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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광복절날 한불문화원(원장: 정동영, 서울시 동작구 소재) 연서작가 회원들과 전북 부안군 소재 내소사에 비학(碑學) 탐방을 간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특이한 글씨를 발견하였으니 다름아닌 <세계일화조종육엽>이란 완당의 낙관도 선명한 현판이었다.

 

 

부처님의 진리가 초조 보리달마(達磨)에서 혜가(慧可), 승찬(僧璨), 도신(道信), 흥인(弘忍), 그리고 육조 혜능(慧能)까지 이어온 것을 뜻한다.


보리달마는 남인도 마드라스 근처 칸치푸람 출신으로 부처로부터는 28번째의 조사(祖師)로 여겨지고, 중국 선종(禪宗)에서는 초조(初祖)로 간주되며, 혜능(慧能)은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 조사이자 동아시아 선불교의 대표적 계통으로 발전한 남종선(南宗禪)을 창시했다.

 

많고 많은 추사 글씨, 누가 그 진위를 밝혀야 하나.

 

우리 일행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완당의 글씨(자료 1)를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원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이 글씨는 완당의 글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장님께는 좀 불경스런 일이지만 필자의 짧은 식견으론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비학(碑學) 탐방을 마치고 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현판글씨는 내소사뿐만 아니라 하동 쌍계사 등 전국의 여러 사찰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과천문화원에 있는 족자는 필자가 그곳에 확인해 본바 2004년부터 소장한 탁본이란다. 서로 대조해보니 쌍계사 금당에 걸려있는 현판의 탁본은 아닌 것 같다.(자료 2와 낙관 위치가 다름) 또한, 김해 은하사 정현당의 편액(자료 3)은 낙관이 없을뿐더러 글씨의 자형(字形)과 필의(筆意) 그리고 운필법(運筆法)이 조금씩 틀리다. 그러므로 어디서 탁본을 했는지 확인이 안되지만 내소사에 걸린 동류의 글씨를 탁본한 것 같다.

 

과천문화원 산하 추사 김정희 사이트에서는 자료 4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하동 쌍계사(雙磎寺)에 가면 중국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의 진영을 모신 탑이 있다. 이 탑을 모신 전각의 현판을 추사가 썼다. 하나는 <六祖頂相塔 육조정상탑>, 다른 하나는 <世界一花 祖宗六葉 세계일화 조종육엽>이다. 추사가 쌍계사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완수 선생은 당시에 만허(晩虛)라는 스님이 이곳에 살면서 차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차를 얻은 보답으로 추사가 이런 글씨를 써 보내 주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세계일화'란 부처님의 세계를, '조종육엽'이란 육조대사를 말한 것 같다. 글씨는 추사의 보기 드문 북조체 글씨이며 전체적인 구성미가 뛰어나다. 제주 시절 전후의 작품인 듯하다."

 

글씨감정에 한학자나 골동품상들이 나서는 비현실

 

그러나 필자가 서법서예가인 한불문화원 정동영 원장님께 의뢰하여 확인해 본 결과 자료 2의 글씨도 추사의 글씨가 아니란다.


원장님은 그 근거로 <추사체자전>(이명옥 지음) 그리고 <한국의 미 추사>(중앙일보 간행)와 비교해 글씨의 자형과 구도, 필의와 운필법 등이 맞지 않을뿐더러, 추사의 제주 유배시절 전후의 환경여건으로 보면 더욱 추사의 글씨와 멀어진다는 것. 추정해 보건대 해강 김규진의 글씨체와 운필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완당의 낙관으로 여러 사찰에 걸려있는 '세계일화조종육엽'이란 현판과 과천문화원에 소장된 족자는 위작과 그 위작의 탁본을 추사 글씨라고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씨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라고 단정짓듯 말한 것은 아마도 완당전집 제10권에 나오는 만허스님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추사 이야기만 나오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게 작품의 진위 여부인데, 그것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서법학을 체계(體系) 있게 전공하지 않고 단순히 붓만 가지고 농필(弄筆) 하거나, 한학을 한 사람, 또는 고서화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글씨에 대한 이해도 없이 작품을 논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원로 서법서예가들은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왜 추사작품은 이렇게 진위 판단이 어려운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추사의 글씨는 그의 질곡(桎梏) 많은 삶처럼 작품도 인생 전반에 걸쳐 변화무쌍한 데에서 오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글씨가 추사 글씨의 진본이라면 가설(假說)로는 부족하다. 왜 진본인지를 서법이론을 근거로 하여 고증(考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서 국고를 지원받고 운영되는 공인기관에서 오히려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불교계 또한 현판 하나에도 신경을 써 고증을 마친, 제대로 된 작품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사찰에 걸려있는 위작을 진작으로 알고 그 글씨를 본받으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후대의 서예가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작품의 진위는 전문가가 아닌 우리 같은 사람이 가릴 순 없다. 그러므로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계신 원로 서법서예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한데 모아 옥석을 가려내, 위작이 진품으로 둔갑해 통용되는 작금의 사태를 막아 국보적 인물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예술을 욕되게 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태그:#세계일화조종육엽, #추사, #한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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