가 엿보인다.

오늘(2일) 방북 길의 키포인트는 역시 노 대통령 내외가 '걸어서 군사 분계선을 넘는 것'이다. <서울신문>과 <국민일보>가 여기에 방점을 찍었다.

<서울신문>은 '2007.10.2 09:00 한반도에 38선은 없다'고 1면 제목을 뽑았다. 날짜와 시간, '38선'이라는 '숫자'의 배열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점이 두드러진다. <국민일보>는 서술적 표제로 대신했다. '오늘 오전 9시 휴전선이 열린다'는 제목은 편집자가 마치 휴전선을 눈앞에 그리며 제목을 뽑은 듯하다. <한겨레>의 1면 표제('분단 철조망 넘어 평화 새길로')는 그런 점에선 조금은 밋밋하다.

편집에서는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1면을 사실상 털었다. <한겨레>는 '두 정상에게 바란다'는 사설을, <한국일보>는 실향민이기도 한 소설가 이호철씨의 글을 각각 1면 오른쪽 상자로 배치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랄까, 그 비중을 그만큼 높게 평가한 편집이다.

오늘 신문들의 또 하나의 코드는 '평화정착'이라는 한마디로 집약할 수 있다. 나머지 신문들 거의 대부분 모두 이 '단어'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주어로 형용부만 변주했다. <한국일보>와 <조선일보>는 '최우선의제'로, <세계일보>는 '최우선 논의'로, <경향신문>은 '깊이 논의'로 달리했다. <중앙일보>는 '평화선언 합의 추진'으로 조금 색깔을 달리하려 했다.

가장 밋밋한 제목은 <동아일보>. '노대통령 오늘 평양으로…내일 정상회담'이라는 딱 한 줄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밋밋한 정도가 아니라, 하품이 나올 정도다. 이런 제목, 뽑자고 해도 여간해선 뽑기 어려운 '절제의 극치'를 보여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뽑으나 마나 한 제목'이다.

1면 머리기사 큰 제목을 '노대통령 "한반도 평화정착 최우선 의제"'라고 뽑은 <조선일보>는 미리부터 '평화선언'에 쐐기를 박고 있다. '핵폐기 없는 평화선언 추진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면서 3면에선 북핵, 평화체제, NLL, 경협·경제특구, 아리랑 관람, 합의문 작성(합의의 모호성), LCD TV 선물 등 7가지를 7대 현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조선일보>의 초점은 이 '7대 현안'에 맞춰질 것 같다.

<문화일보> 10월 1일자 석간 1면
 <문화일보> 10월 1일자 석간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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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다룬 기사 제목과 편집의 백미는 그러나 이미 하루 전인 10월 1일자 <문화일보> 1면. 남북 정상회담의 최우선 의제를 '평화정착'에 두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사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지만, 그 편집은 '2단 기사'였다. 대신 '노 정권 낙하산(이) 공기업 방만 키웠다'는 아래면 기사 제목과 그 기사의 배치가 '정상회담 최우선 의제는 평화협정'이라는 1면 머리기사를 전체적으로 압도했다.

제목 활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자의 지면 배치 자체가 훨씬 비중 있게 처리됐다. 정상회담 기사에 따라 붙었어야 할 계룡대 국군의 날 행사 사진까지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낙하산 공기업 방만' 기사 옆에 붙었다. 한마디로 편집의 상식을 '초월'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 때로는 그것처럼 유쾌한 일도 없다. 하지만 <문화일보>의 이 지면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뒤틀려도 이렇게 뒤틀릴 수가 있을까. 그 심성이 걱정된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문화일보, #노무현, #김정일, #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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