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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능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일류대학'을 향하여 엄마 뱃속에서부터 영어를 한다. 오로지 '일류대학'을 향하여.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을 '상아탑'이라 했다. '상아탑'(象牙塔)은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 도피적인 학구 태도와 대학 또는 대학 연구실'을 말한다. 오로지 학문을 탐(耽)하여 사람과 사회를 위하여 쓰려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 학생들이 들어가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대학은 '학문을 탐' 하는 곳이 아니라 세속 권력을 쥐고, 돈을 버는 모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이 들어가려면 학문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기술에 더 관심을 둘 뿐이다. 그 기술은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을 더 잘 외우고, 푸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 오로지 기능주의 교육이다. 기능주의 교육은 단순 간에는 출중한 능력을 가질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학문과 지식에 있어 진보를 이룩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학 미래가 암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학문과 사람을 논하고 알려는 대학과 나라가 있으니 부럽기 한이 없다.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와 그 나라의 '바깔로레아'다. 최병권. 이정옥이 엮은 <세계교양을 읽는다>는 프랑스 바깔로레아에서 출제된 문제와 답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 11가지 질문과 답, '인문학' 10가지 질문과 답, '예술' 5가지 질문과 답, '과학' 11가지 질문과 답, '정치와 권리' 16가지 질문과 답, '윤리' 11가지 질문과 답을 읽어가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험하는 것과는 상이함을 알았다.


인간 분야의 질문을 살펴보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어릴 때부터 행복이 무엇인지, 의식과 무의식이 무엇인지 깊이 사고하지 않았던 답이 매우 어렵다. 한 달 정도 논술 수업을 받는다고 답할 수 없다. 정답은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논술학원 선생이 만들어준 정답일 뿐, 자신이 경험한 행복과 자신이 사고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하여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선생의 정답으로 낸 답안지는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지금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단절된 개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 어렵다면, 현재 순간의 한 주체를 정의하는 데 있어 그의 과거가 지니는 중요성을 평가해야만 한다.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일 뿐인가?" (본문 42쪽)


번역 상 오류인지 몰라도, 고등학교 졸업을 갓 학생이 독해하고, 답하기에는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이런 답은 이성과 사고의 결과보다는 어쩌면 경험론적인 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도 안 된 학생들이 경험한 자신의 삶이 현재 자신의 전 모습인지 답하기는 경험론적으로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깔로레아'는 답을 요구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한 번 살펴보자.


"'나는 단지 내 과거의 총합이다.'라는 생각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완전히 미리 결정되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과학 법칙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엄격한 인과율의 형태로서 인간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문 45쪽)


자연과학 법칙 원인과 결과가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화하며, 인간은 이성과 감성, 의지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에 과거가 현재의 전부일 수는 없으며, 현재가 미래도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대학 시험에 '바깔로레아'가 도입된다면 <세계교양을 읽는다>와 같은 책을 논술학원에서 무조건 외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다양한 질문과 답이 있다. 놀라운 질문이며, 답이다. 수학공식, 영어 단어만을 잘 외우면 되는 우리 현실을 통하여 <세계교양을 읽는다>를 만나면 기능주의 공부에 매몰된 아이들의 미래가 암담하다.


바깔로레아가 대학 시험의 표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바깔로레아의 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학생들이 부러울 뿐이며,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글들은 우리나라 대학교수들보다 수준 높았다. 바깔로레아는 한 마디로 '사람'을 묻는 시험이다.

덧붙이는 글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1> 최병권 ㅣ휴머니스트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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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학, #교양, #바깔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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