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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현대음악의 작곡 거장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은 지리산 정기를 품고 태어나셨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80) 여사가 딸 윤정, 아들 우경씨와 함께 27일 경남 산청을 찾았다. 윤이상 선생은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태어나 3살 때 통영으로 이사했다.

 

이수자 여사는 자신이 펴낸 <내 남편 윤이상>(창작과비평 간)에서 “남편은 1917년 9월 17일 산청 덕산에서 선비 출신 부친 윤기현과 농가 출신 모친 김순달 사이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해 놓았다. 서봉석 전 산청군의원이 책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고, 산청군청에 이야기 해 이재근 산청군수가 이 여사 일행을 초청한 것.

 

이 여사는 이날 오전 산청군청을 방문해 이 군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산청읍내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덕산을 방문했다. 이 여사는 시천면사무소 앞 느티나무에서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시천면소재지 거리에는 환영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이 군수를 비롯해 서 전 군의원과 조종명 산청문화원 부원장, 이강재 시천면장, 조윤섭(76) 시천면 사리마을노인회장 등 20여명이 나왔다. 주민들은 이 여사한테 꽃바구니를 전달했으며, 조성환 산청군의원은 곶감을 선물하기도 했다.

 

서예가 민성수씨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글자를 붓글씨로 써서 금박한 뒤 액자로 만들어 이 여사한테 전달했다. 처염상정은 독일에 있는 고 윤이상 선생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말로, '어떤 곳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다'는 뜻이다.

 

 

이수자 여사는 “남편이 독일에서 돌아가셨을 때 묘비를 세우려고 하니 모두 로마자였다. 동양 글자가 없어 아쉬웠다. 49재 때 수덕사 설정 스님이 오셔서 선생이 살아오신 모습을 떠올리면 불경에 있는 이 구절이 적당하다고 하여 묘비에 새겼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남편 묘비의 이 글자를 보면서 위로를 삼았다”면서 “남편이 태어난 곳에서 이런 선물을 받으니 눈물이 나도록 기쁘다”고 말했다.

 

이수자 여사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선생이 없이 가족이 왔는데도 마치 선생을 대동하듯 대해주어 고맙다”면서 “선생이 지리산 자락에서 났다고 하니 지리산이 새롭게 보인다. 기쁘다”고 말했다.

 

이재근 군수는 “윤이상 선생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에 윤이상 음악제에 참석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초청했다”면서 “윤이상 재단 등과도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 하겠지만 생가 복원에 대해 천천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봉석 전 군의원은 “윤이상 선생이 산청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알고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통영에서 제적등본을 떼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수자 여사는 “선생이 산청에서 태어난 것은 똑똑히 알고 있다. 대개 당시 어머니들은 친정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통영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지만, 산청은 태어난 곳이다. 서로 옥신각신 하지 말고 협력해서 평화스럽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여사 일행은 산청군 시천면 사리마을에 서서 천왕봉을 바라보기도 했다. 주민 강정숙씨는 “윤이상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당시에는 동학에 연루만 되어도 3족을 멸한다고 할 정도였다. 어떤 집안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수자 여사는 “남편은 생전에 덕산 이야기를 간혹 했다”고 말했다. 조종명 부원장은 “윤이상 선생은 지리산 정기를 받아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윤이상 곡 '중국의 그림' 모티브 찾아

 

이어 이수자 여사 일행은 곧바로 산천재를 방문했다. 산천재는 조선조 선비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친 곳이다. 산천재와 시천면 사리마을은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산천재에 들른 이수자 여사는 깜짝 놀랐다. 윤이상 선생이 1993년에 작곡한 '중국의 그림

'이란 제목의 4악장으로 된 플루트 곡의 모티브를 찾아낸 것이다.

 

1818년 중건한 산천재 벽면에는 ‘허유와 소부’의 고사를 그린 벽화가 있다.  요임금이 허유(許由)를 찾아 왕위를 제의하자 허유가 강물에 귀를 씻고, 이를 들은 소부(巢父)가 물 먹이려던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고사다.

 

 

남명 조식 선생의 후손인 조종명 부원장으로부터 설명은 들은 이수자 여사는 “그래, 바로 그거다”면서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중국의 그림'이란 작품을 거명했다. 이어 이수자 여사 일행는 원택 스님의 안내를 받아 성철 스님을 모신 겁외사를 방문했다.

 

산청 방문에 대해 이수자 여사는 “산청이라고 하면 산골짜기인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도시나 마찬가지다. 남편은 늘 덕산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어릴 때는 ‘덕산댁’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수자 여사는 고 윤이상 선생 탄생 9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 여사는 1967년 발생한 '동백림사건'에 남편인 윤이상 선생과 연루되어 한국으로 연행되어 40여일간 지내다 독일로 돌아간 바 있다. 이번에 4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 여사는 지난 14~15일 통영을 방문했고, 15~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07 윤이상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했으며, 오는 10월 3일 출국할 예정이다.

 

 


태그:#윤이상, #산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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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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