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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는 해인사와 인연을 맺은 여러 스님들의 부도와 비석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반야사 원경왕사비(元景王師碑: 보물 제128호)이다.

 

검은 색의 몸돌에 ‘증시원경왕사비명’이라는 전액이 양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을 통해 스님의 속명은 신락진이고, 법명은 오공 통혜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스님은 또 경덕국사의 제자라고 한다. 그리고 김부일이 비문을 짓고 이원부가 우세남체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많이 훼손되어있고, 비각으로 비석에 접근할 수 없어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런 내용 모두를 안내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정말 멀리서 겉모습만 바라봐야 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바로 옆에 해인사 길상탑(보물 제1242호)이 있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길하고 상서로운 탑이 된다. 그러나 꼭 그런 의미를 지닌 탑은 아닌 것 같다. 1966년 해체 복원시 발견된 탑지(塔誌)에 따르면 이 탑은 도둑들로부터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탑지는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것이다. 글쎄, 탑의 건립 목적이 특이하고 다소 의아하게 들린다. 2중 기단에 3층으로 된 통일신라 시대 석탑이다.

 

그 옆에는 최근에 세워진 두 개의 큰 비석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가야산 해인사 사적비고, 다른 하나는 인곡대선사비다. 인곡선사(1895-1961)는 한국 근대불교의 3세대쯤 되는 분이다. 영광군 법성에서 태어나 14살 때 장성 백양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오대산 선원에서 경허 스님의 제자인 수월, 혜월 스님으로부터 배웠고, 1923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스님으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그러므로 인곡선사는 용성 스님의 제자다. 이후 그는 자신이 출가한 백양사 운문선원의 조실로 한국 불교의 선풍을 진작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특히 한산 스님의 시 ‘인세불만백 상회천재우(人世不滿百 常懷千載憂: 인간의 생명이 100년을 채울 수도 없는데, 항상 천년을 걱정하는구나)를 좋아했다고 한다. 선사는 1961년 해인사에서 입적을 해서 이곳에 비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선사의 제자로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이 있다.

 

 

두 개의 비석 옆으로는 올망졸망 작은 비석들이 약 20기 정도 세워져 있다. 모양은 세 가지 형태다. 하나는 보통 스님들의 비석으로 네모난 이수만이 얹혀 있다. 다른 하나는 덮개가 있는 유교식 비석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비신만이 있는 단순한 형태다. 이들 비석을 일일이 다 읽을 수는 없지만 해인사에서 활동하다 입적하신 스님들의 비석임을 알 수 있다. 또 이곳에 시주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의 비석도 보인다.

 

비석을 보고 길로 다시 나오니 오래된 당간지주 받침같은 것이 보인다. 길 양쪽에 각각 두 개의 화강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구멍을 두 개 뚫어 그곳에 당간지주를 세우도록 되어있었던 것 같다. 현재 해인사의 당간지주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에 제대로 세워져 있다. 지주 안쪽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한글과 한자가 보인다.

 

다시 길을 조금 내려가니 자운대율사의 부도탑과 탑비가 나란히 서있다. 전통적인 양식의 원당형탑이 왼쪽에 있고, 귀부와 이수가 있는 탑비가 오른쪽에 있다. 자운 스님(1911-1992)은 1911년 강원도 평창에서 낳고 1927년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대선사로부터 전법게를 받았다. 그러므로 인곡선사와 같은 스승을 가진 셈이다.

 

1955년에 해인사 주지가 되었고, 이후 조계종의 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76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이 되었고, 1987년에는 동국대학교 역경원장을 지냈다. 스님은 1992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했으니 스님으로 66년을 살다 갔다. 제자로는 조계총림 방장을 지낸 혜광 승찬 스님이 있다.

 

자운 스님의 탑과 탑비가 길가에 바로 있다면 그 위쪽 낮은 언덕에는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있다. 자운 스님 탑과 탑비를 왼쪽으로 돌아 길을 오르면,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성철 스님을 만날 수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평범한 법어로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대중들에게 3,000배를 하도록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덧붙이는 글 | 합천군 세번째 이야기로 해인사 부도탑과 탑비편이다. 탑비의 내용을 통해 스님들의 삶을 정리했다.  


#원경왕사비#길상탑#인곡대선사비#자운율사#성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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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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