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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부터 쏟아지던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모른다. 수목원으로 아이들과 소풍을 가려 했기에 밤새 들락거리며 비가 오나 안 오나 살펴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새벽녘에는 더욱 빗방울이 굵어졌다.

내 어릴 적 소풍 전날은 들뜬 마음에 밤을 새우다시피 했었는데, 어젯밤은 그보다 더 마음을 졸였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려면 날씨가 제일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비가와도 가나요?"라고 전화를 주시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랴, 날씨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랴, 비라도 오는 날은 다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마련이다.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오전 9시경이 되니 하늘이 개였다. "휴! 다행이다." 걱정을 접은 것도 잠시 수목원을 가기엔 빗길이 미끄러울까 잠시 고민을 했다.

연극 장면
▲ 연극 장면 연극 장면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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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가까이 있는 어린이회관으로 소풍장소를 바꾸기로 했다. 비가 오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마냥 기쁜 얼굴로 들어섰다. "오늘 소풍 가는 거 맞지요?" 확인이라도 하려는 양 나를 바라보며 묻는 귀여운 아이들! 드디어 콧노래를 부르는 아이들과 어린이회관을 들어섰다.

회관을 막 들어서는데 어떤 분이 강당에서 동극 공연을 한다며 안내를 하셨다. 2층에 있는 강당에는 관객이 달랑 2명뿐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온 손자로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분은 이 공연을 열 번쯤 보셨다는 단골손님이셨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은 생각도 못한 연극초대에 신이 났다. 동극은 물론 아이들에게 맞는 동요와 손유희까지 준비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연극 장면
▲ 연극 장면 연극 장면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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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동극에 빠진 것이 아니라 청개구리가 슬피 우는 장면에서는 교사들도 나도 눈물이 났다. 그만큼 연기가 뛰어났다. 더욱 놀라운 건 우리에게 연극을 보여 주신 분들은 전문 연극인이 아닌 할머님들이시라는 사실이다.

60대에서 70대까지의 할머님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시고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시는 모습이 젊은이들 못지않다. 아이들은 할머님들 덕분에 신이 났다. 아들을 찾으러 다니는 엄마에게 알려 주느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연극에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연극 장면
▲ 연극 장면 연극 장면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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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연극이 끝나고 다음 연극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생소한 곡식 까부르는 '키'를 보여 주시며 설명해 주시는 할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는 영락없는 우리네 할머니 목소리다. 그 키는 다음 연극에 나오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설명을 해 주시는 듯했다. 우리는 <아니야! 청개구리>와 <말깨비 글깨비> 두 편의 동극을 보았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공연을 하신다고 한다.

할머니 특유의 구수한 입담이 한 몫을 했다. 저절로 흥이 났다. 웃기는 대목에서 먼저 웃음을 터뜨리는 주인공 때문에 더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재미를 더했다.

연출인 줄 알았는데 인터뷰 중 실수라며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시는 할머님이 더없이 예뻐 보였다. 한 편의 동화를 올리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연습에 연습을 거듭 하신다고 하니, 그분들의 동극 사랑이 대단하심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열심히 연습을 하셨으니 훌륭한 작품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유치원생들과 함께
▲ 연극이 끝난 후 유치원생들과 함께 연극이 끝난 후 유치원생들과 함께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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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할머니들의 정을 듬뿍 느끼며 재미있는 동극까지 보았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무대 위에서 멋지게 피아노 연주를 하시는 할머님을 보고 누가 감히 노인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겠는가.

공연이 끝난 후 가까이서 할머님들을 뵈니 연세가 있음에도 젊어 보이시는 건 아이들과 함께 동요도 부르고 동극도 하시기 때문일 거다. 재주를 뽐내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재주를 갈고 닦는 모습에서 미래의 나를 꿈꿔본다. 나도 이다음에 저렇게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태그:#유치원, #청주어린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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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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