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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찾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는 슬로건 아래 희망제작소 공공디자인 학교 1차 교육 일정이 지난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과 안양일원에서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6명의 참가자들은 김점동 동훈(주)대표이사께서 기증한 희망버스 안에서 서로 인사소개를 나누며 배움에 대한 욕구를 불태웠다.

특히 남양주 시청에서는 이번 프로그램행사에 무려 5명이 팀을 이루어 함께 참여하였다. 공공디자인 분야에 대한 공무원 연구동아리가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행사에도 똑같은 인원이 교대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니 그 열정이 대단하다. 서울시 중구에서는 구의원 3명이 함께 참여하여 공부하는 기초의원상 정립의 의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박원순 변호사의 인삿말
▲ 희망버스 발진식 박원순 변호사의 인삿말
ⓒ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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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옥상녹화 사업현장 방문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달리는 희망버스 발진식’을 한 후 버스에 올라탄 일행은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옥상에서 첫 일정을 시작하였다.  300㎡의  기존 건축물 옥상면적에 설계된 도심옥상녹화 시범사업장을 들러보기 위함이었다.

콘크리트 면에 녹화사업 하는 게 ‘시각적 효과 말고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으랴’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듣는 설명은 그게 아니었다. 옥상녹화지가 주변 보다 평균 섭씨 7도 정도 기온저감효과를 가져오고 건물냉난방 에너지를 연간 10%정도 절약하여 열섬효과를 완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약 3시간의 빗물유출 지연효과를 내어 도시홍수예방 효과까지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이외에 도심 내 생태공간을 확보하여 생물의 다양성유지 효과, 생태체험학습 및 휴식공간조성 등 다양한 이점을 안겨준다고 했다.

옥상녹화 사업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다
▲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옥상정원. 옥상녹화 사업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다
ⓒ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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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는 2010년까지 기존건물 200개소 6만3천㎡에 대해 지원녹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신축건축물 960개소 10만8천㎡를 설계심의 등을 통하여 옥상녹화를 실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감고당길을 걷다

다음 일정은 인사동 맞은편 풍문여고에서 시작되는 삼청동길 탐방이었다. 각조별로 무리를 이루어 팀장의 인솔아래 자유롭게 길거리를 걸어가며 상호느낌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풍문여고에서 정독도서관에 이르는 감고당길, 그리고 거기서 계속 이어지는 삼청동길과 북촌일대를 돌아오는 여정이다. 감고당길 이름의 근원인 감고당은 사극에 수없이 등장하는 장희빈에 의한 희생양, 인현왕후 민씨의 친정집을 이르는 호칭이다.

인현왕후 민씨는 장희빈의 모함에 걸려 폐서인된 후 궁궐에서 쫓겨나 이곳에서 6년 동안이나 유폐생활을 했다. 학창시절 정독도서관에 올 때 지금은 없어진 조선총독부 건물과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자주 지나다녀 봤지만 그 옆자락에 있는 감고당길을 걸어보기는 생전처음이다.

자유스럽게 거닐며 의견을 나누다.
▲ 감고당 길에서 자유스럽게 거닐며 의견을 나누다.
ⓒ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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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길에서 그쳐버리는 사람들의 동선을 길 건너편 이곳에까지 연장시켜 삼청동에 스며 있는 옛정취를 느끼게 만드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감고당길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보행욕구를 차단시키는 육교와 지하도를 없애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육교와 지하도가 사람들의 보행을 차단시켜버린다는 동행전문가의 설명이 이색적이다. 감고당길은 차량통행이 제한되어 있진 않다. 일방통행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차량이나 운전자들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다음에 올 때는 차를 갖고 오지 말고 걸어서 오게끔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다. 그만큼 거리의 주인공이 차가 아니라 보행자들이다. 인현왕후에 대한 배려일까? 전통에 대한 예의일까? 길거리 간판들이 한결같이 소박하다. 간판 중에 다른 군더더기 설명 없이 ‘敬’자 한 글자를 내건 현판이 눈에 띤다.

삼청동길 간판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정독도서관 입구를 지나 삼청동길에 들어섰다. 감고당길은 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전문가의 손길이 합세하면서 이루어진 곳이다. 이에 반해 삼청동길은 관은 보조적 차원에서 머물고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분출되면서 형성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간판문화의 거리였다. 간판은 크고 강렬하고 눈에 띄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해야만 한다는 게 그간의 고정관념이었던 것 같다.

특히 편리한 간판제작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흐름을 부채질하여 우리나라 도시는 어딜 가나 간판의 홍수에 기가 질려 버릴 정도다. 간판에 압도당해 질식해버린 길거리 풍경문화가 다시 부활하여 숨 쉬는 곳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삼청동 길을 걸어볼 것을 권유해 본다.
    
소박하고 친근한 맛을 안겨준다
▲ 삼청동길 이정표 소박하고 친근한 맛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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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길거리는 거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결코 재촉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돈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러다 보니 길거리 담벼락에 그냥 서있는 빗자루 하나도, 찌그러진 우체통도 친구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삼청동길 간판들이다. 티베트 박물관, 실크로드 박물관, 세계 장신구 박물관, 생활차 박물관 등 주변인근에 자리 잡은 박물관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옷가게 알림판이 아기자기하다
▲ 삼청동길 옷가게 옷가게 알림판이 아기자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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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길 간판은 한결 같이 겸손하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주변풍경을  압도하려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강요하거나 길손에게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삼청동에 깃들어 있는 역사와 전통의 숨결에 조용히 스며들려 한다. 이러한 모습을 취함으로써 여운을 남기고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멈추게 한다. 삼청동의 간판들은 저마다 그 속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뜻이 통한다 싶으면 데이트를 신청하게 한다.

곳곳에 소박하게 내걸린 상호나 카피는 시적 운치를 더해준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발걸음이 멈추는 수집장입니다.’
‘혹시 아니, 새벽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을, 새벽이 우리에게 주는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혼자인 것을’, ‘푸른별 귀큰 여우’
‘박사장, 파이팅!! 동생은 언니랑 안 닮아서 다행이야.’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은 말할 것도 없고 쌀집, 전기공사 담당점, 카페, 장신구점, 옷가게, 교회, 고가구점등 여러 업종이 공존하면서도 서로 간에 함께 어우러져 길거리에 묘한 일체감을 불어넣는다.
   
삼청동길을 걷고 있는 공공디자인 학교 회원들
▲ 삼청동길 탐방 삼청동길을 걷고 있는 공공디자인 학교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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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에 오르다

삼청동길의 분위기에 심취해 걷는 동안 어느덧 우리일행은 북촌 한옥마을을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하면 최소한 수백년 이상 거쳐 오는 명문가 양반들의 고택을 떠올린다. 하긴 조선시대 한양땅 ‘북촌’이라는 곳이 오늘날 서울 ‘강남거리’가 상징하는 바를 능가하면 능가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현재 북촌한옥마을의 대부분은 1930년대 서민들을 위해 지어진 작고 실용적인 ‘생활집’들이다. 고관대작들의 허세보다 서민들의 실용성에 기초한 집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곳이 북촌 한옥마을의 참맛이다. 그러다보니 이곳에 오면 그야말로 손때 묻은 생활 속 향내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북촌한옥마을을 걷다.
▲ 북촌 한옥마을 탐방 북촌한옥마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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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북촌 한옥마을이 그나마 유지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는 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권위주의 행정문화가 강하게 작용하던 1980년대에 강제적 한옥보전규제지침과 주민들의 반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90년대 규제완화에 따른 한옥소멸과 난개발바람, 급기야는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이 99년 ‘북촌가꾸기’를 서울시에 요구했고 이러한 바람을 담아 ‘새로운 북촌가꾸기 정책’이 2001년부터 시행중이라는 것이다.

북촌가꾸기는 독특한 진행방식을 담아내고 있다. 주민의 자율의사에 따른 한옥등록과 서울시의 개보수 비용지원, 서울시의 한옥매입과 활용, 환경정비사업 등이 주요내용이다. 주민이 스스로 한옥과 마을을 지키고 가꾸며 행정이 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협치(governance)'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005년 11월까지 912동의 북촌한옥가운데 353동이 주민자율의사에 따라 등록되었고 이 가운데 230동의 개보수가 완료된 상태다. 주민단체인 ’한옥을 사랑하는 주민들 모임‘과 시민단체인 도시시민연대가 주최하는 북촌문화의 날 행사가 매년 열리는 등 주민단체와 시민단체의 북촌가꾸기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북촌가꾸기 사업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있다. 이곳의 지가가 상승하면서 행정기관의 한옥매입에 부담이 늘어나고 지자체장의 교체에 따라 사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다. 여기에 주거기능이 중시되는 북촌을 문화관광적 기능성 측면에서 접근하여 ‘제2 인사동화’ 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촌한옥마을은 삼청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청와대도 보이고 경복궁도 보이고 종로번화가의 고층빌딩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수십, 수백년의 삶과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곳에 위치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곳이 북촌이다. 생활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한순간에 폐허화되어 버리는 게 한옥이라고 한다. 북촌 한옥마을이 민속촌화 되지 말아야 하고 주거기능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마무리 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첫날 짜인 일정을 소화하면서 한결같이 ‘자기 고장에 돌아갔을 때 무엇을 안고 가야 하나?’라는 점을 고민하는 듯 했다. 내가 돌아갈 김포는 농촌에서 도농복합도시로 변모하였다가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아예 도시화의 길로 작심하고 들어서고 있는 고장이다. 길을 걷는데 동행한 전문강사 분들에게 거듭해서 질문했던 내용도 ‘김포 같은 특성’의 고장에 간판이나 도시미관을 적용할 때의 유의할 점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실질적인 주민참여 과정의 보장’을 강조했다. 결과물에 집착하면 효율성을 강조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속도를 내게 되며 자칭 타칭 전문가들에게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믿지 말라는 소리도 한다. 전문가들은 자기분야에선 뛰어날지 몰라도 그 고장을 이해하는 감성이 미약할 뿐더러 주민과의 소통능력도 미약한 사람들이라는 자아비판적 진단도 내린다.

그에 반해 기안이나 진행과정에서 부터 주민의 손길이 묻어나는 참여마당을 만드는 리더십의 발현이 결국에 가서는 가시적 성과는 더딜지라도 주민들이 스스로 가꾸는 소통의 공간을 만든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주민 스스로가 만들고 디자인하는 마을에 대한 꿈’ 숙제를 해결하려 왔다가 그보다 더  무거운 숙제를 안고 가는 기분이다. 결국 해답은 현장에 있다. 더욱 더 ‘주민 속으로, 주민과 함께!’를 목소리 높여 외쳐야한다. 아니 ‘내가 곧 주민’이라는 일체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미약하나마 ‘공공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여는 출발점에 서서 주위를 돌아다 본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김포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희망제작소, #공공디자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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