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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에서 권정생님의 <한티재 하늘>을 읽으며 서 있는데 경로석에 앉아 계시던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머뭇머뭇 하시더니 "실례지만 '한티재'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신다.

한티재는 경상도에 있는 재넘이 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나도 글을 읽기 전까지는 고개 이름 같기는 한데 실재하는 고개가 아니라 권정생님이 글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지은 명칭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 '한티재'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시간의 역사 속을 걸어가며 넘어야 할 고난의 고개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을 그려 낸 글이라면 권정생님의 <한티재 하늘>은 소박한 개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살아 낸 질곡의 세월과 역사를 보여주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나 아쉬운 점은 권정생님은 원래 <한티재 하늘>을 10권으로 엮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질병과 싸우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권정생님이 끝내 삶의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미완의 2권짜리 책이 되고 말았다.

전후 세대인지라 절대 빈곤으로 인한 굶주림을 경험한 기억이 없는 내게 권정생님이 <한티재 하늘>에서 보여 준 절대 빈곤의 모습은 한없이 낯설었다. 그리고 금세 상대적 빈곤감으로 늘 불평을 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한 끼도 밥이 없어 굶어 본 적이 없으면서 굶는 날이 먹는 날보다 많은 세월을 살았던, 아니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구촌 가족을 까맣게 잊고 살지 않았던가!

입을 덜기 위해 잠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맏딸부터 차례로 딸을 겉보리나 좁쌀 몇 말에 팔아넘기는 한 어머니는 그렇게 세 딸을 차례로 팔아 목숨을 이어간다. 지금도 아프리카 어딘가에는 어린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 한 끼의 음식을 구하는 이들이 있다.

가난과 억압과 착취에 찌들린 사람들은 세상을 바꿔보려고 동학군에 가담하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심정적으로 '빨란구이'(반란군 : 동학군에 가담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에게 동조하지만 생존을 위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지금은 어떤가? 절대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강대국은 힘없는 나라와 어린아이, 여자들을 볼모로 삼는 전쟁을 서슴지 않는다. 심정적으로는 그것이 불의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침묵으로 약한 자의 고통을 방관한다.

남의 땅 부쳐 먹으며 수많은 수탈을 감내하던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은 그저 밥이나 굶지 않고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살고 싶은 참으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한 하늘을 이고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중 수많은 민중의 고난과 가난의 삶은 쉽게 잊히고 말았다. 그리고 지구촌은 여전히 똑같은 아픔이 이어지고 그 누구도 그런 아픔을 오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던 휴머니스트인 권정생님은 그들의 그 아픈 삶이 잊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림자로 끈질긴 생명을 이어주던 그들의 눈물과 땀과 수고로움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권과 2권에 보여 준 고난의 삶이 자양분이 되어 조금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10권의 책이 모두 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지구촌 인구 전체의 1/4에 해당하는 약 15억이 절대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배부르게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우리의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이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읽혀져야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은 우리의 삶을 반성할 기회가 생길 것이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언제쯤이면 기쁨과 슬픔을 모두 나누며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권정생님처럼 소박하지만 절대로 자기 신념을 버리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많아진다면 함께 사는 행복한 지구촌이 되지 않을는지.

덧붙이는 글 | <한티재 하늘 1.2>/권정생/지식산업사/ 각권 7500원



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지식산업사(1998)


태그:#권정생, #한티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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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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