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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 연합뉴스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시리아 사이의 핵거래설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은 연일 이 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일에는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이 6자회담 성공을 원한다면 무기 확산을 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시리아에 전달한 것이 (핵과 관련된) 정보이건 물질이건 상관없이 6자회담 측면에서 똑같이 중요한 사안"이고, "(핵)확산이란 개념은 핵무기나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과 동일하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으로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확산 문제를 핵폐기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9월말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이 핵거래설을 둘러싼 북미간의 공방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6자회담에서는 북핵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 대북 중유 제공 및 미국의 대북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종료 문제가 핵심적인 의제에 올라와 있다. 이번 회담에서 연내 불능화 및 이에 대한 상응조치가 이뤄질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개시될 수 있다.

 

북한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부시의 '균형외교'?

 

그렇다면, 북미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시점에 불거진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만약 핵거래설에 실체가 있다면, 이는 부시 행정부가 지금까지 공언해온 '금지선'(red line)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북한과 시리아는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는 미국이 테러집단으로 지정한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9·11 테러이후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획득해 '핵공격 9·11'을 일으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은 이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부시 독트린'을 채택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이스라엘이나 정보를 전달받았다는 미국은 이와 관련해 어떠한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핵거래 대상과 관련해 핵물질, 핵기술, 원심분리기, 플루토늄 등 일관성이 없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고, 부시 대통령조차 "정보이건 물질이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실체 없는 의혹 부풀리기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을 꾸며낸 것이나, 확실한 근거 없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보유설을 제기했던 것과 흡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시리아 핵거래설 여파로 6자회담 프로세스가 차질을 빚을 경우 부시 행정부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6자회담이 좌초될 경우 거의 유일한 '업적'마저 사라지고 북한과의 정면 대결이 재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강경한 태도로 핵거래설 문제를 다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스라엘과 핵거래설을 대대적으로 보고해온 미국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이스라엘 보호'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북한-시리아의 핵거래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할 경우 시리아를 공습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북핵과 이스라엘을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시 행정부는 핵거래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키면서 원론적인 입장만 뒤풀이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경고를 하면서도 비난을 하지 않고, 6자회담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란 공격 군불 때기?

 

기실 북한-시리아 핵거래설 파문의 우선적인 관전 포인트는 북미관계보다는 미국-중동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까지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협상과 충돌의 분수령에 서 있었다. 양측의 온건파는 본격적인 평화 협상을 추진했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경파들의 반대에 막혀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중동에서는 올 하반기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러한 시기에 발생한 북한-시리아 핵거래설 및 시리아의 핵개발을 차단한다는 구실로 이뤄진 이스라엘의 공습은 시리아-이스라엘 평화 협상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 시리아 강경책의 명분을 찾아준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나가 이번 파문은 이란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지하듯, 이란의 핵개발 문제로 대결상태에 있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은 최근 전쟁위기론이 나올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예방적 선제공격'에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시리아에 대한 공습은 이란에 대한 무력 시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의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북한의 핵확산설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게 형성되기 시작한 북미간의 신뢰를 위태롭게 하고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만 자극할 뿐이다. 이는 당연히 북핵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4월 19일 바그다드를 점령한 이후, 북한, 이란 등 다른 '깡패국가'들이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바그다드 효과'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공언한 '바그다드 효과'는 오히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만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북핵#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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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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