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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서 고구려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강력한 외세에 당당히 맞서 싸웠던 나라. 중국의 통일 왕조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대항했던 나라. 드넓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자로서 군림했던 나라. 개항 이후 한 번도 외세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근현대사를 생각하면 고구려의 기상과 힘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일 터.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을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달리는 버스를 따라 옥수수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저 많은 옥수수를 누가 다 심었을까. 어떻게 수확할까. 누가 다 먹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음표가 그 뒤를 따른다.


"만주는 겨울이 6개월이나 됩니다. 겨울에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가 계속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옥수수를 재배합니다. 옥수수는 식량도 되고 사료로 팔기도 합니다. 옥수수 대는 연료로 사용합니다."


가이드를 맡은 조선족 아가씨가 설명을 해주었다. 사회주의 국가인지라 개인 소유의 토지는 아니지만 국가에 일정한 돈을 내면 경작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고 했다.

 


"옥수수밭만 보고 가니 꼭 강원도에 있는 느낌이 들어요."


YMCA 사무총장님 말씀대로 광활한 만주 벌판이 낯선 느낌이 아니었다. 만주 기행 출발 전, 강원도 들녘에서도 옥수수가 여물어가고 있었다. 출발 전날 아버지는 옥수수가 잘 여물었으니 와서 먹고 가라고 전화까지 하셨다. 만주 답사 준비로 마음이 바빠 고향집에는 들르지 못했다.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도 옥수수가 여물어가고 있다. 옥수수를 키운 만주의 아버지들도 자식들에게 옥수수를 삶아 먹일 생각을 하고 있겠지. 차창 밖에 옥수수밭에서 주름투성이 아버지가 불쑥 나와 금방이라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 것만 같았다.


비류수 건너 졸본에 나라를 세우다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 옆으로 긴 강이 따라붙었다. 가이드가 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저 강이 혼강입니다. 옛날에는 비류수라고 불렀답니다. 여러분들 주몽이 누군지 알죠? 고구려를 세운 분인데 부여 왕과 왕자의 미움을 사서 쫓겨 올 때 비류수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주몽 일행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해요."


설명을 들으며 카메라로 비류수를 찍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는 거라 강의 온전한 모습을 담기 어려웠다. 찍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마음 같아서는 버스를 세우고 제대로 된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혼자만의 답사가 아니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비류수의 모습을 담고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옆에 앉은 범로가 물끄러미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범로는 천안 YMCA 소속의 초등학생인데 가이드의 답사 설명을 자료집 여백에 받아 적을 정도로 답사에 열중하는 아이였다.


"범로야. <주몽> 드라마 본 적 있니?"
"네, 가끔 봤어요."
"재미있었어?"
"주몽이 짱 멋있었어요."


범로에게 주몽 이야기를 해주었다. 범로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범로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답사 오기 전에 많은 준비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여의 왕실에서 생활하는 주몽은 부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일곱이나 되는 왕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남쪽으로 내려가 새 국가를 세울 생각에만 골몰했다. 재주가 뛰어난 주몽을 시기한 왕과 왕자들은 주몽에게 말 기르는 일을 시켰다.


주몽이 남쪽에 뜻을 두고 있는 한 부여에서 생활은 의미가 없다. 좋은 말을 골라 일부러 먹이를 주지 않고 야위게 만들어 자신의 말을 만들었다. 부여의 왕과 왕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몽의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또 다른 국가를 건설하려는 생각은 반역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한 이유


결국 주몽은 부여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부여의 입장에서 주몽의 탈출은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몽과 그를 따르는 일행은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부여의 첫 번째 왕자 대소가 이끄는 군사들은 주몽 일행을 추격했다.


주몽이 배도 없이 비류수를 건넌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비현실적 상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해석해보면 주몽의 탈출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비류수를 사이에 두고 부여와 졸본이 대립하고 있었다. 주몽 일행이 비류수를 건너면서 부여 군사들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류수 건너 살고 있던 졸본의 토착 세력이 주몽의 탈출을 도와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고기와 자라가 아닌 배를 준비하고 있다가 주몽 일행을 실어 날랐을 것이다.


"주몽을 도와준 졸본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아니요."
"소서노가 있잖아."
"주몽과 결혼한
여자요?"
"그래."


주몽은 졸본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소서노와 결혼했다. 소서노는 졸본에 살던 여성이다. 주몽과 소서노의 결혼은 정략결혼의 성격이 강하다. 주몽은 졸본 지방의 지역적 기반이 필요했고, 소서노 집안에서는 주몽의 강력한 지도력과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몽이 처음 고구려를 세운 곳이 어딜까?"
"졸본이잖아요."
"그래, 졸본의 오녀산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해."


버스는 비류수를 지나 오녀산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다녀온 만주 고구려 유적 답사입니다. 다음에는 오녀산성 등반기를 올립니다. 


태그:#비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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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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